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오태석 '용호상박'

clint 2015. 11. 22. 13:49

 

 

 

경북 포항시 강사리에 전해 오는 범굿에서 모티브를 따 와, 지금도 한국인의 삶에 깊이 관여하고 주재하는 전통 신앙의 실상을 펼쳐 놓았다. 온갖 사설과 재담이 두둥실 솟아오르면, 오방색으로 오밀조밀 꾸며낸 볼거리들이 무대를 공그린다
'용호상박'은 범굿을 준비하는 마을에 한동안 사라졌던 호랑이가 등장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소동을 그리고 있다. 사람들은 한동안 나타나지 않는 호랑이를 상징적인 존재로 간주하고 범굿 역시 요식적인 통과의례쯤으로 치부하고 있었다. 호랑이에게 돌아갈 소머리는 바다 용왕을 위한 제물로 돌려진 지 오래다. 그러던 와중에 호랑이가 나타나 자신의 몫(소머리)을 요구하면서 기존의 마을 질서는 일종의 ‘즐거운 혼란’에 빠진다. ‘즐겁다’는 것은 호랑이가 나타나는 바람에 돈 버는 장사가 불같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용호상박」은 호랑이를 재등장시켜 그를 가시화했다는 점에서는 「내 사랑 DMZ」의 플랜을 따랐다. 부연하자면 호랑이의 움직임은 최근 공연되었던 「자전거」의 ‘소‘의 움직임과 동일했다. 「자전거」를 보면 윤서기가 질주하는 한우와 충돌할 뻔한 장면이 있는데, 그 때 소들은 머리와 몸통 그리고 꼬리를 든 3~4명의 코러스로 표현되었다. 코러스들은 음악에 맞추어 무대를 관통하는 움직임을 선보였다.

 

 

 

 

 

줄거리

대를 이어 범굿을 주재해온 형 팔룡은 6년 전 아내가 죽자 동생 하룡에게 넘겼던 범굿을 올해부터는 같이 치르자고 제안하는데 하룡처는 이런 시아주버니의 욕심이 영 불만스럽기만 한다. 동네 이장까지 나서 동생에게만 굿을 맡기겠다고 하자 하룡은 칼로 자기 손등을 그어 자해까지 시도하면서 형과 함께 굿판을 벌인다. 그런데 굿이 끝난 후 대숲이 흔들리더니 범어른이 팔룡 앞에 나타난다. 지난 백 년 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범굿의 주인 ''이 등장해 소머리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올해도 당연히 범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 여겨 용왕님의 성미를 가라앉히려고 소머리를 부탁한 어부들에게 팔기로 약속한 상태. 심통이 난 범어른은 바다에 바람을 일으키고 소머리를 주지 않으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겠다고 협박한다. 범의 출물로 소머리를 두고 장사하던 동생 하룡과 형 팔룡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고 급기야 아우가 어부들 손에 수장당할 위기에 처하자 형이 아우를 구하려고 목숨을 내놓는다.

 

 

 

 

 

「용호상박」의 호랑이도 3~4명의 코러스가 머리와 몸통 그리고 꼬리를 들고 동시에 움직이는 형태로 형상화되었다. ‘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선두에 산신령 형상의 이호재가 배치된 점이다. 이호재는 산신령, 즉 호랑이의 영혼으로 등장하여, 코믹하고도 재치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근래의 연기 가운데 가장 적절하면서도 힘 있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이 작품에서 호랑이는 구체적 형상물로 자주 등장하며 가시적인 오브제와 배우로 표현되었다. 이것이 여우의 이야기이면서 여우의 비중이 낮았던 「여우와 사랑을」과 다소 달라진 점이다(이 작품에 여우가 등장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면서 범굿을 지내는 마을 사람들의 내부 분란과, 소머리를 둘러싼 어부들과의 외부 대립을 표현했다. 오태석의 희곡/연극 속에서 ‘시골 마을’은 분란에 휩싸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령 「물보라」가 그러하고 「백마강 달밤에」가 그러한데, 「용호상박」 역시 그러한 패턴을 따르고 있다.

 

 

 

 

 

 

그 다음도 유사하다. 굿을 통해 그러한 분란을 잠재운다는 것이다. 「용호상박」의 범굿이 그러하다. 범굿은 호환의 위협과 두려움을 해결하고, 삶의 평온함을 기원하기 위한 마을 공동의 제례의식이다. 즉 물리적, 정신적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마을의 분란과 분열이라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장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작품들이 굿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는 달리, 이 작품에서는 굿 이후에 문제들이 이어지는 차이점도 나타난다. 호랑이가 소머리를 탐내서 계속 마을에 남게 되고, 그로 인해 인자했던 아우의 심성이 타락하고, 형과 아우의 다툼이 벌어진다는 설정이 그러하다. 또 해신을 섬기는 어부들이 소머리를 재요구하면서 어촌 마을과 갈등이 재개된다는 점도 그러하다. 「용호상박」의 장점은 호랑이의 천진난만한 등장과 이를 통해 예상되는 마을 사람들의 감정이다. 천진난만한 구석이 적지 않은 이러한 설정은 현실에서의 다툼과, 인간의 탐욕을 동화적으로 형상화했다. 보는 이들을 웃음 짓게 했고, 그러면서도 우리 마음속에서 사라진 오래된 친구를 다시 돌아보게 했다. 자연이 그러하듯, 한번 파괴되면 좀처럼 살려낼 수 없는 귀중한 것 하나를 알려 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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