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윤조병 '젖섬 시그리불'

clint 2018. 1. 20. 10:11

 

 

 

 

이 작품은 어촌을 배경으로 3대에 걸친 고난과 시련을 그린 윤조병의 사실주의 작품이다.
항상 먼 바다를 향한 이상향을 그리며 역경속에서도 그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뱃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아들의 조난사고와 배의 파손등으로 실의에 빠진 상범은 선대에서 그래 왔듯이

그 현실을 이기고 미래를 맞이해야 한다는 걸 깨닺는다.

섬마을 특유의 사투리와 억척스런 삶, 사랑, 고통을 극복하려는 모력과 의지,

자연에대한 믿음속에 끈질긴 사람들의 삶이 비릿한 바다내음과 같이 이어진다

 


줄거리
1-2막
서해안 남부 지방의 옥포리다. 나이가 들어 배를 탈 수 없는 상범은 남몰래 포경선을 만든다. 맏아들 대웅은 3년동안 배를 탈 예정이고 둘째인 기웅은 풍랑에 아내를 잃고 실의에 차 있다.
3-4막
대웅의 출어를 앞두고 상범네는 음식을 장만한다. 갯네, 웅어내, 수더분네 등은 과부로서 입담들이 걸고, 일도 잘한다. 이들은 상범네의 일을 거든다. 한편 대웅과 기웅은 헤어지기 전에 형제의 정을 나눈다. 대웅은 아우를 위로하고 격려한다.
5-6막
상범은 과거에 배를 탔던 이야기를 무용담인 양, 손자 영준에게 들려준다. 그런데 상범이 만든 배가 포경선임을 알고 봉례는 노발대발한다. 하지만 바다를 향한 그의 집념에 굴복하고, 결국 배에 쓸기계까지 사들여 배를 완성하게 된다.
7-8막
상범과 기웅, 최막돌은 대웅이 탄 배를 모선으로 하여 함께 고래잡이에 나선다. 태평양의 넓은 품 안에서 이들은 인간의 왜소함을 느낀다. 그런데 사고가 생긴다.
9-10막
상범은 홀로 돌아온다. 설상가상으로 홍숙과 아이들 몇명이 행운을 준다는 젖섬을 찾아 나서서 돌아오지 않는다. 봉례는 불안한 마음을 달랠 길 없고 바다와 인연이 되어 살아 온 세월을 회상한다. 남편과 자식들이 바다를 포기하기를 바랬지만 뜻대로 되지 않던 세월이었다.

 

 

농촌과 광산촌에 집착한 극작가 윤조병이 앞으로 희곡창작의 과제로 삼고 있는 어촌극의 첫 번째 작품이다. 도입부의 극화는 탁월했다. 종결부의 처리도 충분히 수긍될 수 있다. 문제는 이 희곡작품의 전개부이다. 전개부에서 작가가 집중적으로 다루어야하는 일은 사람이 왜 변하고, 어떻게 변하느냐하는 점일 것이다. 이 일이 불투명하고 논리적 타당성이 없기 때문에 드라마틱 액션의 리듬이 형성되고 있지 않다. 어촌의 삶을 평면적으로 묘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어촌이 직면하고있는 존재적 갈등의「벽」을 제시하는 일도 더욱더 중요하다.

 

한 섬의 포구에서 태어난 상범과 봉례는 연, 근해를 벗어나 대양으로 진출하려는 그들의 꿈을 차근차근 실천에 옮겨간다. 그런데, 조난사고, 충돌사고등 대형사고를 겪고, 나이가 들자 선장으로서 일자리를 놓아야 하는 불운을 겪는다. 설상가상으로 작은 아들 기웅이가 바다에 아내를 잃고 절망의 나날을 보내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나 상범은 꺽인 날개를 회복하기 위해 포경선을 건조하고, 큰아들 대웅이는 원양어선 부선장으로 진출한다. 상범과 기웅도 대웅의 도움으로 날개를 찾아 남극양으로 고래잡이를 떠난다. 그들의 어로작업이 한창일때 불행하게도 대웅이가 조난사고를 당해 생사가 불투명한 사태에 이르는 소용돌이를 겪는다. 이작품은 어촌을 무대로 하면서 어부들의 생활터전을 연근해에서 태평양, 대서양, 남북극양으로 확대시켜 그들의 성장, 꿈, 개척정신이 다다와 부딪쳐 부숴지고, 가족간의 갈등으로 심화되어 충돌하는 과정을 그리면서 개창바다에 분출하는 여인들의 본능과 대양에 도전해서 삶의 존재를 확인해가는 어부들의 힘을 짙게 보여주고 있는 어촌극이다.

 

 

작가의 글 - 윤조병

그간 창작을 해오면서 몇 가지 의견을 피력한 일이 있는데 그것들을 아주 간단히 요약해서 순서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첫째, 희곡을 쓰면서 연극이기보다는 문학성을 강조했고, 연극인이라기보다는 문인이기를 원했다. 둘째, 리얼리즘 연극에서는 리얼리티가 생명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인물은 그들의 이력서 혹은 신상명세서에 알맞은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옳은 지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교과서적이다. 왜냐하면, 전문용어나 전문지식을 제외한 생활 터득적 언어나 정서는 누구든 잠재적으로 갖고 있다는 것을 그들과 몇 시간 혹은 며칠을 함께 생활해보면 충분히 파악된다. 그들은 그것을 "드러내지 않을뿐이다. 그런 만큼 작가는 그들의 가슴 속에서, 그들의 입에서 그런 정서와 언어를 추출해 내야 한다. 셋째, 시대의 음지는 물론이고 양지까지도 찾아 나서서 발로 뛰어 현장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곳 민중의 아픔과 기쁨, 어둡고 답답한 사연과 밝고 시원한 삶을 찾아내어 곱고 진하게 승화시키는 작업을 새로운 양식미의 탐구와 더불어 부지런하고 정확하게 해나갈 것이다. 첫번째의 의견은 희곡이 문학의 한 장르라는 것을 고집해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희곡이 연극의 한 요소라는 것을 부정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희곡에 문학성이 짙을 때 연출이나 연기가 연극성을 부여하여 재창조함으로써 종합예술로서의 차원 높은 구실을 할 수 있으리라는 나름대로의 생각에서다. 두 번째의 의견은 농민이나 광부나 어부들이 생활 속에서 터득한 상대와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 자신과의 관계에서 얻어진 정서와 언어와 철학이 응집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드러내지 않거나, 드러내지 못하고 있기에" 작가가 그것을 현장성에 바탕을 두고 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술이 아니고 창조라고 생각한다. 세번째는 "새로운 양식미의 탐구"라는 부분인데, 이번 이 작품 젖섬 시그리불을 집필하는데 그 약속이 대단히 큰 부담으로 나를 압박해 왔다. 예술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증언이면서 미래에 대한 우리의 소망을 창조하는 작업이라는 것만 다시 확인했다. 그래서 한계 지역인 어촌()을 무한의 수평선 너머 대양으로 확대하는

시도로 어촌을 배경으로 하는 세 편의 작품의 말문을 열었다. 새로운 시도의 첫걸음으로 보아주기 바랄 뿐이다. 몇 차례의 추고에도 불구하고 미숙하기만 한 작품을 세련된 연출 솜씨로 다듬어주실 권오일 선생님과 연기자 여러분과 스탭 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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