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막과 후막은 ‘시민 가’가 해설자로서 연극 전체의 윤곽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되고 막이 내린다. 박물관장은 박물관에 있는 알 속에 훌륭한 임금님이 들어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알 속의 임금님이 살기 위해서는 현재의 왕이 죽어야 한다면서, 왕의 자살을 유도한다. 이어 그는 알 속에 공룡이 들어있다고 자신의 말을 뒤집은 후, 위대한 임금님이 들어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알을 택하고, 공룡이 들어 있다고 믿는 사람은 자신을 택하라고 한다. 박물관장은 시민들과 왕을 상대로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임금님이 있는지, 공룡이 있는지) 대신 박물관장을 왕으로 선택하자, 박물관장은 알을 제거한 후 그 알에는 임금님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박물관장은 “알 속에 임금님이 있었다, 공룡이 있었다”를 반복하면서, 시민들을 고통에 빠뜨린다.
원시인들의 생활형태를 빌어서 인간의 빈약한 지혜를 풍자한 극으로 흐름이 빠르고 구성이 치밀하게 짜여져 있다. 공룡들의 출현으로 인한 원시인들의 공포, 그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목적하는 바를 성취하려는 사기 도박군 박물관장의 교활한 권모 술수는 순진하고 정직한 시민들의 의식을 여지없이 혼돈으로 몰아 넣는다. 알속에 위대한 임금이 들어 있다는 간계에 농락 당하는 시민들은 혼돈속에서 자기자신을 구제하기 위한 방편으로 죄없는 왕의 죽음을 초래하고도 태연 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보다 나은 선, 위대한 임금의 출현을 믿기 때문이다. 박물관장은 그러한 시민들을 다시 농락하여 알속에서 공룡이 부화되어 나올 것이라하여 알과 자신중에 하나를 선택할 것을 시민들에게 맡기나 그들은 이미 선악을 구별 할 판별력을 잊은지 오래다. 그래서 안일을 구하는 시민들에 의해 박물관장은 그들의 지배자가 되고 시민들은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한탄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박물관장은 물론 가공의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능수능란하고 치밀한 계획에 의한 유혹의 짓거리나 시민들의 몸부림을 희극적으로 복에는 왠지 씁쓸한 맛이 있다. 왜 일까! 그것은 관객드르 스스로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겨 둘 수 밖에 없다.
작품 「알」은 이강백씨에 의해 1971년부터 1974년까지 창작된 작품들 「파수꾼」,「결혼」,「셋」등과 함께 우화적인 희곡들 중의 하나다. 1972년 10월 7일에서 9일까지 임준빈씨의 연출로 ‘극회세대’에 의해서 코리아나 소극장에서 초연되었고 연극 전문지 《드라마》 제4호(1973)에 게재되었다. 작가 자신은 그의 희곡들의 특징을 등장인물의 모래알 같은 성격과 함께, 매우 우화(寓話)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 우화적인 희곡의 약점은 사실성의 결여라고 하지만 이 작품은 리얼리티가 뚜렷하다고 볼 수 있다. 즉 「알」은 정치적 후진국가에서 악순환처럼 자주 발생하는 쿠데타를 연극화하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작품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에서는 거듭되는 쿠데타에 시달리고 있는데, 쿠데타의 집권자들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위대한 이상(理想)을 내건 다음 공룡(恐龍)처럼 공포로써 동치되는 이율배반적인 메커니즘을 활용하여 왔다. 이 작품 속에서 시민들의 기대는 뜨거운 태양을 향해 날아올라가는 무지갯빛 애드벌룬이었다. 박물관장에 의해 위대한 왕도 되고 무서운 공룡도 되었던 둥그런 석회질의 실체는 밤하늘의 불꽃놀이처럼 잠시 반짝이다 사라지는 그런 아쉬움과 허탈감으로 우리의 가슴을 무겁게 누른다. 두 번 다시는 살 수 없는 일회성적인 삶과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역사속의 무서운 잘못의 결과와 악한 집권자의 권력 남용의 허상을, 70년대에 쓰이고 공연된 「알」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씹으면서 그 쓴맛을 음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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