외국희곡

셰익스피어 '템페스트'

clint 2018. 5. 13. 12:23

 

 

 

시간ㆍ장소ㆍ줄거리의 통일을 주장하는 고전주의의 이른바 ‘삼일치의 법칙’을 지킨 셰익스피어 유일의 희곡이다. 단독작으로는 마지막 작품이므로, 작가가 극단을 은퇴하는 심경을 프로스페로에게 가탁(假託)하였다고 해석하는 비평가도 있다. 이 작품에는 말년의 셰익스피어극에 공통적인 화해의 주제가 뚜렷이 나타나 있다. 1623년 출판되었다

 

무섭게 강한 비바람을 동네에 따라 타이푼(태풍), 사이클론, 허리케인이라고 다르게 부른다는 것은 학교에서 배웠다. 그럼 템페스트는 어디서 부는 걸까? 특정 지역은 없지만 아마 영어권에서 부는 모양이다. 그러니 작품 속에서 ‘템페스트’라는 단어를 보면 그저 막연하게 유럽쪽 대서양이나 지중해에서 부는 태풍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셰익스피어가 생각한 템페스트에는 다른 의미가 더 들어있다. 열대 해상에서 발생한 저기압의 세력이 어쩌고 하는 것이 원인이 아니라 인간 세상에서 커다란 잘못이 벌어졌거나 벌어지려고 하기 때문에 자연도 질서가 무너져서 그런 재앙이 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세상이나 어떤 중요한 인물의 운명이 뒤바뀐다는 신호다. 이 작품에서는 등장인물이 일부러 그런 태풍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 작품을 우리나라에서 공연할 때는 번역 제목으로 ‘태풍’이라고 쓰는데 틀린 제목은 아니겠지만 뭔가 좀 더 의미가 있는 한글 제목을 누군가 만들기 전까지는 그냥 ‘템페스트’라고 쓰고 싶다.

 

 

 

이 작품은 첫 공연의 기록이 남아있다. 즉 1611년 가을 킹즈 멘(King's Men) 극단이 궁정에서 처음 공연했으며 1612년 말(혹은 1613년 초) 겨울에 제임스 왕의 딸 엘리자베스 공주의 결혼식을 축하라는 행사의 하나로 다시 공연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작품은 아마 첫 공연의 직전인 1610-1611년에 썼을 것이다. 학자들은 ‘템페스트’를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믿으며 또 ‘사랑의 헛수고’(Love's Labor's Lost)와 함께 몇 안 되는 셰익스피어의 오리지널 창작 작품으로 쳐준다. 그러나 물론 당시 영국 플리머스를 떠나 미국 버지니아로 가는 배들이 버뮤다 근처에서 자주 태풍을 만나는 실화를 참조했고 작품 속에서는 영국인들과 식민지 원주민의 관계로 짐작되는 부분이 많이 나타난다. 또 1603년에 영어로 번역되어 나온 몽테뉴의 수필 ‘식인종에 대해서’를 약간 참조한 모양이고, 등장인물 중 칼리반(Caliban)이란 이름은 아마 식인종(Cannibal)이란 단어에서 따온 듯하다. 이 작품에는 스테이지 디렉션(stage direction 무대 장면과 움직임에 대한 지시)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의 극장 무대는 아주 단순하였고 무대장치나 조명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1612년의 킹즈 멘 극단은 야외무대인 글로브(지구) 극장과 실내 무대인 블랙 프라이아즈 극장 양쪽에서 공연했다. 그러니 작품도 양쪽 무대에 모두 맞춰야 했는데 그 좋은 예가 바로 이 ‘템페스트’다. 제 2막 1장에서 곤잘로, 세바스티안, 안토니오가 이 섬이 황폐하냐 아름다우냐 하며 서로 다투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관객의 상상에 따라 변하는 텅 빈 무대가 더 어울렸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작품에는 아주 화려한 장면과 특수효과의 지시가 있다. 제 3막 3장의 만찬 장면이나 제 4막 1장에서 미란다와 페르디난드의 결혼잔치 장면에 나오는 노래, 움직임, 특정한 의상 등에 대한 설명을 보면 마치 ‘마스크’(Masque) 같다. 마스크는 노래와 음악과 드라마를 결합한 뮤지컬 형태로 셰익스피어 시대 직후에 유행하기 시작하여 오페라에 밀려나기 전까지 영국 귀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던 화려한 음악극이었다. 그러니까 셰익스피어는 아주 단순하고 텅 빈 무대와 화려하고 놀라운 무대 장면을 대조시키면서 이 작품이 가진 꿈결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냈는지 모른다. 사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가장 짧고 또 가장 단순한 구조다.

 

 

 

 

학자들이 ‘템페스트’를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작품으로 보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작품 속에서 위대한 마술사가 일을 그만두고 은퇴한다는 내용과 대사 때문이다. 마법사이자 주인공인 프로스페로(Prospero)는 제 4막 1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Our revels now are ended. These our actors, 이제 파티는 끝났다. 우리 배우들은
As I foretold you, were all spirits, and 내가 보여드렸지만 모두 요정들이었고
Are melted into air, into thin air; 공기 속으로 사라졌다. 얇은 공기 속으로.
And, like the baseless fabric of this vision, 이런 허무한 환상과 같이
The cloud-capped towers, the gorgeous palaces, 구름 위로 솟은 탑, 웅장한 궁전들
The solemn temples, the great globe itself, 장엄한 신전들과 거대한 지구까지도
Yea, all which it inherit, shall dissolve; 속에 든 모든 것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And, like this insubstantial pageant faded, 이 허구스러운 연극이 사라진 것처럼
Leave not a rack behind. We are such stuff 연기 하나 안 남길 것이다. 우리 모두가
As dreams are made on, and our little life 꿈과 같은 존재이고, 우리의 작은 인생은
Is rounded with a sleep (IV.i.148–158). 잠으로 휘감겨 있다.
여기서 ‘거대한 지구의 멸망’이라고 말할 때 당시 관객들은 자신들이 이 연극을 보거나 셰익스피어가 몸담고 있던 ‘지구’(Globe)극장을 동시에 떠올렸을 것이다. 물론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 뒤에도 ‘헨리 8세’를 비롯하여 몇 작품 더 썼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인지, ‘헨리 8세’를 지구극장에서 공연하면서 특수효과를 위해 대포를 쐈고, 그 때문에 발생한 화재로 지구극장은 완전히 타버렸다.

 

 

 

 


줄거리
무서운 폭풍과 파도에 연타를 당하며 시달리는 배 속에는 나폴리의 왕 알론조(Alonso)를 비롯해 아들인 페르디난드(Ferdinand) 그리고 세바스티안(Sebastian), 안토니오(Antonio), 곤잘로(Gonzalo), 스테파노(Stefano), 트링쿨로(Trinculo), 갑판장 등이 타고 있다. 알론소의 딸 클라리벨의 결혼식 때문에 아프리카 튜니스에 갔다가 다시 이태리로 돌아오는 길에 '퍼펙트 스톰'에 걸려든 것이다. 침착한 갑판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을까봐 걱정들이다. 마침 천둥번개가 요란하더니 배에 벼락이 쳤다는 소리가 들리자 모두들 침몰에 대비한다.

다음 장면은 어느 섬의 바닷가에서 조용하게 시작된다. 난파된 배를 보면서 젊은 처녀 미란다(Miranda)는 아버지 프로스페로(Prospero)에게 사람들을 구조할 수 없느냐고 묻는다. 프로스페로는 자기가 일부러 배를 난파시킨 것이며 일이 다 잘될 테니 걱정말라고 한다. 그리고 딸에게 이제 때가 됐다며 옛 이야기를 해준다. 프로스페로는 밀라노의 공작이었으나 동생인 안토니오가 나폴리의 왕 알론조와 음모를 꾸며 자리를 빼앗았다. 곤잘로의 도움으로 프로스페로는 딸을 데리고 도망쳤고 마법의 책에서 얻은 힘으로 이 섬에 피신하여 12년간 살았다. 그런데 운명이 그의 적들을 이곳으로 보내줬고 거기 맞춰서 자신이 폭풍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말을 끝낸 프로스페로는 마법으로 미란다를 잠재운 뒤에 자신의 부하이자 공기의 요정인 에리얼(Ariel '에어리얼'이라고도 하는데 남자다)을 부른다. 여기서 둘이 하는 대화를 들어보면, 실제로 그 배에 폭풍을 퍼붓고 돛대에 불을 지른 것은 에리얼이고,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긴 했지만 모두 무사히 이 섬에 닿게 했다는 거다. 에리얼은 시킨 일을 불평없이 잘 해냈으니 이제 약속한 대로 자유를 달라고 하지만 프로스페로는 옛일을 상기시킨다. 이 섬에 오기 전, 사이코락스라는 마녀가 에리얼을 잡아 나무 속에 가두고는 그냥 놔둔채 죽었다. 그렇게 갇혀있던 에리얼을 프로스페로가 구해줬으니 말 잘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프로스페로는 에리얼에게 다른 사람에게 안 보이고 자기에게만 보이게 하라고 명령한다.
미란다가 다시 잠에서 깨고 프로스페로와 둘이 하인 칼리반(Caliban)에게 간다. 칼리반은 죽은 마녀 사이코락스의 아들인데 지금은 하인이 되었다. 칼리반은 프로스페로에게 저주를 퍼붓지만 두 사람은 그에게 말과 여러 가지를 가르쳐주었는데 은혜를 모른다고 야단친다. 프로스페로는 그에게 땔 나무를 주워오라고 시킨다.
눈에 안 보이는 에리얼은 음악을 연주하며 페르디난드를 안으로 끌어들이고 미란다와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처음 본 순간부터 서로 끌린다. 사실 미란다는 아버지와 칼리반 외에는 다른 남자를 처음 보는 것이었다. 프로스페로는 딸의 결혼 계획이 제대로 되는 것을 기뻐하지만 너무 빨리 진행되지 않도록 약간 훼방을 놓기로 한다. 그래서 억지로 핑계를 대어 페르디난드를 감옥에 가두려 한다. 페르디난드가 칼을 뽑지만 프로스페로는 마법으로 그를 제압하고, 미란다가 살려주라고 아우성치지만 옥에 가둔다. 그리고 에리얼에게 이상한 일을 시킨다.
섬의 다른 쪽에 무사히 도착한 알론조와 세바스티안, 안토니오, 곤잘로 등이 하늘에 감사드리면서 페르디난드의 행방을 궁금해 한다. 알론조는 딸을 튜니스 왕자와 결혼시키지 않았더라면 이 여행도 없었을 것이며 아들도 잃지 않았을 거라고 후회한다. 분위기를 바꾸려는 곤잘로가 섬이 아름답다고 칭찬하지만 안토니오와 세바스티안이 재를 뿌린다. 이때 안 보이는 에리얼이 나타나 음악을 연주하여 세바스티안과 안토니오만 남기고 모두 잠들게 만든다. 그러자 두 사람은 잠자는 사람들을 모두 죽이자고 모의를 하는데, 안토니오는 세바스티안에게 알론조를 죽이고 나폴리의 왕이 되라고 꼬신다. 행방불명인 페르디난드가 정말 죽은 것이면 후계자는 클라리벨 공주이지만 멀리 아프리카에 있으니 권리를 주장하지 못할 거라는 얘기다. 둘이 맘먹고 사람들을 죽이려는 순간 에리얼이 깨워서 곤잘로가 비명지르며 일어선다. 그 소리에 모두 잠이 깨서 쳐다보자, 칼을 든 두 사람은 사자가 나타났었다는 둥 거짓말을 꾸며댄다. 에리얼은 돌아가고 일행은 페르디난드를 찾으러 떠난다.
칼리반은 땔나무를 모으다가 트링쿨로(Trinculo)를 보자, 프로스페로가 보낸 귀신인줄 알고 숨는데, 외투를 덮고 땅에 엎드린 꼴이다. 마침 바람이 불자 트링쿨로도 외투 밑으로 기어 들어간다. 술취한 스테파노(Stefano)가 노래부르며 오다가 외투에 걸려 넘어져 서로 만나게 되지만 노래를 들은 칼리반은 '귀신이 떨어지면 더 열심히 일하겠다'고 스테파노에게 빈다. 스테파노는 이 괴물(칼리반)에게 술이 필요하다며 술에 취하게 만드려 한다. 곧 세 사람이 모여앉아 술을 마시는데 칼리반은 술을 좋아하며 노래도 한다.

 

 


프로스페로가 시킨 고된 나무 일을 하면서도 페르디난드는 미란다를 위해 그 일을 한다고 생각하여 아주 즐겁다. 그때 미란다가 와서 아버지가 자는 줄 알고 페르디난드에게 쉬라고 한다. 둘이는 서로 꼬시다가 미란다가 결혼을 요구하자 페르디난드는 승락한다. 한쪽에 숨어서 이것을 모두 본 프로스페로는 계획대로 된다고 아주 흐뭇하다.
술에 취해서 흥이 난 스테파노, 트링쿨로, 칼리반에게 에리얼이 안 보이게 나타나 서로 싸움도 시키고 흥분하게 만든다. 간이 커진 칼리반은 프로스페로를 죽이자고 한다. 두 사람이 그를 죽인 뒤에 딸을 차지하고 스테파노는 이 섬의 왕이 되라는 거다. 스테파노는 좋은 게획이라면서 프로스페로를 찾아 떠나기로 한다. 그러나 에리얼이 연주하는 음악에 홀려 우선 음악을 따라간다.
헤매던 알론조 일행이 지쳐서 쉬는 동안 안토니오와 세바스티안은 다시 음모를 계속하여 저녁에 사람들을 모두 죽이기로 한다. 안 보이는 상태로 그들 옆에 있던 프로스페로는 이상한 요정들을 시켜 만찬을 준비시킨다. 그런데 모두가 막 먹으려는 순간에 에리얼은 만찬을 사라지게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과 아들까지 잃은 것은 프로스페로를 몰아낸 죄 때문이라고 한다. 알론조는 죄책감을 느낀다.
프로스페로는 기분 좋게 페르디난드를 미란다의 남편으로 맞아주면서도 공식적으로 결혼식을 올리기 전까지는 미란다의 '처녀 매듭'(virgin-knot)을 풀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에리얼에게 요정들을 불러서 미란다와 페르디난드를 위한 노래극(masque)을 하도록 한다. 주노, 아이리스 등의 모습으로 나타난 요정들은 짧은 노래극을 보여주며 결혼을 축하한다. 이어지는 요정들의 춤을 프로스페로가 중지시키더니 자기 목숨을 노리는 음모를 막겠다고 한다. 요정들을 내보낸 프로스페로는 에리얼에게 트링쿨로, 스테파노, 칼리반에 대해 묻는다. 에리얼은 세 사람의 계획을 알려주며 그들을 음악으로 이리저리 이끌어 고생시키다가 더러운 웅덩이에 빠트렸다고 한다. 에리얼과 프로스페로는 멋진 옷을 걸어둔다. 칼리반을 포함한 세 사람이 프로스페로를 찾으러 왔다가 그 옷을 보고 훔치려 한다. 그러나 사냥개로 변신한 요정들에게 혼이 난다.
프로스페로는 에리얼을 시켜 알론조 일행을 부르고, 난파한 배에 잠들어있는 갑판장과 선원들도 부른다. 그리고 알론조, 안토니오, 세바스티안의 반역죄를 심하게 추궁하더니 끝에 가서 모두 용서한다. 알론조가 폭풍으로 아들을 잃었다고 하자, 프로스페로는 자신의 딸도 잃었다며 커튼을 연다. 거기에는 페르디난드와 미란다가 체스를 두는 것이 보인다. 알론조와 일행은 페르디난드가 살아있는 걸 보고 놀라고, 미란다는 처음 보는 사람들에 놀란다. 페르디난드는 아버지께 자신의 결혼 사실을 알려준다.
에리얼이 갑판장과 선원들을 데려온다. 갑판장은 폭풍 후부터 계속 잠들었다고 한다. 프로스페로의 지시로 칼리반과 트링쿨로, 스테파노도 풀려나는데 훔친 옷을 입고 있다가 알론조와 프로스페로의 지시로 옷도 돌려주고 방을 모두 청소하라고 한다. 이제 프로스페로는 알론조와 일행을 초대하며 지난 12년간의 얘기를 들려주겠다고 한다. 그 다음에는 밀라노로 돌아가서 공작의 권리를 되찾고 은퇴할 것이라 한다. 또 에리얼에게 마지막 임무로 돌아가는 뱃길을 잔잔하게 만들라고 한다. 그리고 프로스페로는 마지막 에필로그를 한다. 잘못된 것은 모두 용서하시고 박수를 쳐서 자신을 자유롭게 해달라고!

 

 

 

아주 환상적인 이 작품은 스토리보다 분위기와 등장 인물이 더 중요하다. 특히 섬에 사는 프로스페로, 미란다, 칼리반은 몹시 특이하여 다른 인물들과는 환상 대 현실의 극심한 대조를 이룬다. 우선 이 환상적인 인물들을 살펴보자.
프로스페로는 아주 불가사의한 인물이다. 동생이 꾸민 음모 때문에 피해를 봤다는 점에서는 동정이 가지만 다른 인물들에게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모습이나 극심하게 과장된 대사를 들으면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다. 처음 등장할 때부터 잘난 척하고 허세를 부리며 딸에게 과거사를 잘 들으라고 하지만 딸은 몹시 지겨워 한다. 프로스페로는 바로 그렇게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있다가 화를 당한 것이다. 공작이던 시기에 통치자로써 해야 할 일상사는 팽개치고 지식인지 마법인지에만 열중하다가 동생에게 자리를 뺏긴 것이다. 그는 마법을 쓰기 때문에 힘이 강하지만 관객은 바로 그 마법 때문에 그에게서 멀어진다. 그는 칼리반에게 잔인하고 짖궂을 정도로 막 대하지만 에리얼에게는 약간 타협적이다. 그러면서도 정당해 보이는 에리얼의 요구를 강압적으로 무시해 버린다. 또 자기 딸과 결혼 시키려는 페르디난드를 가두고 노예처럼 부리는 것도 좀 기분 나쁘다. 이렇게 문제점이나 부족한 점은 많지만 그래도 프로스페로는 '템페스트'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작품의 플로트를 진행하고 여러 가지 계획을 꾸미며 마지막 해피엔딩을 위한 모든 것을 혼자서 다 한다. 다시 말해서 이 드라마의 기승전결 모든 것이 프로스페로 한 인물에 들어있는 셈이다. 많은 비평가들은 그런 면에서 이 인물을 셰익스피어의 분신으로 본다. 관객에게 볼거리를 만들어주고 또 맘대로 뒤바꾸는 것을 보면 그럴만도 하다. 특히 마지막 대사에서 관객에게 사과하면서 박수를 청하는 것은 정말 작가가 관객에게 하는 말 같다. 그리고 그 덕분에 마지막에 감동적인 휴머니즘과 예술의 멋이 나타난다. 더구나 제 4, 5막에서 프로스페로는 약간 맘에 드는 인물로 변하여 딸에 대한 사랑, 적을 용서하는 아량 등으로 해피엔딩을 만들어낸다. 권위적인 면이 좀 심하지만 그것은 관객이 세상을 더 잘 이해하도록 하려는 것이라는 작가의 변명이 딸려있다. 미란다는 15세의 처녀로 점잖으면서도 정열적이지만 몹시 수동적인 인물이다. 처음 등장한 장면에서는 난파한 배를 보고 괴로워하더니, 아버지가 밀라노에서 쫓겨난 얘기를 듣고는 역시 아주 슬퍼한다. 그리고 남편감을 스스로 고르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가 꾸민 계획에 따라서 만난 남자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이버지가 결혼을 승낙한 뒤 페르디난드와 함께 여자의 처녀성에 대해서 또 신혼의 침실에 대해서 아주 솔직하게 얘기할 때도 옆에 조용히 서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커튼 뒤에 있다가 페르디난드와 함께 체스를 두는 모습을 보일 때도 인물이라기 보다는 소품 같다. 그러나 이렇게 소극적인 미란다가 최소한 두 곳에서 놀라운 힘과 용기를 보이기 때문에 관객은 미란다를 순진한 어린 처녀로 보기 어렵다. 제 1막의 프로스페로, 칼리반과 함께 나오는 장면에서 칼리반이 예전에 미란다를 겁탈하려고 했다는 얘기가 나오자 미란다의 태도는 돌변하여 아주 거칠어진다. 이때 하는 대사가 하도 놀라워서 어떤 대본에는 프로스페로의 대사로 바꿔져 있을 정도다. 다음은 제 3막 1장에서 페르디난드에게 청혼하는 대사다.
I am your wife, if you will marry me; 당신이 결혼해주면 나는 부인이 되지만
If not, I'll die your maid 아니면 나는 당신 하녀로 죽을 거예요
더구나 이 대사는 아버지가 페르딘나드와 말하지 말라고 한 직후에 나온 것이다. 그러니 앞의 칼리반에게 한 대사나 이 대사를 보면 미란다는 최소한 자신의 성생활에 관해서는 할말 다하는 여자로 보인다.
칼리반은 검고 못생긴 노예다. 원래는 마녀의 아들이자 이 섬의 유일한 원주민인데 프로스페로의 힘에 눌려 노예가 됐고 다른 인물들은 그를 괴물이라고 놀린다. 그런데 칼리반은 복잡한 성격으로 다른 인물들을 놀리거나 반영하기도 한다. 프로스페로와 만나는 첫 등장 장면에서는 프로스페로가 이 섬을 뺏었다고 하며 동생에게 통치권을 뺏긴 프로스페로와 똑같은 신세라고 한다. 이 섬의 권력을 되찾으려는 것은 안토니오의 야망과 비슷하고, 스테파노와 트링쿨로를 꾀어서 프로스페로를 죽이려는 것도 안토니오와 세바스티안의 음모 그리고 옛날 벌어진 알론조와 안토니오의 반역과 비슷하다    
칼리반은 다른 부하 에리얼과도 대조를 이룬다. 에리얼이 공기의 요정이라면 칼리반은 땅의 요정인 셈이고, 에리얼이 자의로 프로스페로의 일을 해주며 권위와 자유를 얻으려는 것에 비해 칼리반은 프로스페로에게 절하기 거부하고 음모를 꾸미면서 다른 의미의 권위를 얻는다. 페르디난드 역시 칼리반과 대조된다. 프로스페로가 시킨 일을 칼리반은 마지 못해 하지만 페르디난드는 즐겁게 한다. 또 둘 다 미란다의 '처녀 매듭' 푸는 일에 관심이 있어서 페르디난드는 결혼하지만 칼리반은 겁탈하려 한다. 페르디난드는 미란다와의 로맨틱한 사랑을 원하지만 칼리반은 그저 미란다를 임신시키려고 할 뿐이다.
이런 칼리반은 불행하게도 아주 멍청하다. 처음 프로스페로가 섬에 왔을 때 구석구석 보여주고 잘해줬기 때문에 피해를 당했다고 불평하면서도 몇 장면 뒤에는 또 다시 스테파노와 트링쿨로에게 구두를 핥으면서 아부하고 똑같은 짓을 반복한다. 그리고 결국 반역 음모가 발각되어 더러운 웅덩이에 빠지고 벌을 받아 방청소나 하는 꼴이다. 이렇듯 괴상한 모습에 야만스런 태도와 바보스런 칼리반이지만 그에게는 프로스페로나 미란다가 모르는 고상하고 섬세한 면도 잠시 나타난다. 이 섬에 대해서 그가 하는 대사는 아주 멋지기 때문에 백인 침략자 프로스페로에게 정복 당하기 전에는 이 섬의 원주민인 그가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는지 잘 알 수 있다. 결론을 내리자면 칼리반은 스스로 바보의 모습을 하고 있는 섬세한 괴물로 셰익스피어가 만든 인물 중 아주 훌륭한 조역으로 꼽힌다.

 

 



요즘은 연출가나 공연하는 사람들이 작품의 주제를 새롭게 정해서 원작과 다르게 공연하는 것이 유행이다. 그러나 그런 변칙을 쓰기 위해서는 원래의 주제를 알아야 한다. 물론 주제는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엉뚱한 것이 나올 수도 있다.
‘정의’라는 것이 얼마나 일방적이고 또 허항된 것이냐 하는 것이 ‘템페스트’의 첫 번째 주제다. 동생의 모함으로 권좌를 뺏겼기 때문에 그에 대해 정의의 심판을 내리겠다는 것이 프로스페로의 생각이지만 그러는 자신은 에리얼과 칼리반을 부당하게 노예인지 부하인지로 부리고 있다. 그런 식으로 프로스페로가 생각하는 정의라는 것은 다분히 일방적인 견해이고 자기에게 이로운 쪽으로만 주장을 펼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그런데 얘기는 진행되면서 점점 이상한 쪽으로 변한다. 즉 프로스페로가 주위 인물과 사건을 조종하면서 마치 작가가 작품을 꾸미는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관객은 프로스페로를 작가와 동일시하면서 그의 정의에 대해서도 조금 동정적으로 변한다. 실제로 그가 정의를 구현하려고 쓰는 방법은 작가가 세상을 보여주려는 방법과 아주 비슷하다. 결국 작품 속에 작가가 등장하여 주변 인물과 관객을 설득하여 해피엔딩으로 이끄는 것이다. 적을 용서하고 노예를 풀어주고 난 뒤의 프로스페로는 그저 관객을 기쁘게 해주려는 노인의 모습일 뿐이다. 좀 억지이고 갑작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해피엔딩은 언제나 가능하다는 것도 주제일 수 있다.
괴상한 인물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인간과 괴물을 구별하기 어렵다’는 것도 주제다. 미란다는 처음 본 남자 페르디난드에게 반하면서도 칼리반은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말도 가르쳐주고 인간다운 대접을 해서 간신히 사람 비슷하게 만들었지만 천성이 괴물이라 고칠 수 없다는 결론이다. 물론 말이나 인간 대접은 칼리반이 바란 것이 아니다. 프로스페로와 미란다는 칼리반과 여려 면에서 갈등을 보인다. 칼리반은 프로스페로에게 친절히 대했지만 오히려 옥에 갇혔고, 칼리반이 미란다를 겁탈하려 했기에 프로스페로는 그를 친절하게 대하지 않았다는 식이다. 그러니 칼리반 입장에서 보면 프로스페로가 괴물인 셈이다. 주정뱅이 트링쿨로가 칼리반을 보며 괴물이라고 하는 것도 뒤집어서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다.
‘권력에 대한 야심’ 혹은 ‘식민지 통치’도 뚜렷한 주제다. 누가 살던 섬인지 모르지만 마녀가 와서 아들과 살다 죽었고, 그 후 칼리반은 ‘자기 스스로의 왕’이었는데 난데없이 프로스페로가 딸을 데리고 나타나서 그를 노예로 만들었다. 곤잘로는 이 섬에 유토피아를 세우고 싶어하지만 그가 왕이 되려는 야심이 있다. 알론조의 배신, 신하들의 음모, 칼리반의 계획에 의한 두 주정뱅이의 야망을 보면 모두가 권력에 대한 욕심이 가득하다. 그나마 다행스런 것은 이런 흉계와 야망이 대부분 바보들에 의해 꾸며지기 때문에 우습게 보인다는 점이다. 특히 칼리반은 자신을 노예로 만든 프로스페로를 저주하면서도 낯선 사람들을 보자마자 스스로 그들의 노예가 되는 모습이다.
작품들
인터넷에서 ‘템페스트’라는 검색어를 치면 게임과 록 그룹을 비롯하여 별별 게 다 나오는데 유명 예술작품 중에서는 베토벤의 ‘템페스트’가 가장 많이 나오는 것 같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루드비히 반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제 17번 ‘템페스트’ 작품 31-2(Sonata for Piano No.17 'Tempest' Op.31-2)다. 소나타 중 가장 유명한 ‘월광’은 제 14번이고 다음으로 유명한 ‘비창’은 제 8번이며 열정‘은 23번이다. 그러니까 유명 소나타 중에서 가장 뒤에 쓴 곡이며 ‘초기 피아노 소나타 총결산’으로 불리는 명곡이다. 제자가 베토벤에게 이 소나타를 이해하기 위한 힌트를 달라고 하자 베토벤이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읽어보라!‘고 했기 때문에 ’템페스트‘라는 제목(?)이 붙었다. 이 작품을 만들던 시기의 베토벤은 귓병이 악화되어 절망 상태였고 (눈이 안 보이는 화가를 생각해 보라!)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요양을 하며 유서도 쓰던 때였으니 외딴 섬에서 고생하는 프로스페로의 기분이랑 비슷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기분이 과연 음악에 잘 살아있는지 희곡을 읽은 분은 한번 들어보기 권한다.
차이코프스키의 ‘템페스트’도 있다. 교향적 환상곡(Symphonic Fanatsy)이라는 것은 교향곡이 되다가 만 오케스트라 연주곡이려니 생각하면 된다. 차이코프스키는 좀 이상한 친구였다. 법대 나와서 법무부에 취직했는데도 법은 거들떠보지 않고 음악만 했다. 더구나 당시 유행은 민족주의였고 러시아 국민악파 5인조 같은 세력이 러시아 음악을 만들자고 선동하던 때였는데 차이코프스키는 외제선호 사상을 못 버리고 서유럽의 음악과 예술에 취해서 외제(?) 음악만 만들었다. ‘템페스트’는 차이코프스키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1876년에 만들었다. 법대 동기들에게 왕따 당하고 민족음악가들에게 욕먹고 결혼도 못하면서 호모냐 아니냐로 고민하던 시기였는데 ‘템페스트’의 어떤 면에 끌렸는지 궁금하다. 이 작품에 대해서 민족음악가들은 왕창 욕을 퍼부었다. 그러나 차이코프스키는 들은 체도 않고 얼마 뒤에 또 환상서곡 ‘로미오와 쥴리엣’을 만들었다.
세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영화로 만든 작품들은 의외로 많다. 1998년 잭 벤더 감독이 만든 ‘템페스트’(The Tempest)는 현대식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피터 폰다가 미국 남부의 농장주로 나오고 흑인 노예 문제에 남북전쟁까지 동원하고 미시시피 늪지대를 무대로 벌어지는 특수효과가 볼만하다는데... 아직 못 밨다.
1982년 폴 마주르스키 감독이 만든 이스라엘 영화 ‘템페스트’는 특이하면서도 멋지다. 레온 카페타노스와 폴 마주르스키가 각색을 맡은 이 작품은 뉴욕 맨하탄에서 시작하여 그리스로 무대가 바뀌어 벌어진다. 화면과 연기가 잘 어울려서 지적이며 신비함을 갖춘 작품이 되었다. 그리스 섬의 아름다운 경치도 좋고 수잔 새란던과 얼마 전에 죽은 라울 훌리아(Raul Julia)의 연기도 좋고 옛날 배우 비토리오 가스만도 나온다. 주인공 부부로 나오는 존 캐사베테스와 지나 롤랜즈는 실제 부부다.
영국의 컬트 영화감독 데렉 자만이 각색과 감독을 맡은 1979년의 ‘템페스트’는 원작보다도 더 괴상한 작품이다. 데렉 자만의 스타일답게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와 구성이 색다르고 영국 연극배우들인 연기자들도 아주 잘한다. 다만 영국인 특유의 블랙유머가 너무 심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아니, 영화를 본 뒤에도 기분이 찝찝하다. 영화예술 케이블TV에 있을 때 이걸 수입해서 방영했더니 의외로 자꾸 재방송 해달라는 요구가 많아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1980년 영국에서 TV시리즈로 만든 세익스피어 전작에도 이 작품이 들어있지만 별로 좋은 평가는 못 받았다. 내가 어릴 때 본 영화 중에도 ‘템페스트’라는 작품이 있었다. 반 헤플린과 실바나 망가노 주연의 이 영화는 짜르 시대의 러시아를 무대로 벌어지는 전쟁 영화로 셰익스피어와는 아무 상관없는 작품이다.
뮤지컬 ‘포비든 플래닛’(Forbidden Planet)은 1989년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공연되어 히트한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도 공연했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중심으로 다른 유명 작품의 대사들을 모아서 만든 대본에 엘비스 프레슬리, 스테픈 울프 등의 노래로 뒤덮은 괴상한 뮤지컬이다.
우리나라에서 공연한 작품 중에서는 이윤택과 장수동이 둘 다 ‘태풍’이라는 제목으로 각색한 작품들이 유명하고 볼만했는데 특이한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대사를 살리는 공연이 아니라 각색력이나 연출력을 보여주는 공연들이었기에 배우들은 모두 소품으로 전락한 느낌이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는 작품 내용이나 작품 속의 대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작품이라 생각하...고 싶은 모양인데 은퇴작이라고 우길 수는 있어도 마지막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다.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 이후에도 최소한 한 편(사극 ‘헨리 8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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