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정복근 '숨은 물'

clint 2018. 1. 14. 10:49

 

 

한 소년이 자기에겐 왜 아버지가 없냐면서 할머니에게 아버지의 얘기를 
들려 달라는 것으로 시작되는 극은, 현실에서 역사의 시간 속으로 흘러들어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삼국통일기, 조선왕조 성립기, 한일 합방기의 
시대를 통해 외세를 등에 업고 권력을 차지한 심문자와 변절자가 등장하고
 이에 저항 하는 피의자들이 3각구도를 그리며 대결한다. 
심문자는 외세를 끌어들여 정권을 찬탈한 권력자이며 변절자는 권력의 향방에 
따라 변절과 배신을 밥 먹듯 하는 자들이다. 피의자는 각 시대에 따라 
삼국통일기에는 계백장군이나 복신장군, 조선왕조 성립기에는 
만적 김통정· 최영. 정몽주 등 고려조의 충신, 
그리고 한일합방기에는 최제우. 전봉준 등으로 상징된다. 
이러한 피의자 주변에는 정의와 진리를 차지하는 민중 속의 지킴이들이 
광대라는 위장된 모습으로 맴돌고 있다.

 

이 작품은 삼국통일기, 조선왕조 성립기, 한일 합방기를 배경으로 권력자,

변절자에 대항하는 지킴이를 그리고 있다. 내분과 외침으로 얼룩진

우리 민족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꿰뚫으면서 부당한 권력에 굴하지 않고

꼿꼿하게 민족정기를 지켜온 힘의 근원을 추적하고 있다.

지킴이는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 속에 부당한 권력과 외세를 거부하고

민족정기를 지켜온 정신적 아비요, 힘의 근원인 것이다.

 

 

「숨은 물」(극단 무천·정복근 작·김아라 연출)은 우리의 전래 동요와 민요, 탈, 전통무술과 탈춤, 비옷, 음악 된 한국적인 연극을 보여 준다. 한 현대 소년의 「아버지 찾기」라는 모티프로 시작되어 동요들에서 민족정신을 지켜 온 진정한 아버지들의 존재를 통시적으로 찾아간다는 내용이다. 현재와 역사의 이중구조는 배우들이 각각 심문자·변절자·피의자로 역할을 바꾸고 나머지 배우들은 민중의 놀이를 하면서 삼중구도로 확대된다. 무거운 주제의식을 현대적이고도 진지한 제의극 형식 속에 담아 연극 예술만이 보여줄 수 있는 치열한 감동과 제의적 일체감을 안겨 주었다. 우리 창작극의 밝은 미래를 예감케 한다. ‘광대=무사’ 기원론 - 극단 무천의 창단공연 <숨은 물>몇 년 사이 급격하게 주가가 오른 연출가 김아라(金亞羅)를 대표로 극단 무천(舞天)이 창단공연을 갖는다(1993. 1.31일까지, 성좌소극장). ‘무천’은 알다시피 원(原)삼국시대 예(濊)나라에서 하늘에 드리던 상달제사의 국중대회(國中大會)를 말한다. 밤낮으로 술을 마시고 노래하며 춤추는 것을 일러 ‘무천’이라 하였고, 호랑이를 신으로 모셔 제사하였다고 고대 중국 문헌은 전한다. 노래하고 춤추는 것은 전통적으로 예능이며, 예능의 원조는 광대이다. 광대는 사당패·화랑이패·솟대쟁이 들을 총칭하며, 그들은 고리백정·속가화상 등 천민 그룹에 속한다. 그러나 호랑이를 제사지내던 그들의 습성은 호랑이 토템족으로서의 기개와 용맹을 지닌 무예의 후예임을 입증한다 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야담조의 발상이다. 요사이 유행하는 기(氣)철학의 신비를 캐려는 광대, 곧 무사의 후예론은 작가 정복근의 작품세계에서 자주 거론된다.

 

 

 


극단 무천의 창단공연 작품 <숨은 물>도 그런 맥락에서 접근하는 것이 좋다. 어떻게 보면 황당무계하지만 정서적으로는 공감이 가는 ‘광대=무사’, ‘가무=무예’ 기원론을 연극적으로 양식화시킨 이 작품은 ‘숨은 물’이 다름 아닌 민족정기임을 암시한다. 그 민족정기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아비’사상이며, 그것은 까마득한 민족 형성기부터 이어져 오는 조령(祖靈)사상이기도 하다. 급기야 그것은 가부장(家父長)제적인 부권(父權)을 뜻하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용맹과 기개를 대변하는 무사이자 무예의 도사이자 영락한 광대인 것이다. 그들은 시대에 따라 민족정기를 수호하는 반역자가 된다. 권력을 쥔 자는 연극 속에서 ‘심문자’가 되고, 그 권력에 추종하는 사이비 지식인은 ‘변절자’가 된다. 민족정기를 수호하는 반역자는 ‘지킴이’이다. 그들은 시대사회의 대세 속에서 ‘피의자’가 된다.
역사의 피의자로서 광대는 호랑이 같은 기세의 저 무천시대 이후 차츰 영락의 길을 걸어왔다. 그들의 역사는 패배의 길이다. 아니다. 그들의 길은 역모와 반역의 길이다. 그렇게 대세에서 멀어져 간 백제의 계백, 묘청, 만적, 김통정, 최영, 성삼문, 최제우, 전봉준 등은 역사의 표면에 드러난 강물의 흐름에 비하면 숨은 물인 것이다. 지하에 숨은 수맥으로서 그들은 민족의 혼을 계승해 준 것이다. 그들의 정신은 ‘아비’다운 무사정신이며 그것은 사나이 정신이다. 그리고 이윽고 민족정신을 대변하는 불굴의 선비정신이 된다.

 

 


필자는 이 ‘아비’사상이 여성들인 김아라와 정복근에 의해 극화된 사실을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호랑이 기개가 무사정신으로 이어지고 끝내는 선비정신으로 변모되어 나간 역사의 강물에서 무사의 무예가 광대의 예능으로 질적 변모를 거듭하면서 끝내는 예술 속에서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으로 연금술적 결합을 이룰 수밖에 없는 어떤 필연성에 생각이 미침으로써 나름대로의 해답을 얻었다. 예술이, 연극예술이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을 결합시킨다. 남성적인 것이 놓치는 것을 여성적인 힘이 보강하고 그 역 또한 가능하게 한다. 어쩌면 남성적인 힘이 현시(顯示)적으로 드러나 있을 때 여성적인 것으로 인하여 우리는 우리의 결함을 제대로 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숨은 물>은 숨은 의미를 전달한다. 드러나 있지 않은 묵시적 상징들도 많다. 그것이 작품 구성의 능력 탓인지 연출 능력 탓인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아니면 그 둘의 연계에서 비로소 가능한 것이 연극예술의 묘미인지 모른다. 정통적인 연극행위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동요—라기보다 속요(俗謠)의 주술성이 더 강하다—를 통한 노랫가락의 내면적 호흡법과 탈춤 형식의 서사적 단절기법에다 역사적 사실의 신화적 접속법을 통해 주제를 다채롭게 이어간 작품 구성과 연출 수법은 섬세하게 양식화되어 있다.

 

 

 

작가의 변 - 정복근

멀리 물러서서 바라보면 산천의 윤곽이 뚜렷이 들어 보이는 것처럼 우리 일상의 모습도 한발만 물러서서 바라보면 때로 뜻밖의 모습을 들어내어 보이는 것 같다. 일상에 빠져서 바쁘게 움직일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일들이 새삼스럽게 손에 손을 잡고 함께 뒤섞여서 들어나 보이기도 한다.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지닌 여러 가지 선천적이고 후천적인 장점과 단점들, 그리고 자신이 속한 세상이 지닌 이런저런 면모들을 물러서서 바라보다 보면 이런 구조 속의 한 부분인 자신은 과연 어디로부터 온 누구인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언제 어떤 기운으로 부터 발아된 어떤 사상과 상념들이 또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모였다가 흩어지며 우여곡절을 겪으며 만들어진 결과가 지금 이 순간의 내 자신일까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순간이나마 갈피를 잡아 확신을 품게 되면 단절감이나 좌절감에서 벗어나게 되기도 하고 다음 일을 향한 격려 비슷한 것도 느끼게 된다. 다락방에 물려 받은 보물을 간직한 사람처럼, 안심하고 기댈만한 기둥 하나를 혈동 속에 든든하게 간직하고 있다는 믿음이 우리에게 늘 새로운 가능성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런 것들이 어쩌면 시간이라던가 역사가 우리에게 베푸는 배려 내지는 애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곤 한다. 주택가의 좁은 뒷골목을 지나다 보면 아직도 드문드문 들리는 어린이들의 놀이노래를 듣게 되는데 그 노래들 속에 묻어있는 낯익은 숨결의 정체를 생각하면서 어린 시절 듣던 옛이야기 속의 미로를 헤매는 기분으로 이런 작품을 쓴 것 같다. 좋은 무대를 만들어 보려고 애쓰신 참여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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