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하륜 '나비야 저 청산에'

clint 2016. 5. 31. 11:30

 

 

 

- 이하륜은 역사적 인물이나 민속적 소재를 심리주의적 수법으로 드러내는 것을 희곡의 주된 특징으로 하며, 주로 역사적 인물에서 소재를 끌어오지만 그 소재는 역사적 사건과는 전혀 다른 각도와 상황에서 전개된다.
이 작품은 조명효과로 단순한 사건전개에 변화를 부여해 주는 중요한 오브제의 기능을 제한다면 특별한 무대 세트가 필요없고 따로 자연적인 배경을 설정할 필요도 없다. 무대 자체가 순수한 공간으로서의 상징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무대는 우주, 인간의  정신세계, 혼돈된 세상세계를 상징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를 위해 치장할 필요는 없다.
작품의 도입부는 꿈과 현실을 구분하는 속인들의 어리석음과 피차의 구별을 초월한 도인의 세계를 대조시킨 장주 제물론의 호접몽의 대목이 연산의 꿈과 연관되어 언급됨으로 해서  장주의 꿈과 연산의 꿈을 대비시킨다. 연산과 녹수, 그리고 느닷없이 등장한 장주와 그들의 관계를 성립시켜주는 '나비'는 인간의 마음을 상징한 것으로, 이하륜은 인간 내면에 깃든 여러 인간성을 나비처럼 자유롭게 탐구하려 했다. 여러 인간성이 형상화된 이미지들은 우리 내면세계를 떠돌면서 모방 충동을 느끼도록 유혹하는데, 그 가운데는 선과 악, 사랑과 미움, 삶과 죽음 등이 두 얼굴의 이미지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인물 설정에서도 현실적인 체험보다는 정신적인 체험이 중시되어 있다. 역사적 사건은 없고 한 인물의 갈등만 두드러지게 나타날 뿐이다. 연산이 나오긴 하지만 역사적 이미지만 빌려왔을 뿐이고, 더구나 '장주'는 이 작품의 사상성을 드러내기 위해 설정된 인물이면서 연산이 모방하고 싶어하는 인물이다. 어떤 의미에서 장주는 연산의 무의식도 되고 이성도 된다. 녹수는 연산만 따라 다니는 인물이면서 본능을 표상한다. 이러한 인물의 관계는 이 작품이 심리주의적인 경향을 띠게 만든다. 절대 권력의 군주조차도 혼돈한 세계에서는 어린 아이같이 배고픔을 느끼는 본연의 자아일 뿐이라는 것, 어전을 지켜야만 하는 세속의 번잡함을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의 존재로서의 연산일 뿐이다. 따라서 그는 혼돈의 세계에서 질서를 찾기 위한 논리적 세계의 주체이지만 그조차도 장주를 따라서 나비처럼 살고 싶은 순수한 본성에 지나지 않는다.
연산과 녹수의 세계관의 차이를 살펴보면, 나비를 책장 속에 끼워둠으로 해서 영원히 소유할 수 있다고 새악하는 녹수는 존재의 본질을 현상으로만 파악하는 일면적인 사고의 주체이다. 그런 반면 연산은 그의 죽음이 곧 그를 저곳(그가 본래 있던 곳)으로 돌려 주고만 행위로 파악하여, 그의 본질은 현상을 초월한 내면의 진실에 있는 것으로 인식한다. 그의 인식이 이에 이르렀을 때 연산은 장주의 변신을 목격한다. 허물을 벗고 나비로 화하는 아름다운 변신, 그것은 재생이요 부활의 순간이다. 그는 자신을 죽임으로써 다른, 더 큰, 자유를 획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연산이 원하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은 사랑이다. 그가 나비가 될 수 있는 길은 스스로 나비를 부정하는 것, 나비를 죽여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사랑은 대상을 획득하는  것으로서 이루어지는 세속의 사랑이 아니라, 나를 부정하는 것, 나를 대상에 완전히 맡겨 버리는 것으로서 이루어지는 초월의 사랑이 된다. 녹수는 나비를 죽임으로써 자신마저 죽음에 이르지만 졀국 연산은 이러한 사랑을 획득함으로써 스스로 나비로의 화려한 부활을 이룩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추구하는 사랑은 이 혼돈된 세계에서의 구제와 보상의 의미로서보다는 인간 존재의 본질과 관련된 사랑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하륜은 이 작품을 통해 죽음이 우주 질서의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프롤로그] 부분부터 장주의 죽음이 나오는 것은 철학적 문제 해결을 위한 연역법적 추리를 해 나가겠다는 의도를 보인다. 그러나 어둡지 않고 죽음이 갈등과 번민의 인간 세계에서 우주의 질서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한다고 생각한다. 죽음 제재는 어디까지나 인간 존재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득도의 과정이다. 죽음 제재는 이 작품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죽음 이미지는 차안에서 피안으로 넘어가는 이미지를 제공하면서 세상에서의 물욕을 벗어나 참된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축은 욕망으로서의 성에서 본질로서의 성으로 변용을 꾀했다는 점이다. 제1막 2장에서는 연산이 녹수로 하여금 장주를 유혹하게 만들었는데, 제2막 1장에 가서는 녹수의 유혹에 자제하던 장주가 오히려 녹수를 향하여 달려드는 내용이다. 이것은 본능적 욕망으로서의 성이 본질로서의 성으로 변용되는 데 의의가 있다. 녹수의 유혹은 연산이 시켜서 된 가식적이요, 본능적인 것이라면, 장주의 녹수에 대한 마음은 우주의 질서로서의 성을 말하는 것이다. 더구나 마지막 부분에서의 장주께서 일국의 왕인 한!이란 대목은 장주가 연산의 초자아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것은 개인 정신세계로 따지면 본능적인 욕망에서 초자아로서의 정신 질서를 모색하는 변용의 과정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어디까지나 관념적인 데 불과하고 산 체험이 살아 있지 않다.

 

 

 

 


‘구도자’로 그려낸 황진이의 삶 황진이의 삶을 재조명한 총체극 ‘나비야 저 청산에’가 12일부터 14일까지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국악인 김덕수씨가 이끄는 ‘사물놀이 한울림’의 기획공연. 이 작품은 기생으로만 알려져 왔던 황진이의 파란만장한 삶의 이면에 숨어있는 구도자로서의 모습을 부각시켰다. 신분의 벽을 넘어서려는 ‘자아 실현의 몸부림’은 현실세계의 한계에 부딪쳐 절망을 낳고, 곧 당시 주류 사상이었던 유·불·선의 사상 속에서 해답을 찾으려는 방황으로 나타났다는 것이 제작진이 찾아낸 황진이의 실체.이 새로운 해석 만큼이나 극의 형식도 파격적이다. 한국무용과 창작무용, 전통음악과 현대적 퓨전음악, 그리고 연극적 드라마를 결합했다. 전통 연희에서 갈라져 나온 현대의 장르를 총체극이라는 형식으로 합체시켜 놓은 것이다. 여기에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 내용의 혼용도 가미했다. 무대공연의 ‘고수’들이 의기투합했다. 연극 ‘피고지고 피고지고’ 등을 연출한 강영걸씨와 음악을 맡은 김덕수씨가 극의 큰 가닥을 잡았다. 또 해외 활동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던 무용가 손정아씨가 주연 황진이 역과 안무를 맡았고 방송작가 김영무씨가 극본을 썼다. 제작진의 면면이 일단 극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놓았다. 이 작품은 세계무대를 겨냥한다. 극이 표현하는 희로애락이 보편성을 띠는데 역점을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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