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조은정 단막 '디아스포라'

clint 2017. 6. 22. 18:16

 

 

 

작품의도

 

방랑이 운명인 사람들이 있다. 태어난 곳에 쟁 붙이지 못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동경하는 사람. 자의든 타의든,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떠도는 사람. 디아스포라, 흩어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디아스포라는 삶의 터전을 잃고 전 세계로 흩어진 유대인들을 칭하던 말이었지만, 오늘날에는 방랑자를 지칭하는 의미로 광범위하게 쓰인다오늘날의 디아스포라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우리나라 식 표현으로는 역마살이 낀 사람. 남들은 이해하지 못 할지라도 어딘가로 떠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 주인공 현은 전형적인 방랑자다. 준에게는 다소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엄마일 수도 있지만 현 나름대로는 그때그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낸다. 현의 아들 준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날 때부터 떠돌아야 했던 소년이다. 그렇기에 제주도에 정착했다 해도 또래 친구들에게 마음을 쉽게 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준에게 유일하게 친구가 되어 준 사람은 늙은 해녀 할망이었다. 할망과의 만남, 할망의 죽음은 준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었을 것이다. 할망이 평생 바다풀 일터 삼아 치열하게 물질을 했다면, 준은 바다를 일터 삼아 항해하는 삶을 꿈꾸게 되었다.

이 작품의 세 번째 주인공은 어미 고양이 오름이와 새끼다. 명백하게 현과 준을 닮은 고양이 모자는 현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다. 모두에게 환영받는 존재는 아니지만, 나름의 삶을 살아내는 길고양이들의 강인한 생명력은 디아스포라의 모습과도 닮았다. 가족을 떠나 떠돌던 방랑자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겼을 때의 모습, 그리고 누군가를 떠나는 데에 익숙한 사람이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에 마주한 순간을 무대 위에 구현해보고자 했다. 현은 떠나겠다는 준의 급작스러운 선언에 당황하고, 충격 받고, 부정도 해보지만 결국 아들의 독립을 받아들인다. 이해할 수 없어도 받아들이고 응원하는 것. 그 정도가 현과 준이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지 않을까. 차마 말로 전하지 못한 준의 마음, 현의 심정의 변화 과정이 짧은 시간이지만 관객들에게 조금이나마 닿기를 소망한다.

 

작가소개

 

대학에서 언론학을 전공했지만, 연극 수엽으로의 외도를 일삼았다.

연극쟁이가 되고 싶어 대학로에서 제작사 직원으로 지내다, 없는 시간을 쪼개 대본 하나를 완성하자 때려치울 용기까지 생겼다. 그렇게 쓴 어린이 뮤지컬 고래가 만든 별자리로 처음 공연을 올렸다. 프리랜서로 들쑥날쑥 일하며, 글이라면 종류를 까리지 않고 일단 쓴다. 작품 속의 현과 같이 지속 가능한 방랑질을 모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