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박완서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clint 2016. 5. 31. 11:18

 

 

 

모노드라마로 1994 년 강부자가 출연함, '12년  손숙 출연

      

 

 

제25회  동인문학상 수상 작품으로 《상상》 1993년 가을호에 발표되었다. 동서간의 전화를 통해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을 표현한 작품이다. 일인 모노드라마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전화를 건 형님 쪽의 말은 단 한마디도 드러나지 않고 말하는 화자의 일방적인 대화만이 나온다. 소설 전반부의 상황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다. 전화를 건 것은 언제나 손아래 동서였다. 평소에 도통 말수라고는 없는 근엄한 형님이 전화를 건 이유는 해마다 제삿날을 귀띔해 준 동서를 믿다가 지나쳐 버린 그저께의 증조모 제사 때문이다. 이참에 이대봉사로 제사를 줄여버리는 게 좋지 않느냐, 그런데 이제 내 기억력이 예전같지 않아 자기집 전화번호도 까먹고 봉변당한 이야기, 그 일로 걱정이 된 딸들의 입을 통해 화자가 7년 전 아들을 잃은 어머니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화자는 먹고 살 만큼의 연금을 남겨 준 남편 덕에 의식주 걱정하지 않고 있으며, 두 딸들도 제 앞가름은 충분히 한다. 그녀는 죽은 아들로 인해 친척, 친구들의 결혼식에서 주변을 불편하게 하는 존재이며 아들 또래의 출세에 배아파하는 나약한 엄마가 아니다. 민가협에서 의식화된 엄마이다. 그렇다고 특별대접 받는 것도 싫다. 형님 아들이 잘난 것은 인정하지만 글쎄 80년대 학번이 공부만 했다는 것은 인간성이 의심스럽다.  박완서 소설의 주인공이 통상 그렇듯 이 소설 역시 중산층이다. 1980년대에 운동권 시위 도중 쇠파이프를 맞아 죽은 아들의 어머니가 민가협이라는 단체에 가입하면서 의식이 바뀌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여자끼리의 전화를 매개로 한, 가장 저급으로 인식되는 전달매체인 수다를 통해 무거운 주제를 감칠나게 다룬 작가의 솜씨가 일급이다.       
이 소설은 후반부까지 화자가 지금껏 추구해 왔던 중산층들의 가치가 아들의 죽음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을 낱낱이 밝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화자는 예전에 중요한 것이 지금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런 화자가 결국은 은하계의 광대무변함을 주문삼아 자신의 고통을 무력화시키는 노력도 소용없었다는 것을 밝히는 맨 마지막의 통곡이 이 작품의 요지이다.       
백치인 아들을 간병하는 한 어머니를 보며 비록 식물인간일 망정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생명의 실체를 부러워하는 대목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화자는 또하나의 위선을 벗어낸다. 하루 아침에 아들을 잃고 민주투사가 된 장한 어머니의 모습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길 수 없는 슬픔을 이기기 위해 기를 쓰고 꾸민 자신의 모습이다.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이 세상의 독함에 대해 작가는 고발하고 있다.
 
      

 

(줄거리)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대학생 아들을 잃고 친구와 가족과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나’는 손위 동서와 통화를 하면서 아들에 걸었던 자신의 삶, 아들을 잊기 위해 몸부림치는 현실을 주절주절 늘어놓는다. 아들에게서 헤어나지 못하는 ‘나’를 위해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와 동창의 집으로 이끈다. 동창은 교통사고로 뇌와 척추를 다치고 하반신이 마비된 데다 치매까지 겪는 아들과 단 둘이 살고 있다. 치료비로 가산을 탕진한 지 오래됐다. 동창은 ‘나’가 보는 앞에서 아들에게 ‘아이구 이 웬수, 저놈의 대천지 웬수’라고 부르고, ‘나’가 사간 깡통 파인애플을 아들의 입에 넣어주며 ‘이 웬수야, 어서 처먹고 뒈져라’라고 말한다. 동창은 아들을 공기 굴리듯 굴린다. 욕창이 생길까봐 하루에도 여러 번 하는 일이란다. ‘아이고, 웬수 무겁기도 해라. 천근이야, 천근. 니가 내 앞에서 뒈져야지 내가 널 두고 뒈져봐라, 나도 눈을 못 감겠지만 니 신세가 뭐가 되나.’ 악담도 지나치다. 그런데 환자를 도우려고 ‘나’가 손을 내밀자 이상한 괴성을 지른다. 갑자기 난폭해져 미친 듯이 군다. 그러자 동창은 ‘이 웬수 덩어리가 또 효도하네’하며 ‘나’가 손을 대지 못하게 한다. 악만 남은 동창의 얼굴에 씩씩하고도 부드러운 자애를 ‘나’는 비로소 알게 된다.
 
      

 

박완서  
 - 1931년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났다. 숙명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하였으나 한국전쟁으로 학업 중단했다. 1970년「여성동아」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작품으로는 단편집<엄마의 말뚝>,<꽃을 찾아서>,<저문 날의 삽화>,<한 말씀만 하소서>,<너무도 쓸쓸한 당신>,<친절한 복희씨>등이 있고, 장편소설<휘청거리는 오후>,<서 있는 여자>,<그해 겨울은 따뜻했네>,<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미망>,<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아주 오래된 농담>등이 있다. 또한 동화집<부숭이의 땅힘><보시니 참 좋았다>등과 수필집<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여자와 남자가 있는 풍경><살아있는 날의 소망><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어른노릇 사람노릇><두부>등이 있다. 한국문학작가상(1980), 이상문학상(1981), 대한민국문학상(1990), 이산문학상(1991), 동인문학상(1994), 대산문학상(1997), 만해문학상(1999)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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