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향전>은 한국의 대표적인 고전소설로써 뿐만 아니라 고전극적인 판소리로서, 창극의 주요 레퍼토리로서 또한 근대극으로서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춘향전>이 이처럼 오랜 세월동안 많은 사람들에 잊혀지지 않고 기억될 수 있는 것은 한국인의 보편적 정서인 풍류와 해학, 풍자의 수법으로 여러 계층의 다양한 삶과 꿈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1930년대에 유치진은<춘향전>의 각색을 시도했다. 일제의 탄압이 극심해지자 극복의
방법으로 역사와 고전을 소재로 삼아 현실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택했다. 재구성된 유치진의<춘향전>은 기존의 열녀적 관점이 진부한 해석을 거부하고 그(춘향)가 사람의 생명력을 가지고 그 시대의 부패한 권력과 싸워나가려는 의지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유치진의 이 같은 입장은<춘향전>해석의 한 관점으로서 연출가나 작가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새롭게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어디에 초점을 맞추는가에 따라<춘향전>은 낭만적인 연애 이야기일 수도 있고 사회고발극이 될 수도 있다. 작품의 소재는 어느 시대의 것이건 간에 항상 현재라는 시간에서 작품을 보고 있는 관객들의 절실한 관심거리가 되어야 한다.



유치진은<춘향전>이라는 고전소설을 각색하는데 식민통치에 저항하는 우리 민족의 강인한 의지 묘사에 역점을 두었다. 고전의 근대적 해석이라는 점에서 유치진의<춘향전>은 연극사에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유치진 이후로도 <춘향전>은 박진(朴珍), 이재현 등의 극작가들에 의해 나름대로 각색되어 졌으며 국립극장에서도 창극(唱劇)의 레퍼터리로 자주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또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국제화된 뮤지컬<춘향전>도 시도되었다. 이러한 시도들은 고전의 재해석이라는 점에서 혹은 전통의 현대적 수용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영국에서 세익스피어의 작품들이 대중정서를 대변해 주는 고정 레퍼터리인 것처럼<춘향전>역시 시공을 초월한 창작의 원천이다. 이러한<춘향전>을 대중의 보편적 정서와 시대정신에 맞도록 각색하는데 관심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고전의 단순한 재현에만 급급하다면 관객은 외면하고 말 것이다. 한국인의 정서와 대중의 사회적 욕구에 맞추어 다양하게 제작되어야 한다. 다양한 시도 가운데 우리의 문학과 연극, 민속, 미술, 음악 등이 한데 어우려져 있는 <춘향전>표본의 제작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새롭게 해석된 것도 많이 나올 수 있다. 거기에 현대의 메카니즘이 반영된 고도의 기술적 무대 역시 필요하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춘향전>은 한국 연극의 대표적 레퍼터리로 그 생명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유치진은 1932년 <토막>을 발표하여 극작의 길로 들어선 이래 1960년대 초 무용극<별승무>를 발표하기까지 모두 34편의 희곡을 내놓았다. 우리의 비극적 현대사는 곧 그의 정신 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그의 작품 세계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드러난다. 그런 까닭에 그의 작품 속에는 불안, 죽음, 니힐리즘, 아나키즘, 현실 고발 의식 등이 깔려있는데, 니힐리즘과 아나키즘은 아일랜드의 작가 숀 오케이시와 러시아의 무정부주의자 바쿠닌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1931년 입교대 졸업과 동시에 귀국, 김진섭, 서항석, 홍해성 등 12명과 동인을 규합 [극예술 연구회]를 조직한다. 그들은 거의가 해외 문학파로 당시 시대 상황이 그들을 연극 운동에 집결시켰다고 한다. 그의 작품 경향은 크게 보아 현실 인식 작품<토막>,<당나귀>,<흑룡강>과 전통 인식 작품<남사당>,<마의태자>로 대별할 수 잇는데<토막>(1932)은 근대 희곡의 모범적 패턴으로 모순에 가득찬 현실적 삶을 고발하고 있다. 이어<버드나무 선 동이의 풍경>(1933),<빈민가>(1934),<소>(1934) 등을 잇달아 발표하는데<소>는 근대 희곡의 이정표를 세운 작품이기도 하다. 유치진은 언제나 "극작가의 역할은 자기 시대의 눈에 보이는 모순을 희곡적으로 지적하는 데 있다."고 한 페디만의 이론을 충실히 이행하였으며 민족주의, 계몽주의에 입각하여 연극을 사회 비판과 인간 개조의 수단으로 생각하였다. 유치진은 우리 민족의 시대적, 사회적 모순과 아픔을 강하게 투시하였다. 즉 그는 연극을 통해 시대 표현과 증언을 염두에 두고 한국인의 불행한 삶 뒤에 도사리고 있는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고 고발하고자 했다. 그러나 당대 농민들의 꿈과 좌절을 그렸던<소>가 문제시되어 일경에 체포, 투옥됨으로써 민족의 비분을 그리려던 작가 정신에서 떠나 낭만주의로 선회한다.<소>의 여파로 인하여 동랑은 '리얼리즘에 입각한 로맨티시즘'을 내걸고 애정물과 역사물 속에서 우회적 수법으로 현실을 비판하게 되며, 이러한 극작 방향 선회는 1935년 일제의 탄압적인 문화 말살 정책에 따라 국책극('흑룡강', '북진대', '대추나무')을 쓰며 1941년 어용극단인 '현대 극장'을 발족시키는 데까지 이른다. 이후 해방이 되면서 1946년부터<조국>,<원술랑>등의 작품을 통해서 계몽주의적이고 공리적인 연극관을 보이나 통속 사극의 범주를 넘지 못하였으며, 6ㆍ25 전쟁 이후 휴머니즘이 드러난<통곡>,<나도 인간이 되련다>등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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