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연 시 연극 평.
페르난도 아라발의 「검붉은 여명」이 삐에르 알랭 졸리베 Pierre-Alain Jolivet의 연출로 뽀쉬 극장Theatre de Poche에서 초연되었다.
1969 12월 26일 출판사에서 로제 도마니씨와 로랑 모당씨의 초대로 모여 아라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심리적으로 상처투성이인 이 스페인 작가의 최신작. ‘현대의 인간에게 모든 영역에서 더 많은 자유를’이라는 슬로건을 만나게 되었다.
‘상상-혁명’이라는 제목을 붙여도 좋은 「검붉은 여명」은 두 측면에서 이러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형식면에서 관객을 반강제로 배우들과 합류시켜 놓고, 내용 면에서는 작가가 신념을 가지고 세계 도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억압에 대해 비난하고 있다. 우리에게 혁명적인 무대를 제시했다. ‘그의 이런 경고가 우리에게 무엇을 제시할 수 있을지 한번 얘기해 보자.’
〈토마옥크 밴드〉 그룹과 출연자들은(대부분 아주 가벼운 차림으로) 무대에서, 길게 늘어진 방파제에서, 관객의 한가운데서, 아니면 철제 골조 위에서, 어디서든 연기를 한다. 그들의 연기, 행동은 작품의 여러 특징들, 이를테면 대사, 몸짓, 춤, 재주넘기 등 도전적으로 아니 훨씬 암시적으로 성적인 육체의 부딪침들을 하나씩 삽입시켜 나간다. 정면 영사막에는 영화가 상영되고, 측면 영사막에는 환풍기가 영사된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보여 주는
시사물들은 뽀쉬 극단의 책임 아래 외국 전문가들에 의해 배열된 필름 가운데서 선별되었다. 이렇게 된 것은 실험 연극이 지금까지 줄 끝에서 위태롭게 살아왔기 때문이리라.

37세의 나이에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극작가 아라발은 오늘날 연극의 위대한 개혁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가 맹위를 떨치게 된 이유를 알기 위해 그의 생애의 사건들을 더듬어 보면, 두 돌발사건 - 1967년의 스페인 형무소의 투옥과 1968년 파리 학생 소요 사건 - 이 그를 골수까지 흔들어 놓았고, 「검붉은 여명」은 그에게서 터져 나온 울부짖음이기도 하다. 아라발은 이 작품에서 억압을, 모든 형태의 탄압을 비난하고 있다. 이것은 자유에 대한 인간의 특히 젊은이의 어쩔 수 없는 열망의 외침이다.
아라발이 털북숭이 사형집행인을 공시대(公示臺)에 묶어 놓은 것은 그의 눈으로 사회가 어디에 시선을 두고 있는지를 겨누고 있는 것이다. 되살아난 나치주의, 인종주의, 군대, 교회, 경찰, 지성인, 경제, 악습, 정치. 자, 이것들을 둘러보자 그의 벽화는 법정이다. 공개적이건 아니건, 억지로 골탕 먹이고 복종시키려 들고 압력을 주고 짓밟고 추잡스럽고 심문하고 시달리우고 약화시키고, 이것이 모두 법정이다. 아라발은 ‘항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번에 법정으로 나선 것이다. 자유를 위한 투쟁으로 그를 법정에 데려가 세워 놓은 것이다.
자유 : 이 단어는 명확하다. 그 의미는 누구에게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모두 당연히 동의한다. 그가 달리 고무된 개념으로 쓴다 하더라도 뜻이 같은 건 명확하다.
자유가 진정 코 아라발이 원하는 것인바, 그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자유에 대한 이미지는 그의 매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인간 행동의 원동력인 성적 유혹에 관한 한 할머니들한테는 숨 막힐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 문제가 되는 근본 요소는 전혀 다르다. 아라발이 고집스럽게, 줄기찬 방법으로, 아주 보란 듯이 욕정 적 형태를 취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은 뽀쉬 극단의 연극 방향이 적어도 18년의 공연을 해 오면서 훌륭하게 세워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 이다.
어쨌든 「검붉은 여명」이 실험적인 면에서는 ‘성공’을 확신한다. 다양한 구성의 종합은 특기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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