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작품에는 반파시즘이라는 분명한 정치적 색깔이 들어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작품 전체를 숨막히게 하지 않는다. 그것이 대단한 것이다. 비슷한 정치시기의 우리나라의 반독재성향의 작품들을 생각해 볼 때 이 지적은 더욱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포는 자신이 전달하고 싶은 것을 지루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야기 속에 녹여내는 재주를 보여주며 또한 무대위의 상황에 적당한 과장과 유머를 곁들여 그 이야기 속에 관객에 심각하게 침잠하게 내버려 두지 않으며 그들이 적당한 거리감을 갖도록 유도한다. 그의 이야기는 관객의 지적능력을 평가절하도 절상도 하지 않는다.
작품의 구조는 단순하지 않다. 그저 정치에 대한 풍자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에는 건축학도였던 작가가 연극에 끌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 수 있게 하는 설정이 있다. 즉 연기라는 것이 오히려 현실의 기만을 벗겨낸다는 설정이 그것이다. 이를 위해 연기에 중독된 '미친놈'을 주인공으로 쓴 그의 발상은 아주 기발하다. 또한 미친놈 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사기를 치고, 연기를 하고 있는 상황을 무대 뿐만이 아니라 관객석으로까지 확대시켜 그들에게 사기치고 속이는 현실 속에 노출되어 있다는 두려움을 직접적으로 주고 있다는 것도 매우 흥미롭다. 즉 관객석을 향해 경찰부장이 '이 중에도 우리가 심어 놓은 프락치가 있다'면서 그들의 출석을 체크하는 장면이 그렇다. 포의 시대에 분명 이 연극을 보러 온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었을 이들에게 배우의 이러한 말은 직접적인 위협이 되었을 것이다.

공사직 사칭으로 12번이나 체포된 일이 있는 국립정신병원에서 공인받은 미치광이가 또 다시 정신과 의사에다 대학교수로 행세하다 체포되어 심문 받으면서 연극은 시작된다. 취조하는 형사부장을 해박한 법률지식과 황당무게한 궤변으로 놀리다가 쫓겨난 미치광이 어릿광대가 다시 형사부장실로 숨어 들어 왔다가 우연히 열차와 은행 폭파사건의 혐의자로 체포되어 5층 정보부장실에서 심문 받던 중 자살발작 증세가 일어나 창밖으로 뛰어내려 투신자살한 것으로 발표된 한 무정부주의자의 기록을 보 게 되는데…
미치광이 어릿광대가 이번에는 반대조사를 하려고 밀라노시 경찰국에 파견된 고등법원 판사로 변장하고 무정부주의자가 자살했다는 사건의 현장인 5층 정보부장실에 나타나는데....
무정부주의자의 죽음은 결국 정치적 책략의 제물이었음이 밝혀지는데 그것을 밝혀내는 방법과 과정에서 [다리오 포]는 단연 독창적이고 기발하다. 직권 사칭과 변신의 귀재인 미치광이 어릿광대를밀라노시 경찰국에 투입시켜, 미친 어릿광대를 진짜 고등법원판사로 착각한 시경국장, 정보부장으로 하여금 무정부주의자를 고문치사시킨 자백을 실연을 통해 받아내고, 그들과 4층 형사부장간에 내분을 일으켜 그들의 추악한 타락과 음모를 속속들이 털어놓게 만든다. 결국 그들 스스로 자기 팔목에 수갑을 채우고 현직대통령을 미치광이 사기꾼으로 매도 뒤잡기의 절정에까지 이르는데.....

시종일관 조롱과 웃음이 끊이지 않는 이 작품에서 극의 중심인물인 ‘미친놈’은 판사로 위장하고 국가의 정보통제와 음모, 속임수를 폭로하며 익살스럽고 경쾌하게 사건을 파헤치고 재구성해 나간다.

다리오 포 (Dario Fo)
1926년 3월 24일 이탈라이 롬바르디아주 바레세현의 작은 마을 산지아노(San Giano)에서 태어났다. 1940년 밀라노에 있는 브레라(Brera)아카데미에 들어갔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뒤 공과대학에 들어가 건축학을 전공했으나 학업을 중단하고, 소규모 카바레나 극장용 시사풍자극 리뷰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때 만난 유랑극단 단장의 딸이며 여배우였던 프랑카 라메와 결혼했다. 1959년 아내와 함께 '다리오 포-프랑카 라메 극단'이라는 급진적인 극단을 창단해 국영 RAI 텔레비전에서 촌극 《칸초니시마》를 공연해 인기를 얻었지만, 정치풍자가 문제되어 중도하차당했다. 1968년부터는 이탈리아 공산당과 협력하여 연극단체 '누오바 스케나'를 결성해 공장, 체육관 등 대중이 모이는 장소에서 순회공연을 갖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발표된 작품이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우연한 죽음》이다. 그는 특히, 파시스트 당권력에 대한 고발과 뚜렷한 민중주의 시각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파시스트들로부터 공격대상 1호로 꼽히는 예술인이었다. 그는 단지 이탈리아의 역사적 상황만을 잘 풍자한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적 위기를 겪는 모든 사회를 통찰하는 극작가였다. 그의 연극은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위한 도전이자 체제 밖에 있는 자의 대변으로 평가된다. 하층민의 삶을 위엄있게 그려내고, 권위주의를 재치있게 그려내는 등 현실 참여와 재미, 통찰력을 갖춘 작품을 창조한 공로로 1997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이것으로 포는 1969년의 새뮤얼 베케트 이후 극작가로서는 두 번째, 이탈리아인으로서는 여섯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
대표작으로는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우연한 죽음 Accidental Death of an Anarchist》(1970), 《교황과 마녀 The Pope and the Witch)》(1989), 《요한 패던과 아메리카의 발견 Johan Padan and the Discovery of America》(199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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