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바람난 영감을 찾아 황량한 밤길을 헤맸던 얼금뱅이 ‘꼭두각시’.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며 영감을 찾아온 그녀에게 이쁜 젊은 각시와 살림을 차리고 알콩달콩 살던 영감은 쪽박하나 내주며 그를 쫓아버렸다. 2005년 겨울. 이젠 늙고 무능한 남편이 헤어진 아내 ‘또또각시’를 찾아 밤길을 헤맨다. 또또각시는 젊은 새애인 ‘유능한 옵바’와 좋아 지낸다.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는 그녀 주위에는 늘 남자들이 넘쳐나지만 가수를 꿈꾸는 그녀의 인생은 헛발질의 연속이다.
극단 까치동(대표 전춘근)이 오랜만에 성인인형극을 들고 나왔다. ‘각시 야유기(夜游記)’. 지난 1999년 ‘어른을 위한 인형극’이라는 표제를 내세워 처음 선보였던 작품을 시대변화에 맞춰 대폭 손질했다. 이혼이 늘고 있고, 용돈벌이를 위해 원조교제에 나서는 청소년이 있는가 하면, 자아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세태를 반영했다. 주인공 또또각시 역시 세상살이에 부딪치고 방황하다 제자리를 찾는, 절망과 희망사이를 부표처럼 떠도는 오늘 우리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곽병창씨가 2005년도 세태를 담아 극본을 손질했으며, 인형과 배우 음악 등이 모두 새로워졌다.
정경선씨는 “각시야유기는 배우와 인형, 음악, 마임 등이 만나는 새로운 형식의 공연물”이라고 소개하고 “가치관이 흔들리고 희망 찾기가 힘들어 보이는 세태에 소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황혼이혼의 주인공인 각시(꼭두), 세상 유람을 나선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의 밤거리. 그리고 한낮의 권태로운 일상 속에서의 남녀들-. 그녀는 자기와 헤어진 서방(박가)를 찾아 유랑하지만 보일 듯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그의 모습. 그 사이로 여자들과 남자들이 뒤엉킨 어지러운 현실의 모습만 자꾸 겹친다. 가끔 행복했던 한 시절을 회상하기도 하고 초록머리 소녀의 꿈에 기대어 상상 속의 여성 공화국으로 날아가 보기도 한다. 여성의 출산을 신성하게 여기는 나라에서의 화려한 출산예식과 그 이후의 만족스런 삶을 상상하다가 이내 현실로 돌아오는 각시. 하지만 그녀가 만나는 세상은 여전히, 온통 뒤틀려 있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정욕을 포기하지 않는 남편, 끊임없이 달리고 있는 폭주족과 머리를 형형색색으로 물들인 소녀들, 여전히 물에 빠져 자살하고 있는 임신한 여자아이, 남자답기 위해 목숨을 거는 어린 깡패들, 집 나간 아내를 기다리는 취객도 모두 그대로일 뿐.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각시는 보일 듯 보이지 않는 희망을 찾아 또 어딘가를 향해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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