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브람 스토커 '드라큐라백작'

clint 2018. 5. 12. 10:08

 

 

 

전세계 인구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이야기 중 하나인, 흡혈귀 '드라큘라'에 대한 이야기.
이 작품은 조나단 하커라는 영국인이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에 있는 오래된 성에 사는 드라큘라 백작을 만나러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런던에 있는 고성을 매입한다는 명목하에 하커를 유인한 드라큘라 백작의 실체는 죽은 뒤에도 사람의 피를 빨아 연명하는 흡혈귀. 성에 머무는 내내 알 수 없는 공포와 의문 속에 휩싸여 있던 하커는 흡혈귀의 포로가 되었음을 깨닫고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한다. 한편 조나단의 약혼녀 미나는 함께 지내는 친구 루시가 밤마다 집 밖으로 나가기 시작하면서 갈수록 창백해지는 것을 걱정하는데…

흡혈귀의 대명사 드라큐라 백작이 펼치는 밤의 공포. '흡혈귀'라는 모티프는 전 세계 문화권의 거의 모든 곳에서 발견되지만 이 작품은 유럽 지역에 전해져 오면서 확장되고 변형된 '드라큘라' 설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 영국의 전성기였던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살인을 저지르며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드라큘라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공포스럽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혐오감을 주지는 않는다. 저자의 고풍스럽고 품격있는 문체가 내용의 선정성을 보완하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큘라는 어디까지나 소설에 등장하는 상상의 캐릭터이지만, 실제로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본 작품이 매우 유명해졌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드라큘라와 흡혈귀를 동일시하는 사람이 많다.그러나 드라큘라는 흡혈귀와는 전혀 다른 존재로써 흡혈귀가 사람 성별을 가리지 않는 반면 드라큘라는 오직 여자의 피만 빨아 먹는다. 드라큘라의 모델은 15세기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 지방 출신의 왈라키아 공 블라드 체페슈로 알려져 있지만, 둘 사이의 공통점이라고는 블라드의 별명인 드라큘라와 출신지가 오늘날의 루마니아라는 점 뿐이다. 예를 들면 블라드는 왈라키아인이며  공작이지만, 이 작품에 등장하는 드라큘라는 트란실바니아의 제켈리 민족으로 작위는 백작이다. 또한 드라큘라 백작은 자신을 블라드라고 자칭하지도 않으며, 자신의 과거사를 말할 때도 블라드 공을 연상시키는 일화는 전혀 없다.

 

 

 

브램 스토커는 43살 때, 중유럽의 역사와 민간전승에 해박했던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대학교의 동양어과 교수 아르미니우스 밤베리를 만났고, 그에게서 블라드 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후, 드라큘라라는 블라드 공의 이국적인 별명에 끌려 드라큘라 백작이라는 캐릭터를 창조해낸 것이었다. 아마도 스토커는 블라드 공의 이름과 그와 관련된 간단한 일화 이외는 거의 몰랐을 것으로 여겨진다.       

오히려 소설 드라큘라는 아일랜드의 흡혈귀 전설 그리고 드라큘라 이전에 쓰여진 같은 흡혈귀 작품인 카밀라 (1872년)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드라큘라의 초판의 무대는 트란실바니아가 아닌 카밀라와 같은 오스트리아였다. 아름다운 외모나 귀족다운 품위, 낮에는 관에서 자는 버릇 등도 카밀라와 유사한 요소로 이후의 흡혈귀 관련 작품에 사용되었다.  나중에 1931년 개봉한 토드 브라우닝의 드라큘라를 시작으로, 드라큘라 관련 영화가 수십 편 제작되던 중에 어느새 블라드 공을 연상케 하는 설정이 덧붙여지면서, 블라드 체페쉬=드라큘라가 정착한 것으로 여겨진다. 올백의 헤어스타일, 검은 망토 등 대중적으로 알려진 드라큘라의 외관적 이미지도 이 영화의 영향력이다.     

 

 

이 소설이 루마니아어로 번역된 시기는 1989년 공산주의 정권이 끝난 후인 1990년이며, 그때까지 루마니아에서 드라큘라 백작은 무명의 존재였다. 트란실바니아 현지에서도 흡혈귀 전설은 없다. 블라드 공과 관련해, 흡혈귀와 비슷한 기록이나 전설, 전승은 전무하다. 각종 영화에서는 드라큘라의 모델인 블라드 공이 트란실바니아에 살았던 것으로 나오나 실제로는 왈라키아 지방에 성을 두고 살았으며 트란실바니아지역에서 살았던 적은 없다고 한다. 블라드 공의 성은 대부분 허물어져 흔적만 남아있을 뿐인데 루마니아에 현존하고 있는 브란 성이 블라드 공의 성으로 잘못 알려져있다. 하지만 브란 성은 블라드 공의 성과 거의 같은 구조라고 한다. 드라큘라의 모델이 블라드 공이라는 사실에 대해, 현지에서는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관광에 이용할 수 있다고 좋아하는 이들도 있는 반면, 조국의 영웅을 괴물 취급하는 것에 대해 불쾌해하는 이들도 있다.

 

 

브람 스토커.

1847년 더블린에서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똑바로 서지도 못할 정도로 병약했으나, 이를 극복하고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하여 뛰어난 운동선수로 활약했을 뿐만 아니라 역사학회 및 철학 학회 회장이 되었다. 순수 수학을 전공하고 졸업한 뒤, 1870년에서 1877년까지 더블린 성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공직에 있으면서도 틈틈이 연극 평론을 쓰던 그는 당대에 가장 유명했던 연극배우 헨리 어빙에게 매료되어 《더블린 메일》에 그에 대한 찬사를 기고한다. 이를 계기로 어빙과 친교를 나누게 되고, 결국 1878년 공직을 떠나 런던 라이시엄 극장의 비즈니스 매니저로서 새로운 경력을 시작한다. 어빙과의 관계는 그를 런던의 상류 사회로 이끌었고, 수많은 유명 인사와 교류하는 기회를 주었다. 후에 그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헨리 어빙에 대한 추억』(1906)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가 남긴 작품으로는 『드라큘라』(1897)를 비롯하여 『해상의 미스터리』(1902), 『수의 입은 여인』(1909), 『하얀 벌레의 굴』(1911) 등이 있다. 1912년 사망했다.
『드라큘라』는 스토커가 쓴 여러 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성공한 작품이다. 1897년 초판이 발행되자 곧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고딕 호러 소설의 고전으로서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백 편의 영화, 연극, 뮤지컬 등으로 재탄생하며 대중문화의 다양한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