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호의 선대들은 등짐질에서 지게, 손수레, 말수레, 쇠수레군으로 대물림을 하면서 논밭을 마련한 찰농사군이다. 명호는 스물 다섯살 청년으로 선대의 뒤를 이어 짐질과 농삿일을 가업으로 이어 받는다. 그는 과학영농, 기계영농의 흐름에 맞추어 소 대신 경운기로 짐을 나르고 논밭을 가꾸면서 농삿일에 온갖 정열을 쏟는다. 銀江(은강)에 댐이 들어설 때 많은 농민들이 보상금을 받아 도시로 떠났지만, 명호는 오히려 수리안전답으로 대토를 하여 댐의 혜택을 받는 등 농민의 자리를 굳혔다. 그런데 뜻밖에도 도시의 재벌이 그들이 살고 있는 은강과 달래강 주변의 땅을 모두 사들이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영농의 여러 가지 어려움, 도시 진출의 부푼 꿈, 좋은 땅값, 바람잽이들의 감언이설에 마음이 들떠서 일손을 놓고 땅을 내놓는다. 명호와 이웃처녀 윤숙도 회유, 압력, 박해를 받는데, 말려들지 않고 귀질기게 버틴다. 명호는 농작물을 선택할 때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 주곡과 과일 생산에 전념하는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있고, 윤숙은 낙농에 뜻을 두고 젖소로 기초작업을 하고 있는 마을의 건실한 젊은이 들이다. 두 사람은 농촌을 되살리는 일은 현실을 기피하는 이상주의적이거나 현실에 영합하는 속물주위적 방법이 아니고 고통스러운 현실에 똑바로 대면해서 그 개선책을 찾는 용기와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찰농사군이 못되는 친척과 이웃에 의해 윤숙이네의 젖소가 살해되고, 명호네 과수가 공사장 포크레인에 의해 뿌리채 뽑히고, 두 사람에게 호의적인 낙향 여인이 강간을 당하는 극한상황이 벌어진다.

이 작품은 충청도 어느 농가의 삼대를 통하여 대를 잇는 가업정신, 농삿일을 천직으로 아는 직업윤리, 맡은 일을 소신껏 해내는 책임감, 양심과 사랑의 힘으로 문명은 이용하되 현대의 고속사회, 산업사회가 갖고 있는 병폐에 휩쓸리지 않고 깊은 심지로 땅을 사랑하고 그 땅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을 인생으로 아는 젊은이를 주인공으로 하여 현대의 농촌이 필요로 하는 농민상을 그린 것이다.

윤조병 (1939~ 2017)
충남 조치원 출생. 서울대학교 법대를 중퇴하고 1967년 국립극장 장막희곡<이끼낀 고향에 돌아오다>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한양여자대학 겸임교수로 재직중이며, 서울 어린이연극상 운영위원 및 심사위원으로 활동중이다. 인천시립극단 창단 상임연출, 한국공연윤리위원회 무대예술 전문심사위원과 한국연극협회 극작분과위원장, 창작개발워크숍 지도위원으로 활동하였다.<제암리의 아침><바람멎어 풍경소리>등 무용대본도 작성하였으며,<휘파람새><춘향전><풍경소리><코리어 환타지>등을 연출한 바 있다. 1978년<참새와 기관차>로 현대문학상, 1981년<농토>로 동아연극상 특별상과 극평가 그룹상, 1982년<농녀>로 백상예술대상 희곡상, 1984년<휘파람새>로 전국연극제 대상 및 희곡상, 1985년<모닥불 아침이슬>로 서울연극제 희곡상, 백상예술대상 희곡상, 1986년<풍금소리>로 서울연극제 희곡상, 1990년<아버지의 침묵>으로 전국연극제 대상을 수상하였다.

작가의 글
農民은 농토(農土)와 農女에 이어 農村을 素材로 하고, 農民 文學의 立場에서 쓴 세번째 作品이다. 그래서 農民은 어떻게 보면 三部作의 마지막 같지만 사실은 한 작은 단원의 마지막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한 작은 단원이라고 한 것은 이 세 作品으로는 도저히 욕심을 메울 수 없는 나의 心情, 기대처럼 씌여지지 않고 결점뿐이라는 自責, 農村에 作家가 돌아보아야 할 소재와 問題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는 것을 의미하면서, 현재로서는 農民을 끝으로 맺음을 하지만 언젠가 그리 멀잖아서 나의 안목을 넓히고 정서와 사상을 다지고 劇作術을 더욱 익혀서 다시 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作品의 現場을 살리기 위해서, 둔한 상상력을 빈번한 접촉으로 具體化하고 확대하기 위해서 충청도 곳곳의 民村을 지난 3년 동안 10여 회 답사하였다. 이 답사에서 나는 大地라고 하기엔 너무나 빈약한 우리의 땅에서 自然과 文化의 온갖 진실을 겪어가면서 뿌리를 내리기 위해 서둘지 않고 대대손손 가래질을 하는 장붓군과 줄군을 만났다. 그 장붓군과 줄군의 가래질이 한마음으로 이뤄지고 있는 기쁨도 보았고, 그것이 무너지고 흐트러지는 아픔도 보았다. 그런데, 그것이 어느 쪽이든 나는 나의 너무나도 보잘것없는 모습, 너무나도 무력한 처지를 뼈저리게 느꼈고, 그래서 극복해야 할 우울증을 그때부터 지금까지 갖고 있다. 한 작은 단원의 끝맺음을 하면서 느껴지는 것은 이 세 作品을 이어서 무대에 올릴 수 있도록 선택하여 주신 스승, 선배님의 깊은 愛情, 金福姬· 金鍾九를 비롯한 演技 여러분의 지극한 熱演, 어려운 여건 속에서 때때로 무너져 버릴듯 난감한 순간들을 용케도 버티면서 劇團을 이끌어 무대를 만들어 준 方泰守 代表의 정열에 대한 고마음이다. 내가 그동안 미련할 정도로 뚝심을 부린 것도 위와 같은 애정과 관심이 힘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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