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선욱현 모노드라마 '여자의 아침'

clint 2018. 3. 26. 13:29

 

 

 

청소 설거지 빨래 바느질로 손 쉴 틈 없어도 수다가 끝없다. 말상대는 뱃속에 든 3개월짜리 아기.

“네 아빠 옷은 하루만 입어도 왜 이렇게 시커멓대니? 땅바닥에서 뒹굴다 오는 것도 아니고.” 

시인지망생인 말단 샐러리맨 남편과 아옹다옹 깨소금 쏟아지는 신혼.

숙영은 “아줌마 됐으니 좋은 시절 다 갔다”고 한숨쉬다가도

 “나같은 전업주부땜에 아빠들이나 아이들이 바깥에 나가 잘 살아갈 수 있는 거다”라며 당당해진다.

 

 

 

 

주인공 여자는 20대 후반으로 임신 3개월 된 신혼 주부이며, 전업주부이다. 임신 3개월인 까닭에 그녀의 배는 그리 불러 보일 필요가 없다. 그녀는 명랑하고 쾌활하며, 때론 그 정도가 지나쳐 푼수 끼가 있어 보일 정도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긍정적이고 희망 찬, 주인공 

여자의 인생관이 느껴져야 한다.
이 극은, 남편을 출근시키고 난 후 홀로 남은 그녀가 아침 시간동안 온갖 가사 일을 하며 시종일관 혼자 떠들어대는 수다로 이루어져 있다. 강조하건대, 이 극은 수다이다. 주인공 여자의 대사들은 뭔가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인텔리 적인 강연 투가 아닌, 평범한 젊은 주부의 자유분방한 수다로 들려져야 한다. 비속한 일상성 속에 드러나는 깨알같은 진실이 이 극의 테마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극은, 젊은 그녀의 수다 속에서 오늘날에 사랑과 결혼, 가정, 아이, 그리고 여자 이야기, 우리들의 엄마 얘기를 다시금 짚어볼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 극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여자의 원룸 형태의 신혼 방이다. 정면 중앙에는 도시가 바라보이는 창문이 있고, 그 왼쪽으로 현관이 보인다. 무대 오른쪽으로 주방이 있고 맨 오른쪽에 침대가 있다. 왼편을 보면 세탁기가 있는 욕실이 있고 장롱과 티브이 등의 가구들이 보인다. 주방 앞쪽으로 작은 식탁이 있고, 무대 중앙 앞쪽으로는 작은 소파와 테이블이 있다. 무대 왼편으로 빨래 건조대가 있다. 위와 같은 무대설정은 연출가나 무대 미술가에 의해 재구성 될 수 있다. 이 극에 등장하는 청소, 바느질, 반찬 만들기 등 온갖 일상들은 여자주인공에 의해 실제로 행해져야 하며, 연출가는 그 일상행위들의 시간이나 소리들을 대사에 맞추어 계산해야 한다. 골목을 가다가 우연히 어느 집엘 들어갔는데, 명랑한 주부를 만났다. 그녀의 잡다한 일상들을 보며, 또 그녀의 수다를 들으며 한 번 빙긋이 미소지어 보는 시간, 모노드라마 <여자의 아침>이다.

 

 

 

〈여자의 아침〉은 임신한 여자가 뱃속의 아이를 상대로 일상의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1인극이다. 모노드라마의 특성상 극의 성과는 상당 부분 주연 오지혜씨의 연기에 기대고 있다. 주인공은 20대 후반 임신 3개월된 신혼주부이자 전업주부. 집에서 번역일을 하기도 한다. 남편의 출근 뒤 가사를 돌보며 뱃속의 아이와 수다를 푼다. 그 과정에 남편과 만나서 결혼까지 하게 된 경위,  일하는 엄마를 둔 덕에 아버지 손에 컸던 주인공의 이력이 드러난다. 극은 시종일관 가족에 대한 사랑과 아이에 대한 애정으로 피어나는 가정에 IMF시대의 절망과 탄식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다고 설파한다. 연극이 보여주는 여자의 아침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주인공인 아내는 술먹고 매일 늦는 남편도 사랑스럽고, 술취한 남편이 시키는 달밤의 ‘노래’도 재미있다. 그다지 돈을 잘 벌어오는 남편이 아니기에 보건소에 가서 진찰 받아야 하지만 그것도 행복하다. 내일 모레까지 마감해야 하는 번역일이 쌓여있지만 그리 걱정은 되지 않는다. 또 크면서 자식보다는 일이 먼저였던 엄마에게 섭섭한 마음도 있었지만, 엄마가 소포로 소꼬리와 아기옷을 부쳐오자 그 마음도 눈 녹듯 사라졌다. 밤늦게 취해 들어오는 남편이 옆집 정체불명 여자와 나란히 들어오지만 나쁜 것은 ‘그 여자’이지 남편이 아니다. 그러나 행복을 느끼는 주인공만큼 관객은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다. ‘리얼리티’가 빠졌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작품은 철저히 남성의 시각으로 그려졌다. 설겆이, 청소, 빨래, 번역일, 시댁에 안부 전화 걸기와 같은 일을 아침 한나절에 할 수 있다고 믿는 남성의 시각이다. 이 연극은 ‘페미니즘 연극이 아니’라고 광고하는 작품이다. 페미니즘을 오해하고 있던가 여성의 일상에서 만족을 느끼는 것이 반페미니즘적이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자의 아침은 행복해야 할 권리가 있지만 속사포처럼 쏟아붓는 우스개 소리가 깊은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는 것은 희망을 일구어 내는 여자의 아침이 주체로서 여성의 삶을 전제로 하고 있지 않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