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 정복근 연출: 김아라
일시 및 장소: 1988년 6월 15일~7월 15일 대학로 극장

<독배>는 6.25 이후 4.19, 5.16 등 사회적 혼란 속에서, 정치로 상징되는 시대악으로 인해 파괴되는 개인적인 삶을 그리고 있다. 4.19혁명의 세대이자, 월남전쟁의 참여자로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만 불구자로 살아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수는 현실주의자가 아닌, 이상주의자로 살아감. 영식과 결혼후,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나, 자신으로 인해 공장장이 자살을 하게 된 일 등등의 여러가지 일로 인해 자살하게 되는 인물이다. 기전은 이런 관수를 위해 대학 등록금을 마련해 두고 창업 자금을 마련해 주는 등의 행동을 통해 관수를 아낀다. 그리고 그가 남기고 간 영식까지도 거둬들여 자신의 아내로 받아들인다. 때문에 기정은 극도의 현실주의자 물질주의자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비애를 가진 인물이다. 또한 기정은 영식에게 어머니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했을경우 충격으로 인해 아이와 영식 모두 안좋은 상황에 처해질 수 있으므로 영식에게 어머니가 죽었다는 말을 끝내 하지 않는다. 마지막에서는 기정도 관수 영식 등의 인물을 통해 고통받는 피해자의 모습을 보인다.

4.19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우리 연극계로서는 매우 드문 연극이다. 4.19는 지속적으로 이야기되지만 막상 그 관계 공연은 거의 없었다. 공연을 보면서 우리 창작극도 이렇게 강렬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인간을 아주 단순하게 두 가지 유형으로 잘랐다. 하나는 굉장히 아이디얼리스트, 나머지 하나는 굉장한 현실주의자, 그러나 굉장히 밀도 있게 그려진 4.19세대의 인간. 그때에 문가 정의를 위해서 도망을 다니면서 함께 싸웠으나 현실과 더불어 변해 가는 두 가지 유형의 끊임없는 윤창 같은 것이다. 그래서 과거와 현재가 화답하는 형식, 그리고 무너져 내린 네 인간이 현실에 살면서도 현실적이지 않은, 과거의 망령 속에서 사는, 허물어진 인간 네 명의 사중주를 만들었다. 4.19가 우리의 현실적 삶에 어떻게 빛과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가, 빛과 그늘이 어떻게 교차하고 있는가, 그 본질적인 비극성에 대해서 생각하는 연극이란 점에서 「독배」는 현대연극 사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작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독배>는 4 · 19로 인해 가치관의 변화를 겪게 된 상이한 유형의 인물들 이야기이다. 현실의 가정을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의 상처 속에서 끊임없이 욕망을 드러내는 영식과 이상만을 꿈꾸는 과거 속의 관수, 언제나 현실적인 이익만 올 추구하는 어머니와 같은 각각의 인물이 어떤 부분에서도 서로 맞물리지 못한 채 엇갈리고 있다. 그들은 서로가 무한한 연민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가해자가 되어 상처받고 쓰러져가는 심리적이고 내면적인 갈등의 세계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극의 시작은 기정이 근로자들의 안전사고에 대한 대책과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근로자 대표 성재와 협상을 벌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한편에서는 늦은 나이에 첫 임신을 한 아내 영식이 등장해 남편 기정에게 애정을 갈구한다. 성재가 회사의 창업주인 오관수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면서 극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차츰 과거의 사연들이 밝혀지기 시작한다. 이처럼 <독배>는 4 · 19 세대들이 겪는 의식의 불균형을 극중 현재에서 과거의 사건과 상처를 되짚어가는 과정을 통해 드러낸다. 4 · 19 세대가 겪는 의식의 불균형, 이는 자유와 자유의 무한 좌절로 인한 간극에서 기인한다. 4 · 19의 현장은 자유가 구현된 공간이 아니었으며, 4 • 19를 직간접으로 겪은 사람들 이 경제개발계획의 통제 속으로 편입된 이후의 삶은 자유를 강탈당한 그런 척박한 것이었다. 이 속에서 경제적 안정을 얻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우리 시대 중산층의 첫 모습을 이루며, 의식의 불균형은 이들이 치러야 할 대가였다. <독배>는 이 의식의 불균형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중산층의 문제에 접근한 것이다.

작가의 글
하나의 작품이 쓰여지는 경위와 동기를 생각해보면 항상 신기한 생각이 든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작품도 역시 부자연스럽게 억지를 쓴다고 해서 아무 때나 선뜻 만들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남의 작품이 아닌 내 작품의 경우에도 꼭집어서 언제 어느때 어떤 동기로 쓰기 시작했다고는 쉽게 말할 수 없다. 어떤 수많은 무의식 속의 요인들, 일상 속에서 채 삭혀지지 않는 느낌의 앙금 같은 것들이 의식의 밑바닥에 오래오래 쌓여 있다가 어느날 골격이 될만한 이미지가 떠오르면 순식간에 모여들어 작품의 형태를 절로 이룬다고 밖에 설명되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작품속에 담겨있는 의식의 이면을 곰곰이 따지며 헤집어 보면 낡은집의 다락방 속처럼 참 무수히 많은 먼지 낀 상념의 조각들이 포개어져 있음이 들어난다. 한 시대를 뒤흔드는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사건들은 얼핏 보면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우리들 개인의 삶에 신문기사 정도의 영향밖에 미치지 않는 듯이 보인다. 그래서 당시에는 하기 좋은 남의 말, 흥미진진한 읽을거리 정도로 지나갔다고 생각하지만 한참 지난 뒤에 돌이켜보면 그런 사건들이 자신의 삶의 한 부분에 아는 새 모르는 새 지워지지 않는 얼룩을 만들어 놓았음을 깨닫게 된다. 입장이 옳든 그르든 서로서로 모여서 하나의 세상을 이루고 그 안에 몸담아 함께 뒤섞여 살아가는 처지이고 보면 그 누구의 삶도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열다섯 살 때 겪은 4.19는 당시에는 나와는 무관한 사건이었다. 광화문 네거리에 학생들의 시체가 산같이 쌓여있다는 유언비어, 웬일인지 자꾸 눈시울이 더워지는 플래카드의 문 귀들 쥐어짜는 듯 무덥던 날씨, 불타는 경찰서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순경이 타죽었다는 무서운 소문, 그리고 초저녁 7시면 인적이 끊기는 계엄령이 내린 거리 저쪽에서 무슨 장엄한 합창처럼 들려오는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데모대의 함성, 어지러운 신문기사들 속에서 내 4.19 지나났다. 그리고 뒤이어 5.16이 일어났는데 그것은 어느 날 갑작스러운 등교 금지, 거리에 가득한 탱크와 군인들, 혁명군을 저지하려다가 한강 다리에서 전사한 소수의 군인이 있다는 얘기, 하마터면 공산당이 내려올 뻔했다는 무시무시한 위기감에 대한 기억을 남겼을 뿐이다. 그리고 또 얼마 후에 나는 무심하고 태평스럽던 마음 밑바닥에 아주 조그만 돌이 하나 튀어나와 있음을 깨달았다. 4.19라던가 5.16이라는 말을 들으면 언제나 무엇인가가 그 돌부리에 걸려서 걸리적거렸다. 아무리 천착해봐도 그 아름다운 의미를 훼손할 수 없는 4.19에 감격하면 감격할수록, 공산당의 남침 위기에서 아슬아슬하게 국가와 민족을 건졌다는 5.16의 대의명분이 요란하면 요란할수록 마음속의 불편함은 커져 갔다. 마치 스무 번도 더 읽은 삼국지 속에서 좋아하다 못해 사모하기까지 하던 관우나 조자룡의 아래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는 수많은 ‘목’들을 생각할때마다 느껴지는 묘한 불편한처럼 그 애매한 느낌은 성가시게 늘어붙어서 나이를 먹어도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한참 나이를 먹은 뒤에야 나는 조금씩 그 오랜 불편한 상님의 정체를 깨닫아갔다. 격변하는 세태는 그때그때 세상을 지배하는 흐름을 갖게 마련이고 그 압도적인 유행의 분위기 뒤쪽에는 항상 밝히고 소외된 선의의 사람들이 있어서 저수지로 흘러드는 차거운 게처럼 그 말 못 하는 슬픔과 고통이 소리 없이 살금살금 우리 주변으로 스며들고 있었던 것이다. 4.19 불타 죽은 순경이나 5.16 때 전사한 군인들의 가족들이 견뎌야만 했을 세월을 생각하면서 나는 마음속에 생겨난 무리의 크기를 가늠했던 것 같다. 세종실록을 읽어보면 즉위 초기의 가뭄이 심하던 몇 년간 거의 한달 간격으로 임금이 직접 기우제를 지내고 육식을 삼가며, 감옥을 열어서 억울한 죄인들을 방면하고 홀아비와 과부와 고아들을 구휼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러한 기록은 세종시대 뿐 아니라 역대의 모든 임금의 실록에서 보이고 심지어는 폭군으로 소문난 연산군일기에서도 심심치 않게 보여진다. 번영하는 세상의 뒤안에서 숨죽이고 사는 상처 입고 소외된 선의의 사람들의 슬픔이 모여서 끝내는 세상의 화기를 깨뜨리고 날씨에 마저 영향을 미친다는 우리 나름의 무서운 성찰과 근신의 규범이 아닌, 수 없다. 자칫하면 옳으나, 그르나, 흑이냐 백이냐로 일도양단 해버리는 버릇이 있는 아슬아슬한 풍조 속에 빠져 살면서 우리에게 이런 튼튼하고 의젓한 철학과 규범이 있었음을 확인한다는 것은 매우 위안이 되는 일이었다. 장고, 징, 꽹과리, 북동 농악에 쓰이는 악기들이 주변의 다른 악기의 소리에는 아랑곳없이 각자 걱렬하게 제소리만 내는 것 같지만 한참 들어보면 결국 어떤 서양음악도 이루지 못하는 절묘하고 장엄한 음의 조화를 이루어내는 것처럼 우리도 각각 제고에 빠져 제소리만 하며 사는 듯 싶어도 끝내는 이 질곡을 헤치고, 의연하고 당당한 한 시대를 조화롭게 살아 보이리라는 확신 같은 것이 8년 전 이 작품에 손을 댄 동기가 되었던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애증으로 뒤엉킨 등장인물 다섯 사람의 성격과 고통을 흘러가 버린 시간의 저편에서 들려오는 그리고 현재가 함께 화답하여 이루어내는 어떤 합창의 개념으로 이 작품을 파악하는 연출자를 만나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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