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소포클레스 '트라키스의 여인들'

clint 2016. 7. 6. 10:43

 

 

 

 

 

 

기원전 440년대 후반에 공연된 것으로 추정되는 소포클레스의 <트라키스의 여인들>은 영웅 헤라클레스 생애 마지막 부분을 다루고 있다. 신화는 헤라클레스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12과업 또는 노역을 수행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그의 영웅적인 면모를 재현한다. 그러나 <트라키스의 여인들>에서는 헤라클레스의 영웅적 모습이 그리 잘 드러나지 않는다. 죽기 전에 헤라클레스 자신이 노역을 언급하는 대목을 제외하고는 헤라클레스의 영웅성이 드러나는 대목은 거의 없다. 고통에 시달려 연약한 여자처럼 울부짖는 헤라클레스의 모습이 재현되어 있을 뿐이다.

 

<트라키스의 여인들>은 에우리토스 왕의 딸 이올레에게 향하는 헤라클레스의 사랑을 다시 자신에게 되돌려 놓으려는 데이아네이라의 노력과 자살, 그리고 그녀가 보낸 히드라의 독이 용해된 네소스의 피가 묻은 옷을 입고 죽어가는 헤라클레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작품 곳곳에서 헤라클레스의 생애와 그가 수행한 12노역을 언급하고 있어 이에 대한 선행지식이 필요하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칭송받아온 헤라클레스는 도리스족의 시조신이자 영웅으로 제우스와 미케네의 공주 알크메네의 아들이다. 제우스는 알크메네의 남편 암피트리온이 전쟁에 참가하기 위해 집을 비운 사이, 그의 모습으로 변신해 알크메네를 속이고 그녀와 동침했다. 진짜 남편인 암피트리온이 귀향해 알크메네와 동침하자 알크메네는 쌍둥이를 잉태했고, 제우스와의 사이에서 헤라클레스를, 암피트리옹과 사이에서는 이피클레스라는 아들을 낳는다. 헤라클레스가 탄생하자 제우스는 그에게 불사의 생명을 주기 위해 잠든 헤라의 젖을 물렸다 아기가 젖을 빠는 힘에 놀란 헤라가 아기를 뿌리치면서 흘러나온 젖이 은하수가 되었다고 전한다.

 

 

 

성인이 된 헤라클레스는 아테나 여신의 도움으로 테베를 승리로 이끈다. 그자 테베 왕 크레온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딸 메가리를 헤라클레스와 결혼시켰고, 헤리콜레스와 그녀 사이에서 세 명의 아이가 태어난다. 그러나 헤라가 술에 취한 헤라클레스를 광증에 사로잡히게 만들어 아이들과 메가라를 적으로 착각하고 죽여 버리게 만든다. 헤라클레스는 이 죗값을 치르기 위해 티린스의 왕 에우리스테우스의 신하가 되어 12년 동안 그가 시키는 노역을 한다. 그에게 부과된 열두 가지 노역은 다음과 같다.

1 네메아의 사자를 퇴치하는 일

2. 레르나의 독사 히드라를 퇴치하는 일

3 케리네이아의 암사슴을 생포하는 일

4 에리만토스의 멧돼지를 생포하는 일

5. 아우게이아스의 외양간을 청소하는 일

6. 스팀팔로스의 새를 퇴치하는 일

7 크레타의 황소를 생포하는 일

8. 디오메데스의 야생미를 생포하는 일

9. 히폴리테의 허리띠를 훔쳐오는 일

10. 게리옹의 황소 떼를 데려오는 일

11 헤스페리데스의 사과를 따오는 일

12, 하데스의 수문장 케르베로스를 생포하는 일

 

<트라키스의 여인들>에서 이 12노역에 관련된 대부분의 고사가 언급되고 있으나, 특히 작품과 관련된 것은 레르나의 뱀 히드라를 퇴치하는 일이다 이집트의 아이깁토스가 동생 다나오스의 재산을 노리고 자신의 아들 50명을 동생의 딸들에게 보내자, 다나오스는 딸들에게 신혼 첫날밤 조카 50명의 목을 베어 레르나의 호수에 던지게 했다. 이에 분노한 헤라 여신은 레르나 호수에 히드라를 보내 지나가는 여행객들을 잡아먹게 했고 에우리스테우스는 헤라클레스에게 이 히드라를 격퇴하도록 지시했다. 치명적인 독을 가진 뱀 히드라는 아홉 개의 목을 가졌으며, 목은 자르면 자른 만큼 늘어나기 때문에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헤라클레스는 히드라의 목을 베어 내고 그 자리를 이올라오스가 불로 태우도록 해 목이 다시 생겨나는 것을 막고 히드라를 퇴치했다고 한다. 히드라를 퇴치하고 난 뒤 헤라클레스는 히드라의 간에서 독을 채취해 그 독으로 케이론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또 헤라클레스는 히드라의 목에서 흘러나온 독이 든 피를 자신의 화살에 발라서 사용했는데, 이 독화살로 열 번째 과업인 게리온의 황소 떼를 데려오는 일을 수행하던 중, 자신을 추격하던 게리온을 처치했다 에우리스테우스가 부과한 12과업을 마친 헤라클레스는 아르고호 원정대에 합류해 황금 양털을 찾는데 참여하기도 했고, 신들을 도와 기간테스들과의 전쟁에 참여하기도 했다.

헤라클레스는 오이칼리아의 공주 이올레를 사랑하게 되었는데, 궁술에 자신이 있었던 그녀의 아버지 에우리토스 왕은 승리자에게 딸을 주겠다는 조건을 걸고 양궁 대회를 열었다. 이 대회에서 헤라클레스가 승리했지만 에우리토스는 약속을 어기고 딸을 주지 않았다. 이때 에우리토스의 아들인 이피토스는 약속을 지켜야한다며 헤라클레스 편을 들었다 왕의 거짓말에 화가 난 헤라클레스는 장남 이피토스를 제외한 에우리토스와 그의 아들들을 모두 죽이고 이올레를 유괴했다 헤라클레스가 이올레와 결혼하는데 찬성했던 이피토스는 그와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러나 헤라는 다시 헤라클레스를 미치게 해 그로 하여금 이피토스를 성벽 너머로 던져 죽이게 했다. 12과업을 마친 헤라클레스였지만, 이피토스를 죽인 책임과 12과업을 수행하기 전 델포이 신전에서 난동을 부린데 대한 죗값을 치르기 위해 그는 리디아의 여왕 옴팔레에게 노예로 팔려갔다. 옴팔레는 헤라클레스에게 여장 차림으로 바느질과 길쌈을 하도록 했고, 옴팔레는 헤라클레스가 가지고 다니던 사자 가죽을 걸치고 곤봉을 들고 다녔다. 또한 헤라클레스는 말 노릇을 하며 옴팔레 여왕을 태우고 다니기도 했다 그러던 중 헤라클레스와 사랑에 빠진 옴팔레는 그와 결혼해 여러 명의 자식을 낳고 그를 노예 신분에서 풀어준다. 12과업을 수행하던 중 헤라클레스는 칼리돈으로 가서 오이네우스 왕의 딸 데이아네이라를 두고 경쟁자인 강의 신 아켈로스와 경합을 벌였고, 싸움에서 이겨 칼리돈의 공주 데이아네이라를 아내로 맞았다. 그런데 어느날 헤라클레스는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왕의 조카를 죽였고, 그 때문에 칼리돈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오이네우스 왕은 동생을

설득해 헤라클레스의 죄를 사면했으나 헤라클레스는 데이아네이라와 아들 힐루스를 데리고 칼리돈을 떠나 테베로 간다. 강을 건너던 그들 앞에 켄타우로스인 네소스가 데이아네이라를 돕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강을 건너던 그녀를 네소스가 범하려고 하자 헤라클레스는 독사 히드라의 피가 묻은 화살을 쏘아 그를 맞힌다. 독이 퍼져죽기 전에 네소스는 복수하기 위해 히드라의 독이 섞인 자신의 피를 사랑의 미약이라고 속이고 데이아네이라에게 준다. 네소스는 누구든 히드라의 피로 인해 독이 섞인 자신의 피에 닿으면 치명상을 입어 죽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데이아네이라에게 다른 여자들로부터 헤라클레스를 지키고 싶다면 그것을 헤라클레스의 옷에 뿌리라고 조언한다. 데이아네이라는 헤라클레스가 이올레를 사랑해 자신을 멀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의 상의에 네소스의 피를 뿌렸다. 헤라클레스의 하인 리카스가 그녀가 준 상의를 헤라클레스에게 가져가 입히자, 헤라클레스는 피부가 타들어가는 고통을 느낀다. 고통을 참지 못한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신의 사제들에게 나뭇단을 쌓고 자신을 산 채로 회장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그들이 그리하는 것은 살인이라며 주저하자, 헤라클레스는 지나가는 여행객들에게 자신을 산 채로 화장하는 자에게 자신의 곤봉과 독화살을 선물로 주겠다고 약속했다. 지나가던 필록테테스가 헤라클레스의 화장을 돕겠다고 자원했고, 소원을 들어준 대가로 그는 헤라클레스에게 곤봉과 독화살을 선물로 받았다 필록테테스는 단에 불을 붙였고 헤라클레스는 산 채로 화장되었다. 헤라클레스의 화장소식을 들은 데이아네이라는 자책하여 절벽에 몸을 던졌고, 헤라클레스의 여러 아들 중 힐루스가 그의 권리를 상속했다. 헤라클레스는 힐루스에게 이올레와 결혼할 것을 유언했고, 힐루스는 이에 따라 아버지의 애첩이었던 이올레와 결혼했다.

 

 

 

신화에 따르면 헤리클레스가 산채로 화장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데이아네이라가 자책하여 절벽에 몸을 던져죽었다고 되어 있으나, 소포클레스의 작품에서는 데이아네이라가 보낸 독이 묻은 옷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헤라클레스의 소식을 접한 데이아네이라가 자책하여 헤라클레스의 화장에 앞서 자살한다.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 것이 아니라 칼로 자신의 옆구리를 찌르고 칼을 가슴까지 밀어 넣어 자살한다. 소포클레스는 헤라클레스의 죽음에 앞서 데이아네이라가 자살하도록 처리하는 것이 더 극적이라고 판단해 순서를 바꾼 것이다. 데이아네이라의 사연과 자살 사실을 알지 못하는 헤라클레스가 그녀를 격렬하게 비난하고 그녀에 대한 복수심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소포클레스의 <트라키스의 여인들>에서는 헤라클레스가 오이칼리아의 왕 에우리토스를 죽이고 전리품인 이올레 공주를 데이아네이라가 살고 있는 집으로 보내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젊고 아름다운 이올레가 헤라클레스의 사랑을 독차지하리라는 불안감에 데이아네이라는 네소스가 준 사랑의 미약을 써서 남편의 사랑을 묶어두려고 한다. 그러나 데이아네이라의 예상과는 달리 이 미약은 헤라클레스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헤라클레스가 쏜 독화살에 맞아 죽은 네소스의 간계로 인해 데이아네이라가 치명적인 독이 용해된 죽은 네소스의 피를 사랑의 미약으로 잘못 알고 헤라클레스의 옷에 발랐기 때문이다.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된 데이아네이라는 자살하고 헤라클레스는 고통스럽게 죽어 간다.

 

 

 

이 작품에서 주시할 점은 인간의 고통이다. 죽음보다 더 두려운 고통이다. 소포클레스 극작술의 정수를 보는 것 같은 표현이 종막에 이어진다.

뼈저린 고통을 참지 못한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에게 천둥번개를 보내 자신의 머리를 내려치라고 절규하고, 죽음보다 더 참기 힘든 고통의 절규가 하늘을 울린다. 자신을 이런 비참한 상황으로 몰아넣은 데이아네이라를 데려오라는 헤라클레스의 발에 힐루스는 어머니를 변호한다. 그는 이올레를 본 데이아네이라가 남편의 사랑을 얻으려고 네소스에게 속아 독이 용해된 그의 피를 사랑의 미약으로 생각하고 실수하는 비람에 이 지경에 이른 것이라고 밝힌다. 헤라클레스는 힐루스에게 자신을 산 채로 화장해 이 고통을 끝내 달라고 애원한다. 힐루스가 이를 거부하지만, 계속되는 헤라클레스의 종용에 따라 그리하겠다고 약속한다. 헤라클레스의 말처럼 죽음은 헤라클레스에게 고통으로부터의 휴식이다

 

이올레에 대한 정념의 불길은 헤라클레스뿐만 아니라 데이아네이라까지도 고통과 질투의 불길로 타오르게 만든다. 그 정념은 데이아네이라를 자살로 이끌고, 마침내 헤라클레스 자신의 영혼과 육신마저 태우게 만든다. 잘린 히드라의 목이 다시 두 개로 생겨나듯이 인간의 정념 또한 누르고 눌러도 다시 생겨나는 원초적 갈망이다. 헤라클레스는 히드라의 독으로 수많은 괴물들을 제압했지만, 정작 그 자신은 불타오르는 정념을 제압하지 못하고 히드라의 독이 용해된 네소스의 피로 인해 죽음을 맞는다. 헤라클레스의 영웅적인 삶이 보여주는 아이러니다. 그러므로 정념은 고통이며, 이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으로 이끈 모티프다. 살아남아 이들의 죽음을 바라보는 힐루스를 위시한 사람들에게도 삶은 고통이다. 그러나 힐루스의 최종적인 언급처럼 이 모든 것이 제우스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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