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윤조병 '농녀'

clint 2018. 1. 20. 11:17

 

 

바우할멈은 우렁마을을 덮고 있는 늪에 안개가 걷히면서 높새가 뚜렷한 모습을 나타내주기를 기다린다. 그것은 그녀의 현실적 꿈이면서 생명의 끈이다. 그러나 늪엔 언제나 안개가 끼고, 늪새는 어두운 그림자로서의 모습만 나타내거나, 잠의 꿈속에서 그새는 매곡으로 날아가 해를 집어삼키기까지 한다. 그것은 그녀의 절망이며 고통이다. 바우할멈은 자신의 근본을 모른다. 그만큼 기구한 운명을 살아온 여인이다. 다섯 살부터 몸종으로 있다가 열다섯 살에 젖녀가 되면서 주인의 성적노리개 노릇을 했으며, 원시적 방법의 임신중절 사고로 죽게 되자 헌가마니에 말려 두메에 버려졌다는 기억이 있을 뿐이다. 그녀는 죽지 않고 충청도 두메산골 우렁마을에 흘러들어 절구질로 울밖 머슴살이를 하는 사내의 아내가 된다. 그녀는 가난과 싸우고 병마에 시달리고, 지실에 굶주리면서 칡넝쿨처럼 질기고 해초처럼 끈끈한 삶의 의지를 잃지 않는다. 그녀는 가업을 도지 얻은 절구방아에서 자영하는 디딜방아, 연자방아, 물레방아, 발동기방아로 키워오고 농사거리까지 마련하여 칠순이 가까운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다. 그녀의 수난은 주저리로 많아 가난, 무지, 질병은 말할 것도 없고 수탈, 왜정의 유혹과 압박, 6.25와 남편의 실종, 서독 광부 파견과 장남의 사망, 며느리의 가출, 월남참전과 셋째의 불구, 셋째며느리의 본능적 갈등, 산업사회로 치닫는 과정에서 다섯째의 이기적 의식변화, 발전하는 도시에 타락하는 농촌, 농산물 다수확에 농촌 인정의 쇠퇴, 이웃의 죽음. 그녀가 방아 일과 농사일을 해오면서 삶의 질기디 질긴 끈을 잡고 놓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한다. 그것은 숫되지만 부지런하고, 손맑지만 뒷숭질 않고, 지싯거림을 당해도 쉽게 부레끓지 않고, 메부수수하지만 시르죽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며, 그래야만 퇴락하는 농촌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1막
바우할멈은 세째 며느리 길녀댁, 맏손자인 바우와 함께 방앗일을 하면서 우렁말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과부인 길녀댁은 동네 남정네들과 분탕질을 한다는 소문이 자자하고, 길녀댁은 수다댁을 통해 돌아가셨다는 바우의 생모가 여승이 되어 와 외딴말 젠네할아버지댁에 기거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 와중에 바우할멈의 막내 아들 동오는 바우할멈네의 방앗간과 논, 밭을 팔아서 대처에 나가 살 생각을 한다.
2막 1장
동오가 인부들과 함께 집안에 있는 도리깨, 개상, 맷돌, 도구통, 디딜방아, 연자매, 물래방아를 가지러 왔으나, 바우할멈은 극구 반대하고 나가버린다. 젠네 할아버지가 선대들의 절구 머슴 이야기를 동오와 그의 큰형인 동이에게 들려주다 쓰러진다.
2막 2장
젠네할아버지를 집에 모셔 들인 다음, 바우할멈은 옛날 자신의 이야기와 6.25때 사라진 남편 이야기를 동이, 동오, 길녀에게 해준다. 이 때, 바우가 젠네 할아버지의 죽음을 알려온다.
3막 1장
사흘 후, 젠네할아버지의 유언장에 '논, 밭을 팔아 젖네을 병원에 데리고 가라'는 내용의 그림이 발견되고 그 소리를 들은 바우할멈은 기겁을 하고 바우와 함께 동이에게 찾아간다.
3막 2장
이틀 뒤, 바우는 여승이 된 생모를 찾아 집을 나가 버리고 바우를 찾으러 나섰던 동오와 동이가 돌아오는 길에 길녀가 한 남자와 성관계를 갖는 장면을 목격하고, 어머니에게 고한다. 상심한 바우할멈은 동오와 동이에게 바우 어머니와 젠네할아버지의 비밀과 자신이 어렸을 때 젖어미가 된 이야기를 한다. 낯이 없어 고개를 숙이며 돌아오는 길녀를 바우할멈은 얼싸안는다.

 

 

 

6회 대한민국연극제의 7번째 무대인 극단 에저또 <농녀>1982930105 문예회관 대극장 공연.

농녀의 리허설은 한 주일 남은 개막까지 총 70여 일간 아현동 리허설소극장에서 진행되고 있다 올해 이들의 연습 기간은 70여 일이지만, 시실은 지난해 연극제에서 대성공을 거뒀던 농토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배우 김복희 씨는 농녀에서 그가 맡은 바우할멈은 농토| 점순네가 나이를 먹은 것이라고 보고 바우할멈 역을 위해 지난해 점순네 역을 한 것 같다고 얘기한다.

작가 윤조병, 연출 방태수는 물론 수다댁의 김진구, 동이의 이문수, 동오에 장희용 등이 모두 농토농녀무대에 함께 참여하고 있어 연습장 분위기마저 지난해의 <농토>와 비슷하다. 농토가 노비 3대로 땀을 지키다가 그 땅을 또 뺏겼어도 땅은 지키는 사람의 것이라고 외치는 한 농부를 그렸다면, <농녀>는 그런 농부의 아내로 집을 지켜온 아낙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다.

같은 주제, 같은 수법이지만 농토보다 극적 전개에 짜임새가 있어 한발 전진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품이 한 발 전진했으므로 연출도 연기도 같은 방향에서 한 발 더 나가야된다는 책임감에 짓눌려 있다는 것이 연출의 고민이다 농녀의 얘기는 30년 동안 전쟁에서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집안을 지켜온 바우 할멈의 젖녀로서의 기구한 일생이다 열다섯에 주인댁을 위해 강제로 임신, 중절을 경험하고 인공적으로 유모가 됐던 젖네. 버려진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 한 집안을 일으키고 지켜온 강인한 여인이 주인공이다. 주제가 뚜렷하고 문학성이 강한 작품 농녀에서 이들은 사실적이며 기본적인 자세로 무대를 만들겠다는 각오로 대든다. (일간스포츠 1982923. 구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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