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하이너 뮐러 '헐값 노동자'

clint 2018. 5. 8. 20:58

 

 

Der Lohndruker
하이너 뮐러(Heiner Muller) 作(작)
정민영 옮김

 

 

이 작품은 극작가가 결정할 수 없는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사이의 싸움을 마지막 막이 내리기 이전에 새로운 것의 승리로 끝나는 것으로서 나타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작품은 그것을 결정할 새로운 관객에게 이를 위임하고자 한다. 이 작품의 이야기는 1948/49년의 동독을 무대로 이루러진다. 원형연결가마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이야기는 가공의 것이다. 어떤 관점에서 보더라도 50년대에 나온 뮐러의 초기 드라마들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용어는 생산극이다.이 드라마들의 배경은 대단위 콤비나트 『수정』,『돌의 흔적』,『건설』,『헐값 노동자』 또는 『이주해 온 여인』과 『트랙터』이다.이 초기 드라마에서 뮐러는 사회주의로 방향을 잡은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건설을 관찰한다. 그러나 이미 동독 건설기에 많은 성숙한 작가들조차 스탈린 찬양에 마음을 빼앗기던 그 시기에 뮐러는 항상 이론의 잣대를 대야하는 체험한 현실에 눈감지 않는다. 여기에서는 국유화로써 대두되는 여러 문제들이 소위 “비적대적 모순”으로만 나타난다. 이를 주어진 사회주의 체제의 틀 속에서 아름답게 설명한다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뮐러는 동독을 단순히 아름답게만 꾸미지 않았다. 그는 처음부터 정신분열증과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동독 내부에서 한숨을 쉬면서, 그리고 그 현상을 해석하면서 현실과 프로그램 사이의 모순을 비판적으로, 사유적으로 체험한다. 1956년에 나온 『헐값 노동자』가 대표작이라 할 그의 생산극 내지 작업조극들은 이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헐값 노동자』의 근본 내용은 공장 안, 관리부와 사무실, 노조 집회 또는 새로운 노동자-농민 국가의 거리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며 어떤 것이 여전히 추구하는 이상에 상응하지 못하는가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잘못된 기획, 경영 부실 또는 잘못된 의식이 전면에 드러난다. 『헐값 노동자』의 중심 인물은 사회주의를 믿고 있는 외로운 개인, 발케이다. 그는 동물처럼 일하는 노동자이며 자기 착취자이고 뼈가 부서지도록 일하는 중노동자이다. 벽공들의 작업조는 강력한 계급 투쟁으로 적대적 흐름에 세차게 저항한다. 그러나 성공하는 건 늘 아니다. 발케는 1950년 노동 기준의 초과 달성을 통해 “노동영웅”으로 주목받고 프롤레타리아의 본보기가 되는 인물로 등장한 동베를린의 벽공 한스 가르베의 실제 모습을 따른 인물이다. 이미 1948년 가을에는 아돌프 헤넥케라는 이름의 한 광부가 자기 노동기준의 387 퍼센트를 초과 달성한 일이 있었다. 이제 뮐러에게 있어서 말하자면 “헐값 노동자”인 발케는 낡은 것과의 의미 있는 관계를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낡은 것을 급진적으로 없애는 대신, 낡은 공장 시설의 잔해를 딛고 계속 공장을 가동시키면서 새로운 것에 도달하는 것이다.

 

 

『헐값 노동자』는 분명히 브레히트의 전통과 20년대 말엽의 선동극 전통을 따르고 있는데 말하자면 최소한 종래의 선동극 형태를 이용하지 않으면서 선동극의 새로운 형태를 발전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헐값 노동자』가 선동극의 경향을 포함하고 있다 하더라도 뮐러에게 문제되었던 것은 당의 선전문구를 드라마화하는 일이 분명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에서 자본주의를 특징짓는 소외 현상은 사회주의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드라마의 첫 번째 문장에서 마지막에 매우 많은 것들이 열려 있을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이 모범 노동자가 생산 전투에서 승리하고, 완강한 동료 노동자들이 낡은 사고구조의 사슬에서 해방되며 새로운 방법에 동의하고, 그런 가운데 파업하는 계급의 적에게 자제를 요구했다고 결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상황은 완전한 모순들 속에 숨어 있다. 상황은 개축되어야 하는, 둘로 된 원형가마처럼 그렇게 미결로 남아 있다. 불필요한 말은 없으며 대화는 거칠다. 대화는 전쟁이후의 현실을 그대로 담아내고자 한다. 본질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중노동이다. 사람들은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만 말을 할 뿐이다. 1957년에 발표되고, 1958년에 초연된 『헐값 노동자』는 하이너 뮐러의 연극 중 가장 밀도 있고 가장 강력한 최고의 연극이다. 눈부신 조형력, 맑은 명료함으로 가득한, 그리고 봉기적 표현으로 게오르그 뷔히너의 사회비판을 연상시키는 드라마이며, 어렵고 불가능하게 보이는 건설과 날 때부터 병든 국가의 탄생에 관한 학습극이다. 이 작품은 곧바로 상부의 불신을 야기했다. 어떤 완결된 해결을 제공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모순들을 드러내 주었기 때문이다. 뮐러는 마르크스주의자로서 동독에 봉사하고자 하나, 물론 그 방법은 비판을 수단으로 한 공격적인 것이다. 이 작가는 기본적으로 편안한 줄거리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헐값 노동자』의 서문에서 의미 있게 밝히고 있듯이, 관객들 내부로 들어가야 할 여러 문제들을 구상한다. 갈등은 바로 그 문제들 안에서 판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뮐러는 새로운 것이 이미 오래 전부터 낡은 것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며, 그래서 낡은 것이 좋지 않다는 점을 암시한다.

강압적인 정치구조는 최소한 무대 위에서 이 같은 모순들을 억누른다. 『헐값 노동자』는 30년 동안 반갑지 않은 작품으로 남는다. 1988년 뮐러는 비로소 동베를린의 독일 극장에서 자신의 첫 번째 자식인 이 작품을 만족스럽게 공연한다. 『헐값 노동자』로 인해 생겨난 일은 규칙적으로 좋지 못한 일들이 되풀이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뮐러의 텍스트들은 동독의 문화 관료주의자들의 눈에 진지하게 받아들여졌으나 우선 비판받게 되었고, 결국에는 금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발터 울브리히트는 분명 1958년까지만 해도 사회주의 통일당의 5차 전당대회에서 뮐러라는 극작가를 칭송했으나, 늦어도 1965년에 뮐러는 드라마와 관련된 당의 선전정책에 있어서 공격대상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동독과 관련된 그의 오랜 고통은 이렇게 초기부터 바로 자신의 가장 훌륭한 작품과 함께 시작된다. 공식적인 적대시에 대한 뮐러의 자세는 그때부터 보인 놀랄만한 침착성이 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저항은 그에게 작업의 동기가 되었다. 그는 결코 화내는 일없이 온전한 정신으로 온화한 아이러니와 자주 짝을 이루어 도전했다. 뮐러가 의도한 것은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모순을 도외시한 채 사회주의의 낙관론만을 표현하는 당시의 규범적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생산 현장을 소재로 사회의 뒷면에 존재하는 갈등과 모순을 솔직하게 보여줌으로써 진정한 사회 발전에 관한 논의를 불러일으키고자 한 것이다. 뮐러는 1948-49년의 동독 사회를 있는 그대로 묘사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니고 있었으며, 『헐값 노동자』는 당시 동독의 상황, 다시 말해 동독의 “여기와 지금”을 함께 논의 할 관객을 찾고 있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