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F 아라발 '건축사와 아씨리황제'

clint 2016. 7. 7. 18:58

 

 

 

 

연극 건축사와 아씨리 황제는 그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상치된 느낌을 전달받을 수 있다. 왜 하필 작가는 “건축사”와 “황제”라는 상반된 개념을 사용하려 하였을까? 작가가 관객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러한 의문속에서 보게 된 “건축사와 아씨리 황제”는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신선한 충격을 불러일으켰던 계기가 되었다.
한 명의 원시인 -건축사가 되고자 하는- 이 살아가던 외딴 섬에 난데없이 비행기 사고의 단 한명의 생존자 -아씨리 황제가 되고자 하는- 가 나타나게 된다. 고립된 섬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을 겪게 된다. 즉, 건축사와 아씨리 황제는 지극히 단순한 인간관계 -이러한 인간관계가 성립하기 위한 최소 단위는 2명이다-를 맺게 된다.     

고독하고 소외된 현대인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고 그로테스크하게 그린 작품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중적이고 분열되어있는 현대인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찰을 시종일관 유머와 만화적인 상상력으로 극적 재미와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위선적이고 소심한 “나밖에 몰라”의 주인공 황제와 한없는 순진무구의 대명사 건축사! 가 벌이는 끝없는 역할놀이: 젊고 열정적이며 에너지 넘치는 두 명의 남자 배우는 간단한 소품과 의상변화를 통하여 ‘주인과 하인’, ‘엄마와 아이’, ‘신부와 참회자’, ‘약혼자와 약혼녀’ 등으로 끊임없는 역할변신을 하며 관객을 자신들의 놀이 속으로 끌어들이고 그들을 울고 웃게 만든다. 특히 재판장면에서 벌어지는 황제의 엄마, 아내로의 변신은 소름을 돋게 할 정도로 마술적 힘을 지니며 배우예술의 정점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배우의 놀라운 다양한 변신과 즉흥적인 가면과 소품, 화려한 의상 등을 통하여 다양한 관객과의 진정한 ‘살아 있는 소통과 교감의 장’을 활짝 열어준다 .
 
 

 

한사람의 원시인(건축사)이 사는 황폐한 섬에 비행기 추락사고의 유일한 생존자(아씨리 황제)가 등장하면서 그들은 일련의 도식화된 인간관계를 맺고 놀이, 즉 생활을 시작한다. 재판놀이 도중, 황제는 건축사에게 사형을 내려줄 것을 부탁하며, 자신의 시체를 먹어달라고 부탁한다. 또한 건축사의 모습은 황제로 변한다. 일종의 공서관계가 생기면서 홀로된 그의 귀에 폭발음이 들리고 황제차림을 한 건축사가 나타나면서 연극은 다시 반복된다.       

 

<건축사와 아씨리 황제>는 아라발 작품들 가운데 가장 거창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단지 거침없이 쏟아지는 말의 홍수 속에서 21세기의 한국 땅에서 공연시 채택할 것과 안할 것에 대한 분명한 선택의 문제가 있고 또 소극장이라는 제한된 공간적 영역에서 단 둘이라는 배우로 표현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 엄청난 도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도전 없이 어찌 한국 땅에서 연극을 할 것이며 특히 아라발을 보여 줄 것인가? 그래서 과감히 아직은 깨끗한, 하지만 경험은 많지 않은 두 젊은 남자 배우를 캐스팅하게 되었고 이들과 더불어 미지의 세계에 대한 첫 걸음이 시작 되었다. 과거에, 즉 70년대에 부조리극을 보면 무언가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은 특이하고 난해한 장면들이 매우 많았다. 하지만 우리팀은 일상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삶 자체가 부조리한 이 시점에서 부조리극은 더 이상 부조리하기 보단 우리의 일상을 재현해 주는 양식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은 외딴 섬(공간 혹은 인간)에 갇혀 있는 두 명의 인간(정신을 상징하는 황제와 신체를 상징하는 건축사)의 일상(놀이와 현실)에서 극은 시작한다. 그리고 정신에 의해 길들여진 신체는 스스로가 정신과 대등해지기 시작하면서 정신의 세계에 파고 들어 그 내면의 영역 (즉 자아의식과 잠재의식 그리고 죄의식)에 이르게 되고 이에 따라 정신은 자신의 영역을 모두 노출한 뒤 신체에 흡수 되어버린다. 마치 유물론적 세계에 이른 것 같은 이 과정은 그러나 또 다른 정신의 출현으로 새로운 변증법의 길목에 들어선다.물론 이것이 유물 변증법을 지속하는 것인지 아니면 헤겔식 역사발전을 지향하는 것인지 아라발에게 있어서는 분명하지는 않지만, 하지만 역사는 우리에게 어떤 형태의 발전이든 전체주의로 나가는 길이 될 위험성을 경고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 경고는 최근의 이라크 전쟁을 통해 현실화 되고 있다. 새로운 아씨리 황제 사담 후세인은 거대한 세계의 건축사 미합중국에게 정복당하며 그 찬란한 문명을 유지하긴 고사하고 스스로 파괴, 약탈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아라발의<건축사와 아씨리 황제>는 묵시록과 유사하고 연극의 교훈성을 듬뿍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작가의말//페르난도 아라발
<<유모어와 시정, 공포와 사랑이 하나가 되는 연극을 나는 꿈꾸고 있습니다.>>나는 연극에 관한 이론을 가지고 있지 않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에게 모험과 같은 것이며 지식과 경험의 열매는 아니다. 몇 달전 빠리에서 공연된 공황 연극이 관객에게 다음과 같은 무대로 상연되었다. 알랙산드로 조도로우스키(Alexandro Jodorowdki)는 50마리의 비둘기가 들어 있는 상자를 열어주고 그 중 한 마리를 산 채로 목을 비틀자 그 놈은 조금씩 피를 토하며 날개를 파닥거렸다. 오늘날 런던에서 피터부룩(Peter Brook) Us스펙타클이 한 배우에 의해 상연되었다. 그는 무대위에서 작은 상자에 갇혀있는 나비떼를 풀어주고 제일 큰 놈을 하나 골라 날개에 불을 붙이니, 나비가 이리 저리 파닥거리다가 까맣게 타죽었다. 이것은 런던에서 뿐만 아니라, 빠리, 뉴욕, 멕시코, 도오쿄, 전세계 어디에서나 쉽게 이런 종류의 상연은 찾아 볼 수 있다. 서로 알지 못하는 연극인들 사이에 이런 일치된 경향은 연극으로 향하는 똑같은 정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표명해 주는 것이다. 덧붙여 말하면 내가 언급하려는 모든
무대라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것, 또는 다른 유사한 감각으로 그뿐만 아니라 모두가 규정지우려드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에 흩어져 있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은 연극의 해석을 극단적인 결론에까지 밀고 나가 창조해내려 했다. 우리들의 방법 사이엔 커다란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들은 연극을 하나의 제전으로, 엄격한 질서의 의식으로 만들어내려 하고 있다. 비극과 기룔, 시와 통석성, 희극과 멜로드라마, 사랑과 에로티즘, 해프닝과 집단의 이론, 불경과 신성, 죽음의 투자와 생의 앙양, 비열과 숭고, 이 모두가 한결같이 등전속에, '공황 의식'속에 참여하는 것이다.
나는 유모와 시정, 공포와 사랑이 하나가 되는 연극을 꿈꾸고 있다. 그리하여 연극적인 제식은 돈키호테의 망상처럼,<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악몽처럼, 카프카의 K의 망상처럼, IBM이 밤을 이어주어 인간의 꿈을 보는 것처럼, 하나의 '오페라 멍디(세계적인 의식)'으로 변모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는 연극적인 엄격한 이념으로 지배되어야 하는, 나아가서는 희곡에 관해 말한다면 혼돈과 생의 혼란을 반영함으로써 그 창작 활동은 완성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에 와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기회이며, 현대 수학은 가장 예민하고 가장 정밀한 희곡을 우리들에게 솜씨있게 구축해 준다. 이런 명백한 무질서 밑에서 연출은 필수적인 정확한 연극의 규범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연극이 열광적일수록(공포내지 선동에 까지) 매혹적일수록(폭력내지 숭고에까지) 희곡과 연극은 더욱 치밀성을 요구한다. 놀라운 사건속에서도 나의 경우 시적인 언어란 효과가 안 나는 것 같다. 관객의 주의력을 끈다든지 무대 위에서 진행되는 사건에 집중되어 자신을 잃어버리는 기교밖에는 되지 않고 있다. 연극에서 시나 시적인 대사가 탄생되는 것은 악몽에서이며 그 메카니즘에서이고, 일상과 공상의 연관에서이며 '날으는 돌'처럼 감동적이고 직접적인 양식에서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위대한 한 시인이 내 작품속에서 시의 두 가지 얼굴을 밝혀내게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나는<광기의 돌>의 시적인 이야기와 다른 하나는 나의 희곡 작품이다.
우리가 지금 만들어내려 하는 연극은 현대적도 아니고, 전위도 아니고, 새로운 것도 아니고, 부조리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자유로우며 보다 나은 것에의 끊임없는 갈망이다. 가장 찬란한 연극은 오늘날의 예술을 시도할 수 있는 가장 이미지가 풍요한 거울이며, 또한 모든 예술의 연장이며 승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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