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전국 곳곳에서 쌀 시장 개방과 농산물 개방 정책에 대한 농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앞으로 다가올 쌀 개방에 맞서 우리 쌀을 지키려는 농민들의 목소리이다. 실제로 전국 각지의 농민들이 정부의 쌀수입 개방협상에 반발하며 벼논을 갈아엎고 농기계를 반납하는 등 정부의 농업 정책에 항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농민들은 WTO를 위시한 초국적 자본과 농산물 수출국들의 쌀개방 강요는 식량독점을 통한 식량주권 침탈이며 이를 통한 지배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식량주권을 위협하는 국제규약이나 압력을 당당히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농민들은 자신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쌀과 땅을 지켜내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실정이다. 결국 이러한 몸부림은 그들의 삶과 땅에 대한 애착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옛날부터 전해지는 ‘農者 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는 농사를 짓는 농민이 천하의 가장 큰 근본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만큼 농사를 짓는 일이 중요하다는 의미와 함께 무척 힘든 일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힘든 농사일을 해서 우리들에게 먹거리를 제공하는 농민들이야 말로 하늘 아래서 가장 큰 기본이 되는 중요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분명해진다. 땅의 소중함과 농민들의 삶을 가장 잘 형상화한 작가로 윤조병을 들 수 있다. 특히 그는 땅에 대한 농민들의 애착뿐만 아니라 농민들의 삶과 현실문제까지도 잘 부각 시킨 작가이다. 1980년대 우리 농촌의 현실과 농촌 문제를 적나라하게 형상화한 그의 작품으로<농토>(1981),<농녀>(1982),<농민>(1983)을 꼽을 수 있겠다. 이 가운데서도 농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몇 대를 농부로 살아온 돌쇠가족의 땅에 대한 애착을 비극적으로 형상화한<농토>를 살펴보기로 한다.

우시장에서 팔린 황소에 덤으로 붙어간 노비를 조상으로 대를 이어온 덤쇠, 한쇠, 돌쇠, 울배, 창열 다섯세대가 동학혁명, 한일합방, 광복, 육이오라는 역사적 사건을 거치면서 겪어온 이야기이다. 동학난 때는 상전네를 위해 동학군 앞에 나서야했고, 한일합방때는 상전네 아들을 위하여 대리로 징병에 나가야 했고, 육이오때는 역시 그들을 위해 대신 군대에 나가야 했으며, 그들의 아내는 도지얻은 땅처럼 상전의 것이어야 했다. 충청도 토속성이 짙은 언어와 성격을 지닌 돌쇠 일가의 생활에서 농촌의 현실을 그리면서 역사적 사건을 양반계급과 상민계급이 어떻게 받아들여 대처하고, 반목하고,조화해 왔는가를 돌쇠가 의지로 무지와 수난을 극복하는 모습에서 조명했다. 우리들은 흔히 역사적 사실이 하나의 기록일 뿐 우리들의 현실이나 일상에서 먼 것으로 판단하는 습성이 있다. 패가름은 아니지만 양반계급은 어르신네로 표현되어 왔고, 상민계급은 쇤네로 표현되어 왔다. 그건 과거의 기록이고, 현실의 진행이며, 미래의 두려움이다. 돌쇠로 하여금 상민계급의 3대역을 시키고, 어른네로 하여금 양반계급의 3대역을 시켜 역사적 상황이나 사건이 현실과 가까운 거리이며, 굵고 튼튼한 끈으로 이어져 있음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 작품을 무대화 하기 위해서 몇 가지 극적 장치들을 염두해야 할 것이다. 즉 주제 의식의 부각, 등장인물의 성격, 무대 형
상화, 공연 할 때의 유의점 등은 연출작업을 하면서 항상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다. 무대화 작업 과정에서 이러한 것들을 염두에 둔다면, 작가가 생각하는 당대 농촌과 농민들의 현실을 관객들에게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땅의 소중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한 극적 장치들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기로 하자.
<농토>의 배경은 충청도 지렁내 농촌 마을이며, 노비 3대와 그 주인인 양반 3대의 이야기를 대조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어른’이라고 불리는 주인집에 외양간처럼 딸린 농가에서 소 한 마리에 덤으로 붙어와 노비 생활을 시작한 덤쇠와 그의 아들 한쇠, 그리고 그의 아들 돌쇠가 소같은 생활을 하게 된다. 이들 3대에 걸쳐 돌산을 일구어 겨우 마련한 한 조각 농토마저 상전네 별장터로 빼앗기게 된다. 그래도 돌쇠는 이렇게 말한다. “음지땅 소작농이믄 워쩌쿠, 양지땅 자작농이믄 워쩌어. 내가 아는게 농잣일이구, 조상 대대루 샛강, 한내, 지렁내에서 정을 붙여 왔는디 워디루 가겄어”라고. 이처럼 돌쇠는 땅에게 정을 주는 사람이 정말로 임자라고 생각하고 석산 골짜기 음지땅을 새로 일구려한다.
이러한 돌쇠의 행동을 통해 관객들은 이 작품의 주제 의식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농토>에서 ‘돌쇠’라는 인물을 통해 역사적 시련과 지주의 횡포로 인한 좌절과 고통을 인내하면서 땅에 정을 주는 자가 참된 농민이며, 참 임자라는 주제를 드러내고 있다. 즉 농토의 진정한 소유주는 농토를 생명처럼 아끼며, 농토를 가꾸는 농민들 자신이라는 것이다. ‘땅이란 소유하고 있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땅에 정을 주는 사람의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 ‘땅’이란 어느 누가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생성의 의미를 갖고 있는 살아 있는 자연으로 볼 수 있으며, ‘살아 있는 땅’의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땅을 투기의 대상으로 가벼이 여기는 오늘의 세태 속에서 땅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보게 만든다.
작품에서 인물들은 극작가의 독창력에서 창출되지만 그것은 결국 극작가가 사는 한 시대 한 사회의식 속에서 창출된 종합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종합적인 인물로<농토>에서는 돌쇠와 지주어른을 꼽을 수 있다. 물론 점순, 일수, 창렬, 그리고 마을 사람들도 모두 개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농토>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돌쇠’이다. 이 작품의 사건이 돌쇠를 통해 전개가 되고 있으며, 다른 등장인물은 돌쇠의 성격을 뒷받침하기위하여 등장되고 있다.
주인공 돌쇠는 주된 갈등의 대상인 양반 어른에 대해 무조건적인 순종의 자세를 취하고, 모든 고뇌와 고통을 스스로 내면화 시켜나가는 인물이다. 돌쇠는 비극적 이물이면서도 자신의 고뇌를 노출시키지 않으며, 운명과 대결해 나가는 투사의 기질을 갖고 있지도 않으며, 허상 속에서 진실을 캐내는 인물도 아니다. 결국 돌쇠는 그저 무반응하고 순종하며, 갖추어진 틀 속의 순리에 따라가는 침묵의 농부상이라 할 수 있다.
3대에 걸쳐 농토를 마련하과 했던 소망이 지주 어른의 배신으로 물거품이 되었는데도 그에게 저항하지 않고, 묵묵히 땅을 일구려는 돌쇠의 행동에서 다른 선택이 불가능한 처지와 당대의 모순된 사회 현실, 구조 등을 생각한다면 돌쇠의 결단은 오히려 처절하다. 돌쇠가 좀 더 적극적으로 지주 어른에게 대항하였더라면, 그의 비극적 성격도 확실하게 부각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 돌쇠와 대립 인물인 지주 어른을 통해서는 가진 자의 횡포와 착취, 제도적인 모순을 상대적으로 강조한다. 어른은 조선시대에는 양반으로, 일제시대에는 친일파로, 광복 이후에는 고위층 관리로 몇 대의 마을 이익을 독점해온 인물이다. 그리고 산업화로 인해 댐공사가 시작되자, 버렸던 돌산으로 인해 더욱 치부하게 되며 마을이 물에 잠기면 경치가 좋아질 것을 대비하여 별장까지 짓는 부정적 인물이다. 따라서 지주 어른은 겉으로는 점잖은 체하면서 속으로 자신의 이득만을 챙기는 이중적 인물로 설정되어야 할 것 같으며, 그가 사용하는 언어들도 권위, 계략, 독선, 횡포의 어휘들이라야 할 것이다. 이러한 행동과 언어는 곧 지주 어른의 성격을 나타내어야 한다.

한편 윤조병의 희곡들은 대부분 사실주의적 관점에서 쓰여졌는데,<농토>도 예외는 아니다. 따라서<농토>의 무대화는 사실적으로 이루어져야만 작가의 주제 의식을 잘 반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작품에서 무대 미술의 사실성을 얼마나 잘 부각시킬 수 있는냐가 문제이다. 무대 위 우물을 중심으로 좌측은 어른 집이고 우측은 돌쇠의 집이다. 돌쇠의 집은 3대에 걸쳐 어른네 바깥마당의 아래채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으며,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농기구들을 무대화함으로써 사실성을 확보할 수 있다. 반면에 어른네 혹은 샘터로 불리는 어른의 집은 사방이 훤히 트여 산과 들 그리고 마을까지 전망할 수 있으며, 날씨가 청명할 때는 큰 강의 은빛 물결까지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이처럼 무대 공간을 돌쇠 집과 어른네로 분화시킴으로써 소작인과 지주의 생활 방식을 대조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무대상에 펼쳐지는 농가의 재현은 이 작품의 주제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리고 3대에 걸쳐 마련한 봉답이 있는 돌산(석산)의 무대화는 무대 중앙 뒷면에 시각화 시키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돌산을 무대 등장인물들뿐만 아니라 관객들이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도록 함으로써 상징적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즉 돌쇠에게는 그토록 갖고 싶어하던 농토를 의미하지만, 결국 어른의 배신으로 자신의 땅이 주인의 별장으로 바뀌는 돌쇠의 아픔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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