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정복근 '나 김수임'

clint 2018. 1. 14. 11:47

 

 

 

 

 

 

「여간첩사건」 「한국의 마타하리」로 불리는 김수임의 불꽃같은 사랑이야기.
1912년 개성에서 태어난 김수임은 아홉 살 때 어머니가 도망가고 의붓아버지에 의해 어느 농가의 머슴에게 팔아 넘겨지는 참혹한 유년기를 보낸다. 농가에서 탈출한 그녀는 미국 선교사의 도움으 로 다닌 이화학당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이화여전 영문과에 진학해 평생의 벗 모윤숙과 깊은 우정을 나눈다. 이화여전을 졸업한 뒤 미대사관 등에서 일하며 사회 고위층 인사들과 친분 을 나누던 그녀는 파티장에서 우연히 경성제대 법학과를 나와 독일 유학을 마친 공산주의자 이강국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해방후 이데올로기의 격랑 속에서 그녀는 이강국을 돕기 위해 위험스 런 희생을 감수하고, 결국 체포돼 두달여 재판 끝에 사형선고를 받는다.

 

 

 

<참고자료>
(金壽任.1911∼1950) 광복 후 미군정기(美軍政期)에 암약했던 여간첩. 경기도 개성 출생. 어린 시절부터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던 중 외국인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학업을 마쳤다.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뛰어난 영어화화 실력을 이용하여 세브란스병원에서 통역 일을 했고, 이 당시 독일에서 공부한 엘리트 공산주의자(共産主義者) 이강국(李康國)을 알게 되어 동거생활(同居生活)을 했다. 이후 미군정 시기에 군정청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미군 수사기관의 고문으로 있던 미군 간부 존 베어드와 옥인동에서 동거 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이강국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지자 그를 미국인 고문관의 집에 숨겨두었다가 1947년 월북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강국은 김일성정권에서 초대 외무부장으로까지 발탁되었고 그 뒤 대남공작을 펼치자 이 계획에 동조하여 자기집을 남조선노동당의 거점으로 사용하였으며, 각종 기밀을 빼돌려 남로당에 제공하였다. 한편 육군특무대에 수감 중이던 남로당의 빨치산책인 사형수 이중업(李重業)을 빼내 의사로 가장시켜 월북시켰다. 1947년부터 1년여 동안 여러 차례 이강국의 연락원을 자기집에 숨겼으며, 같은 해 12월에는 조선은행권(朝鮮銀行券)을 서울로 운반하는 데 도움을 주는 등 이강국의 지시에 따라 간첩활동을 계속하다가 1950년 4월초에 전격 체포되었다. 그해 6월 15일 군법회의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고, 한국 전쟁 발발 무렵에 사형이 집행되어 총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조선에서 역시 간첩 혐의로 처형당한 이강국과의 비극적인 사랑과 죽음에는 극적인 요소가 풍부했고, 반공주의 고취에도 좋은 소재였기 때문에, 영화<나는 속았다>(1963),<특별수사본부 김수임의 일생>(1974), 연극<나, 김수임>(1997), 드라마<서울 1945>(2006) 등으로 여러 창작물에서 그의 삶이 다루어졌다. 논픽션<사랑이 그녀를 쏘았다>(2002)는 김수임의 이화여전 후배인 전숙희가 쓴 것이다.      

 

 

【김수임 간첩사건】
1950년 김수임이 공산주의자 이강국(李康國)의 지령을 받아 비밀리에 활동하다가 체포된 간첩사건. 김수임은 광복 전에 이화여자전문학교를 졸업한 미모의 인텔리 여성으로 영어회화에 뛰어났다. 세브란스병원에서 미국인의 통역을 맡고 있을 당시, 경성제국대학을 거쳐 독일 베를린대학에 유학하고 돌아온 이강국과 알게 되어 동거생활을 하였다. 이강국은 공산주의자로 박헌영(朴憲永)의 공산주의청년동맹에서 활동하다가 광복을 맞아 민주주의민족전선(약칭 民戰)의 사무국장이 되어 공산주의운동에서 비중이 큰 지도급 인물이 되었다. 이 때 김수임은 미국 대사관의 통역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이강국이 지하운동을 하는 동안 모 수사기관의 최고 고문으로 있던 미국인과 동거생활을 하며, 풍족한 생활 속에서 사교계의 여왕으로까지 부상하였다. 그러던 중 이강국 체포령이 내려지자 김수임은 그를 미국인 고문관의 집에 숨겨 두었다가 월북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강국은 1947년에 월북하여 김일성 정권에서 초대 외무부장으로까지 발탁되었고, 그 뒤 대남공작기관인 조선상사회사의 사장이 되면서 김수임을 다시 대남공작에 이용하였다. 김수임은 이강국의 계획에 동조, 자기집을 남조선노동당(약칭 南勞黨)의 거점으로 사용하게 했으며, 미국인 고문관과 동거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기화로 각종 기밀을 빼돌려 남로당에 제공하였다. 또한, 당시 육군특무대에 체포되어 수감중이던 남로당 군사부 빨치산책인 사형수 이중업(李重業)을 프락치들로 하여금 빼내게 하여 자기집에 숨겨 두었다가 미국 대사관 승용차 편으로 월북시켰다. 이 월북 행각에는 이중업을 의사로, 의붓동생 최만용(崔晩鏞)을 조수로 가장시키고, 미국인 운전사로 하여금 운전하게 하여 자기도 동승한 가운데 개성까지 호송, 무사히 38선을 넘어가게 해주었다. 그리고 1947년부터 1948년에 이르는 1년여의 기간 중에 5∼8차례에 걸쳐 이강국의 연락원을 자기집에 은닉해 주었으며, 1947년 12월에는 이강국으로부터 개성에 운반해 온 당시 남한 통화인 조선은행권을 서울로 운반하는 데 도움을 주는 등 계속 적극적인 간첩활동을 펼쳤다. 그러던 중 1950년 4월 초 수사당국에 체포되었다. 체포될 당시 그녀가 살고 있던 외인주택을 수색하여 권총 3자루, 실탄 180발과 북한에 보내려던 많은 기밀 물건을 압수하였다. 그리하여 같은 해 6월 15일 육군본부 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이 확정되고, 6ㆍ25전쟁 며칠 전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한편, 이강국은 그와 같은 그들 나름의 대남공작을 수행하였으나 그 공로와는 정반대로 도리어 대남공작을 자의(自意)로 파멸시켰다는 죄상을 뒤집어쓰고, 미국의 간첩이었다는 혐의로 총살형에 처해졌다.

 

 

 

 

 

연극은 스산한 바람과 함께 시작된다. 시작뿐 아니라 이 작품에서 바람은 고비고비 무대를 폭풍속으로 밀어 넣는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 역할을 한다. 시대를 휩쓴 사상의 격랑. 그 속을 덧없이 흘러간 사람들을 그려내기 위해 섬세한 연출자 한태숙은 대형 강풍기를 무대 뒤에 세워 커튼이 펄럭이며 객석까지 일렁일 듯한 바람을 만들어냈다. 오랫동안 우리에게 「여간첩 김수임」 「한국판 마타하리」로 알려져온 김수임을 보기 위해 공연장을 찾은 관객이라면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연극 속에는 김수임(윤석화 분)과 이강국(한명구)의 가슴 저미는 사랑이나 스파이 영화 같은 아슬아슬한 첩보전, 수임의 불행한 성장 과정과 대비되는 화려한 상류생활 따위는 나오지 않는다. 제작진이 작정하고 만들었다면 충분히 신파극 또는 진한 멜로드라마도 될 수 있는 소재였다. 「나, 김수임」이라는 타이틀대로 작가 정복근이 주목한 것은 「나」라는 인간이었다. 일그러진 시각에서 해석되어진 인물과 사건들을 바로 보기 위한 「현대사 재조명 시리즈」 첫번째답게 이 작품은 「사람이 중하지 사상이 중해요」하고 묻는 자유인으로서의 수임에 초점을 맞추었다. 주된 무대는 법정이다. 6.25전쟁이 일어나기 전 미국 헌병사령관과 동거하던 김수임은 오랜 애인 이강국과 남로당 간부를 월북시킨 혐의로 재판정에 선다. 그를 빨갱이로 몰고 가려는 재판부와 화장기없는 얼굴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윤석화,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의 치열한 심리전이 시작된다. 조명은 이때부터 제 목소리를 내는 또 하나의 「등장 인물」이다. 피고인석의 윤석화를 비추는 날카로운 한줄기 빛은 시퍼렇게 칼을 갈아 가지고 내려와 관객의 심장을 찌른다. 정녕 김수임이 죄인이냐고. 『난 간첩이 아냐. 이렇게 죽을 수 없어』하고 절규하던 수임이 쓰러지면 세번째의 「등장 인물」 영상이 무대를 가득 뒤덮어 객석을 전율케 한다. 어린 아들의 얼굴, 해맑게 웃는 수임, 다시 울상짓는 아이, 전쟁, 그리고 수임이 사랑했던 이강국…. 바람에 일렁이는 영상들은 사상의 덧없음과 삶의 아이러니를 말없이 전해준다. 윤석화가 없었다면 김수임을 제대로 볼 수 있었을까. 여배우로서 우리시대 최고의 카리스마를 지닌 그는 절제와 응축으로 농밀한 김수임의 내면세계를 그려냈다. 50년대를 재현한 의상부터 전화기 한대까지 공들인 무대도 눈길을 끈다. (동아일보 연극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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