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유치진 '토막'

clint 2018. 1. 14. 12:56

 

 

 

이 작품은 극작가이자 평론가, 연출가 등으로 한국 연극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동랑유치진의 처녀작이자 대표작이다.
유치진은 동경 유학 시절에 당대 지식인들의 열렬한 탐독서이던 로맹 롤랑의《민중 예술론》을 탐독하고 나서, 연극을 통한 민중 계몽과 사회 개혁에 깊이 뜻을 두었다고 한다. 그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연극을 공부하였고, 1931년에 귀국하여 극예술 연구회의 창립 동인으로서 본격적인 예술활동을 시작했다.
1932년에 발표된 처녀작이 《토막》이다. 이 외에도 왕성한 의욕과 열정으로 그 해 5월에는 극예술 연구회의 직속 극단인 ‘실험 무대’에서 고골리의《검찰관》을 상연할 때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하였으며, 1933년에는 루이지 피란델로의《천캠를 연출하는 등, 자신이 직접 쓴 희곡 외에도 여러 편의 작품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의 희곡 작품은 약 30여 편 정도가 남아서 전하는데,《토막》을 포함한 초창기 희곡들, 예컨대《소》《버드나무 선 동리의 풍경》등 일련의 작품들이, 그 현실 인식의 건강함이나 극작 기법 면에서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것은 이 작품들이 그의 청년기를 지배하고 있던 공리적, 계몽적 연극관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으면서도, 섣부른 구호나 선동에 치우치지 않고 식민지 현실의 어두운 구석을 예리한 사실주의적 필치로 그려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치진의 처녀 희곡이며 극연(劇硏) 최초의 창작극이기도 한 이 희곡은 한국 리얼리즘 희곡의 백미(白眉)로, 그 뛰어난 극작술은 외국의 어느 희곡에 비해도 별로 손색이 없다. 이 극은 비록 1920년대의 한국의 몰락해 가는 농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한국적인 것의 원형이라 할 만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유치진이 비록 아일랜드의 극작가 싱과 오케이시를 연구했고, 그 영향이 실제 이 작품 속에 상당히 드러나 있지만, 그가 그들의 모방을 넘어서서 한국인의 생활과 언어와 감정을 가지고 이만큼 진실되고 강렬한 비극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그의 재능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특히 빵보라는 인물의 창조에 매우 뛰어나서 그의 희극성은 오히려 비극성을 극대화시켰고, 어머니가 아들의 백골을 들고 읊조리는 대사는 모리야 부인의 그것처럼 생(生) 그 자체에 대한 깊은 성찰일는지 모른다. 따라서 이 작품은 시대와 지역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비극이 지니는 보편적 진실을 획득하고 있다.

 

이제 피폐할 대로 피폐해 있는 병서네 일가(一家)의 유일한 희망은 일본에 돈벌이간 아들뿐이다. 마침 아들의 친구가 일본을 가게 되어 그들은 희망에 부풀게 되었다. 그러나 구장이 찾아와 2년 전 신문을 보이며 명수가 일본서 독립운동(그들은 독립이란 뜻을 모른다)을 하다 종신형(終身刑)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려온다. 그렇지만 병서부부는 아들이 살아 돌아올 것을 믿는다. 한편 빚 때문에 집까지 빼앗긴 공처가 빵보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가 병서의 토막에 묵고 있던 그의 처를 구걸질하다 만나서 돌아오지만 그날 밤으로 가족을 데리고 정처없이 유랑의 길을 떠나고 만다. 그날 밤 병서의 처는 아들 생각에 실성한 사람같이 행동하면서, 아들을 맞기 위해 머리를 빗고 밖에 불을 밝힌다. 그때 우편배달부가 소포 하나를 주고 가는데, 그것을 뜯어보니 아들의 백골(白骨)이 든 상자였다.

 

 

 

 

유치진은 극작가의 역할에 대해서 ‘자기 시대의 눈에 보이는 모순을 희곡적으로 지적하는 데 있다’고 한 바 있는데, 이 작품이야말로 그의 신조를 역력히 반영한 작품인 것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자 관객들로부터 대단한 반응이 일어났다. 이에 대해 작가는 나중에 그의 작가 생활 30년을 회고하는 글에서‘《토막》이 이 만큼이나 관객의 마음을 포착한 것은 작품의 예술적인 면보다, 자기 표현에 굶주린 우리 관중들에게 병든 현실을 적출(摘出)해 준데서 온 흥분인 것 같다.’고 말한 바도 있다.
이 작품은 전 2막으로 되어 있지만, 그 길이나 구성의 단순함으로 볼 때 본격적인 장막극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1920년대 어느 해의 가을, 읍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마을의 음습한 토막집에서 가난과 병으로 시달리고 있는 명서 일가 ─ 최명서와 그의 처, 그리고 외동딸인 금녀 ─ 는, 돈 벌러 일본에 간 아들 명수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이들 일가는, 마침 집까지 팔아서 돈을 벌러 일본으로 떠난다는 마을 청년 삼조 편에, 명수에게 보내는 편지를 맡기기로 한다.
하지만 글눈이 어두운 최명서는 결국 편지 쓰는 일을 포기하고 연락을 꼭 좀 전해 달라는 말과 돈을 보내 달라는 말을 전해 보낸다. 한편, 이웃집에 사는 빵보라는 별명의 경선은, 장리변으로 꾸어다 먹은 쌀을 갚지 못하여 집이 경매 처분당하는 지경에 이르자, 집달리를 피하여 가족들을 버려둔 채 어디론가 떠나 버린다. 마을의 구장 영감이 마침 나타나서 낡은 신문 쪽지에 실린 명수의 사진을 보여 주자 식구들은 아연 긴장하는데, 구장은 노가다를 하던 명수가 일꾼들과 함께 해방 운동인가를 하다가 잡혀서 예심에 넘겨진 것 같다고 풀이해 준다. 최명서의 처는 이름이 같은 사람일거라고 믿지 않으려 하면서도 불안하기 그지 없다. (1막)

 

 

 

 

이듬해 초봄의 어느 날 저녁, 등짐 장수로 전락한 경선은, 명서의 집에 임시로 머물면서 걸식으로 생활하고 있던 아내와 아들을 몰래 데려갈 작정으로 다시 나타난다. 경선 일가는 정처없는 유랑의 길을 떠나려는 것이다. 제 고장이란 밥술이나 얻어먹고 살 수 있을 때나 따뜻한 양지쪽이지, 잠자리조차 걱정하게 되면 외려 감옥이라는 경선의 말에 명서는 어딜 가면 감옥 아닌 데가 있느냐면서 우린 누구나 그림자처럼 감옥을 떠매고 다닌다고 되받는다. 한편 명서의 처는 자식이 종신 징역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별안간 정신 이상의 증세를 보이며 거의 실성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 때 우편 배달부가 명수의 백골이 든 소포를 전달하고 명서와 그 아내는 허탈과 분노로 울부짖는다. 병약한 딸 금녀만이 그래도 오빠의 죽은 혼이라도 우리를 지켜줄 거라면서 그 때까지 꾹 참고 살아가자고 부모를 위로한다. (2막)

 

 

 

 

이 작품에서는 무엇보다 식민지 농촌 현실에 대한 묘사가 두드러진다. 등장 인물들은 거의 모두 극단적인 궁핍함을 견디고 있으며, 거기에 병까지 얻어서 최소한의 자활 의지마저 빼앗긴지 오래이다.
최명서의 절망적인 집안을 지키고 있는 것은, 병든 자신과 늙은 아내, 그리고 역시 병약한 딸 금녀이다. 이 상황은 이들 일가가 자신들의 현실을 타개해 줄 유일한 기둥으로 아들 명수를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해 준다. 아들 명수 이외에 현실적인 가난과 병고를 해결해 줄 대안이 전혀 없다는 점은, 1막과 2막의 사이(가을부터 이듬해 봄 사이에) 이 집안의 살림이 현저히 퇴락하고 있다는 무대 지시에서도 그대로 읽을 수 있다.
이들 일가뿐만 아니라, 경선의 집안 또한 집 하나라도 번듯하게 유지하고 있었던 정도의 가세가, 장리쌀을 갚지 못해 하루 아침에 몰락할 지경이 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른바 이농과 유랑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당시 농민들의 상황을 잘 압축해 보여 주고 있다. 물론 이들이 이렇게까지 몰락할 수밖에 없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작품 속의 등장 인물들끼리도 견해가 다르다. 구장 영감은 이들의 몰락이 타고난 주벽 탓이라고 몰아 붙이지만 명서는 그게 다 ‘술 먹지 않는 사람들두 어쩔 수 없는’ 상황탓임을 들어 이에 맞선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조연의 몫을 수행하고 있는 경선은,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비록 일시적이지만 웃음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하지만 그가 보여 주고 있는 우스꽝스러움은 이른바 조롱의 대상으로서의 열등한 인간이 보여 주는 억지 웃음이 아니라, 대적하기에는 너무도 막강하고 가혹한 현실 속에서 모든 것을 다 빼앗긴 자가 어쩔 수 없이 도달한 자조적 태도와, 겁에 질린 연약한 인간으로서의 일시적 자아 상실의 모습 바로 그것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경선이 만들어 보여 주고 있는 희극적 장면은, 비극적인 분위기를 일시적으 로 누그러뜨리는, 이른바 희극적 이완(comic relief)의 구실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토막》은 그 사실주의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한계를 지적할 수 있다. 즉 이와 같은 주제는, 이미 여러 작가들에 의해 되풀이 언급된 내용이었으며 그들에 의해 다루어진 문제 의식으로부터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결말 부분에 주인공 일가가 철저하게 패배하고 마는 상황을 설정함으로써, 허무주의적 색채가 짙다는 점도 종종 지적되고 있다. 또한 갈등의 전개 과정이 너무 미약하고 단선적이어서 이른바 비장미(非壯美)를 유발하는 데에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개별 장면들의 비극성에만 초점이 놓여 있다는 것도 지적될 만하다. 실제로 주인공 일가가 겪고 있는 갈등은, 오로지 아들 명수에게서 좋은 소식이 오느냐 아니면 나쁜 소식이 오느냐 하는 점에 맞춰져 있는 셈인데, 아들의 백골이 오기 전까지 이렇다 할 위기와 반전의 순간이 설정되어 있지 않음으로써, 그 개별 장면의 비극성에만 의존하고 만 것이다. 연극 사상 최초의 본격적인 사실주의 희곡으로 평가하기에 그다지 이론의 여지를 찾을수 없는《토막》은, 무엇보다도 당대 현실에 대한 빼어난 묘사와, 조연들을 포함한 등장인물들의 또렷한 개성, 그리고 명쾌한 단순 구성으로 이끌어가는 사건의 전개나, 깔끔하고 압축적인 대사 등을 그 성과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한계점들도 지적되긴 하지만, 이런 한계들은 그 성과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논의될 수 있는 것이므로, 이 작품이 갖는 문학사적, 연극사적 위치는 여전히 확고하다고 할 수 있다. 이 구장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전체 인물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궁핍한 현실에 젖지 않은 인물이다. 그럴 뿐만 아니라, 명서의 집에 무슨 구실인가를 재촉하러 다니는 인물이고, 명수가 벌였다는 해방 운동에 대해서 매우 냉소적이고 적대적인 입장을 내보이고 있다. 구장은 주인공인 최명서나 그 아들 명수의 입장에 반대하거나 그 의지의 실현을 구체적 으로 방해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소극적 반동 인물(antagonist)의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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