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는 북송을 결심한 비 전향 장기수를 아버지로 두고 있는 한 가족에게 하루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다. 실제로 이인모 노인을 비롯한 여러 명의 장기수들이 전향을 거부하고 사상의 조국인 북쪽을 선택해서 넘어간 사건을 모델로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버지 이름은 정용찬, 어머니 이름은 이명숙. 부부 사이에 어머니 같은 성품을 지닌 큰 딸 진영, 다리를 저는 둘째딸 진숙, 고등학생인 막내 진호 삼남매를 두었다. 이들 가족에겐 아버지를 볼 날이 딱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오늘이 지나면 아버지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남겨두고 북으로 가는 것이다. 아버지를 보내기 싫지만 나머지 가족들은 호텔(구체적으로는 북악 파크호텔 1002호)을 빌려 환송잔치를 연다. 처음엔 왜 이 가족들이 호텔방에 모여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고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추리소설의 구조를 빌려 왔다. 결국 아버지는 떠나지만 남은 가족들은 아버지를 심정적으로는 보내지 않는다. 한평생 가난하게 살아온 이 가족을 든든하게 얽어매고 있는 것은 사랑이다. 가족의 사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매개물은 진숙이 만들어 아버지에게 건네준 자수로 된 꽃 모양의 브로치다. 실제로 이 희곡은 고등학생이었던 진호가 어느덧 성인이 되어 자동차 외판원을 하는 현재 시점에서 시작해서 끝을 맺는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아버지가 북으로 넘어간 후 몇 년이 지난 후인 셈이다. 그러니까 주된 상황이 전개되는 호텔 방에서의 하루는 과거에 벌어진 일인 셈. 자동차 판매를 위해 고객과 면담하는 사이 TV에서는 북한 체재 선전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북으로 넘어간 장기수들의 모습이 비친다. 그런데 그중에 한 사람이 가슴에 훈장 대신 자수로 된 작은 꽃 브로치를 달고 있다. 진호의 아버지인 것이다. 아버지는 자신의 딸이 준 선물을 잊지 않고 있다. 그에게도 자신의 사상만큼 가족에 대한 사랑이 중요했음을 말해준다. 이를테면 몸은 떨어져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가족이 있는 남쪽에 남겨 두었음을 암시하는 셈. 이념의 벽을 넘어 사랑은 이렇게 완성된다.

정미진 작가는 2003년 <알레스카 교도소>로 월간문학 신인상을 받았고, 2004년 <항아리의 꿈>으로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 했으며, 2008년 뮤지컬 더 플레이 희곡공모 당선 <날아라 병아리> 2010년 제4회 해양문학상 수상작 <뱃놀이 가잔다> 2011년 대전희곡공모 당선작 <야구잠바에 소매박기> 와 희곡집 <낙타가 사는 작은 방>을 출간하는 등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뱃놀이 가잔다>, <엄마의 다락방>, <지상 최고의 만찬>,<날아라 병아리> <야구잠바에 소매박기>, <곰팡이> , <바보누나> 등이 공연되었고, 부조리한 현실과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양한 극적 구성을 통해 보여주며 감각적인 대사를 다루는 솜씨가 빼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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