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들 가슴에 여전히 흐르는 노래가 있다. 비틀린 역사 속에 가려진 진실, 그리고 어머니!
그때 나는 어렸다. 내 생애 최초로 죽음의 순간을 느꼈던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이제 나는 어른이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결의에 차서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민주를 외친다. 그냥 이렇게 살아가다가 적당히 용서하고 적당히 시류를 타면서 저들에게 굴복하고 노예가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두려움이 밀려온다. 때 지난 얘기 같지만 아직도 "이런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언제나 그렇듯 사람들은 결의로 가득하여 이런 노래를 부를 것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외치고 싶다. 우리 하나였을 때부터 다시... 아무도 개입하지 말고 우리끼리 다시 시작하자고...

줄거리
작업실에 혼자 앉아 재봉틀을 돌리며 한복을 만들던 영옥은 환청에 시달리며 과거를 회상한다. 그녀의 집안은 대대로 부자였으나 일제시대 친일파였던 아버지가 인민군에게 살해당하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남들처럼 부유하고 화려하게 살고 싶었던 영옥은 남편 인수가 최고 학벌을 가지고 있음에도 시골에서 선생님을 한다는 데에 불만이 많다. 그녀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인수를 국회의원으로 만들려고 하지만 그는 정치 전반에 맹렬한 비판을 가한다. 정부의 조작된 간첩 사건이 터지자, 인수가 구속된다. 그를 석방시키기 위해, 영옥은 경찰의 회유에 속아 인수를 간첩으로 고발한다. 그러나 검찰은 그녀와의 약속을 져 버리고 인수를 사형시킨다. 남편을 고발하여 죽게 하였다고 영옥과 그의 아들 경훈은 마을에서 쫓겨나 힘든 생활을 한다. 어렵게 대학원까지 졸업한 경훈은 공장에 들어가 노조를 결성하고 임금 투쟁을 벌인다. 그를 노조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영옥은 그들의 집회 장소를 경찰에 밀고한다. 그러나 경훈을 위한 영옥의 행동은 또다른 비극을 초래하게 되고 만다. 영옥은 경훈의 시체를 작업실에 놓고 자신의 환상속에서 인수와 경훈을 만나는데....

결국 이 작품에서 불려지는 노래는 희망의 나라를 향한 행진곡이라기보다는 영원한 배신의 노래를 불러야 했던 한 어머니의 엘레지인 셈이다. <이런 노래>의 음울한 색깔은 이 대본의 창작연대가 80년대 중반이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연출가 심재찬에 따르면 껄끄러운 소재란 이유 때문에 그동안 수차례 시도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올리기 쉽지 않았다는 것. 극의 배경은 누렇게 절은 광목 치마저고리가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린 한복집. 중년의 여인이 재봉틀을 돌리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남편과 아들이 출세하여 잘 살기를 바라는 것 이상의 바람은 없는 평범한 어머니, 하지만 그녀가 허위증언으로 남편을 간첩으로 몰아 처형당하게 하고, 운동권 아들의 아지트를 고발해 불타 죽게 해 비운의 한복판에 들어서게 된다. 그녀의 비운은 가깝게는 가족이기주의였지만 파고들면 결국 이데올로기 대립이란 한 시대의 희생양이었다는 것이 강조된다. 한 슬픈 가족사를 통해 우리 역사의 한 토막을 반추하고 있는 이 작품의 화두는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휴머니즘이다. (세계일보 1994년 9월 22일, 김성회)

남편과 아들이 그저 출세해서 토속적으로 잘 살기만을 바랐던 여인 영옥은 남편을 정계로 내몰지만 진보정당에 몸담은 남편은 북한의 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한다. 또 아버지의 죽음에 한을 품었던 아들은 노동운동을 하다 분규 중에 불에 타 숨진다. 순진한 영옥은 이 과정에서 정부와 기업에 이용당해 두 사람의 죽음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고 여기서 얻은 죄책감은 결국 그녀까지 죽음의 길로 내몬다. 영옥이 재봉틀을 돌리며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 작품은 주제의 무거움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기타반주 노래와 어울려 마치 한편의 시처럼 자연스럽게 흐른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재봉틀소리, 천장에 매달린 수십벌의 광목 옷, 그리고 적절한 조명처리가 관객을 작품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아래를 향한 정확한 역사의식과 낮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성찰을 밀도있게 보여줘 온 작가 정복근이 <이런노래>에서는 시대의 부조리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제시 하며 현 사회의 부작용을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한 실존적이며 대담한 질문으로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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