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는 현대. 등장인물의 이름은 현대 문명사회를 이루고 있는 여러 매체들로 이루어진다.
한 도시의 변두리 골목, 폐품 처리장. 수거해 온 쓰레기(버려진 갓난아이도 있는)를 가지고 쓰레기 수거인이 등장한다. 쓰레기 더미 속에서 노골적으로 뒤지는 노인(문화)에게 수거인은 욕설을 퍼붓는다. 그리고 노인은 문화로, 암고양이는 총 책임자로, 쓰레기 더미로 모여든 개들은 용병들이 된다. 현실을 지배하는 문화와 매체, 정치적 권력의 문제를 알레고리 기법을 통해 우화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 문화는 신문, TV, 스포츠, 예술 등에게 춤추고 노래하도록 명령하며 이들을 비난하고 빈정댄다. 문화는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된 아이를 천년전쟁 최고의 전사로 만들고 교육시킨다. 그리고 아이에게 문화란 절대적인 가치가 된다. 바로 이 문화의 심장부에서 반문화 혁명전선이 형성되고, 한 여성 혁명가가 탄생한다. 천년전쟁의 마지막 전사 아이가 이 여자를 정죄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아이는 문화는 본질이 될 수 없으며 절대적인 가치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이는 죽음을 맞는다.

작가의 글
나는 지금까지 〈영감〉으로만 글을 써왔다. 내 글은 정치적인 것을 고려한 작품들 ‘게르니까’, ‘발 바빌론’, ‘두 사람의 사형집행인’, ‘…그리고 그들은 꽃에 수갑을 채웠다.’까지, 또 영화 ‘죽음이여 만세!’도 그렇듯이, 모두 감성의 열매이거나 기막힌 추억의 소산이기도 하다.
「천년 전쟁」은 얼마나 가슴 뭉클한 경험이었던가! 정치와 인생의 문제에 대해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과 이마를 맞대고 쓴 작품이다, 나는 모든 사람들의 논쟁거리를, 최근 3년 동안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문제들을 극적 영상으로 바꾸는 임무만 맡은 것에 불과하다. 이 연극은 열정을 다해 만든 집단 작업의 결과이다. 집단의 구성원 전원의 힘으로 이루어졌다.
페르난도 아라발 [Arrabal, Fernando] (1932~ )
스페인태생의 프랑스 부조리극 작가, 소설가, 영화제작자
주요 작품 <전쟁터 속의 소풍> <환도와 리스> <세발자전거> <건축사와 아시리황제> 등
1958년 첫 희곡집이 나왔고, 1959년에 전쟁의 공포와 한 가족의 즐거운 소풍을 대비시킨 반전적 내용의 풍자물 <전쟁터 속의 소풍(Pique-nique en campagne)>이 상연되면서 프랑스 아방가르드 작가들로부터 주목받게 되었다. 초기 희곡 중 가장 중요한 작품은 예수의 이야기를 익살맞게 개작한 <자동차 묘지(Le Cimìetière des voitures)>(1958)일 것이다. 그의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종종 어린애 같으면서도 천진함이라고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로, 대개 매춘부나 살인자 또는 고문자들이다. 1960년대 중반 이후 그의 연극은 점점 더 형식적이고 의식적(儀式的)으로 되어갔고 자신이 ‘공포극(Théâtre Panique)’이라고 부르는 형태로 발전해갔다. 수많은 희곡을 쓴 이 시기에 나온 작품으로는 2명의 등장인물이 서로 역할을 바꾸어보는 내용인 <건축가와 아시리황제>(1967)와 이전의 희곡보다 더 공공연히 정치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그리고 그들은 꽃에 수갑을 채웠다(Et ils passèrent des menottes aux fleurs)>(1969)가 있다. 이 작품은 1967년 스페인 여행 중에 투옥당했던 일을 상기하며 쓴 것으로,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첫 소설인 <바빌론의 바알 신(Baal Babylone)>(1959)은 파시즘 치하의 스페인에서 보낸 악몽 같은 어린시절의 기억을 다루고 있다. 1970년 그는 이 소설을 <죽음이여 만세!(Viva la Muerte!)>라는 제목의 영화대본으로 개작해 튀니지에서 영화로 찍었다. 대단한 다작 작가인 그는 12권에 달하는 희곡집을 출판한 외에도 소설, 영화대본, 시, 정치적 논-픽션물 등을 썼으며, 체스에 관한 책도 2권 있다

‘천년 전쟁‘은 음악극의 새로운 시도이다. 이런 시도는 연극이 지니는 독특한 방식으로 음악, 대본, 무대작업, 모두 같은 구상 하에 세워진 시나리오를 놓고, 배우, 음악인, 가수들이 같이 공연에 참여하려고 모였다. 우리는 장 비라르Jean Vilar의 후원 아래 음악극으로 만들어서 , 1970년 여름 아비뇽 페스티벌 Festival d’Avignon에서 보여 주려고 생각했었다.
그 후 작품의 주제는 바뀌어도 기본 원칙은 변하지 않았다. 집단 창작법으로 무대를 만드는 것이다. 아라발은 지금까지 무대 위에서 표현해 왔던 방식을 문제시해 보려는 이러한 공연 방식에 동의했다.
이 시나리오의 기본 선이 제법 명확하게 세워졌다. 특별한 이야기도 대사도 둥장인물 (심리적인 인물)도 없다. 우리 시대의 현실을 드러내는데 있어 연극이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가장 독특한 방법이 제시되었다.
「천년 전쟁」은 요즘 한창 문제시되고 있는 세 부분, 계급 문화, 성과가 있어 보이는 자본주의 사회의 이윤 놀음, 식민주의 억압까지도 담겨져 있다. 따라서 이러한 주제들은 매번 제식과 죽음의 의식이 깃들여져, 극적이고 시각적이며 다양한 음악을 통해 무대의 형식으로 형상화되었다.
이번 무대가 학술적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조금도 기울지 않았다면, 그것은 들뜨고 기분 좋은 이야기에만 만족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현대의 사회 속에서 힘의 관계를 보이려는 것이 아니라 훨씬 염세적이 되었다는 것을 보이려는데 있다. 연극이란 극적이고 독특하며 명확한 글로 바꿔 놓은 현실과 꿈에 지나지 않는다. 연극은 두려움의 대상도 아니며, 여타 다른 투쟁 형태처럼 위험한 것도 아니다.
- 조르주 라벨리 Jorge Lavel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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