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안톤 체홉 '곰'

clint 2018. 5. 8. 21:18

 

 

 

 

 

아무도 만나지 않을 거란 일념으로 자기 스스로를 벽에 가두어 놓고 7개월 째 상복을 벗지 않은 채 생전 자신에 대한 남편의 부당한 행동들을 꼬집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남편을 향한 그리움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뽀뽀바. 이를 지켜보는 하인 루까는 안타까움에 바깥 세상 이야기를 그녀에게 들려 주지만 재미없는 이야기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아무도 만나지 않겠다는 뽀뽀바에게 어느 날 죽은 남편의 빚을 받으러 찾아 온 스미르노프는 거침이 없고 막무가내다.

하지만 뽀뽀바는 이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을 뿐더러 당장은 갚을 돈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니 돌아가라고 말한다.

 닥달하는 스미르노프와 거들떠보지도 않는 뽀뽀바! 온갖 실랑이 속에서 화가 난 뽀뽀바는 스미르노프에게 온갖 치욕스런 말들을 내뱉게 되고 이에 광분한 스미르노프는 결투를 신청하게 되며 뽀뽀바는 이를 주저없이 수락한다.
험상궃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 순박한 스미르노프, 깍쟁이 인 듯 하지만 순진한 뽀뽀바. 결투를 준비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그들은 이제까지 느끼지 못했던 서로의 매력을 하나하나 발견하게 되고 스스로가 조금씩 변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까지 만난 뭇여성들과는 다른 매력의 뽀뽀바에게 스미르노프는 결국 고백을 하게 되고 스스로의 갈등속에 휩싸인 뽀뽀바도 스미르노프를 거부할 수는 없었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고 그 누가 말했던가?

 

 

 

 

 

요전에 [지금 대학로엔 체호프가 산다]라는 기사를 읽은적이 있다. 그도 그럴것이 [갈매기] [곰] [벗나무 동산] [청혼 그리고 결혼 피로연] 등 올려지는 공연마다 체홉의 작품들이니 말이다. 그중 오늘은 열린극장의 [곰]을 만나보았다. 단편이어서 좋은 점은 무엇일까? 일단 내용이 아주 간결하다. 그리고, 적당한 여운을 줄 수 있어서 보는 이들에게 되새김질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하기야 난 한때 영화도 단편영화에만 빠져본 적이 있다. [햇빛 자르는 아이] [간과 감자] 등 단편만이 주는 묘한 느낌이 참 좋다. 요즘 대학로에서 만나볼 수 있는 체홉의 단편들도 나에게는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설정자체가 단순하다보니 짧은 시간에도 쉽게 몰입이 되고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가 있어서 좋다. 장편(?)에서 느껴볼 수없는 즐거움이 여기에 또 한 자리를 차지한다. [청혼 그리고 결혼피로연]에서 보았던 체홉만의 아기자기함을 이 작품 [곰]에서도 만끽할 수가있다. 결코 장엄하지도 또한 진지함을 요구하지도 않지만 나름대로의 세상사를 재미있게 다루고 있는 이 작품들이 참 간결하고 좋다. 빚을 받기 위해 찾아온 남자 스미르노프는 7개월 수절과부 뽀뽀바에게 묘한감정을 느끼게 되고 애초에 빚장이로서의 의무(?)는 까마득하게 잊어버린다. 이 점은 [청혼] 에서 보았던 것처럼 사람들이 어떤 사소한 감정에 의해서 자신의 주목적을 가끔 잊고 혼동하는 것을 또한번 여실하게 느끼게 해준다. 그런데, 이점이 어찌 스미르노프나 야찌 개인적인 문제이랴. 모든 세상사람들이 한번쯤은 자신도 모르게 겪어봤을 인간 군상의 문제인걸.

 

 

 


그래서 체홉의 작품들은 재미가 있다. 재미있고 가벼우면서도 뭔가를 날카롭게 꼬집어내는 그만의 작품철학이 있는듯하다. 단편만이 가질 수 있는 이런 장점들이 작품마다 녹아들어가 있다. 그래서 대학로에서 그의 작품이 사랑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몇몇 작품만을 보고 확대해석하는것도 무리가 있겠지만 내가 그렇게 느끼면 그뿐일뿐.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러시아 문학은 항상 애로점이 있다. 인물들의 이름이 그것인데 극을 보다보면 어느새 그건 문제가 되지 않음을 안다. 어짜피 세상사는 이야기야 거기서 거기이니까 말이다. 당분간 체홉의 작품들이 계속적으로 올려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그러면 난 역시 가벼운 마음으로 그를 만나러 갈 지도 모르겠다. 오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