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마르셀 빠뇰 '토파즈'

clint 2015. 11. 16. 12:30

 

 

 

 

 

희극은 1928년 파리의 바리에테 극장에서 초연되어 대성공올 거둔 작품이다. 십여 만 회의 공연과 이후 30년 후에도 그 재미와 인기가 떨어지지 않았다는 그의 출세작이며 또 걸작의 하나이다. 주인공 토파즈는 어느 대도시에 있는 뮈슈 학원의 교사이다. 선량하고 정직하고 순진한 토파즈는 자기의 일에 만족하고, 가르치는 일에 보람을 느끼는 모범적인 교사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돈 많은 귀부인이 찾아와 자기 아들 (토파즈 선생이 가르치는)의 성적이 나쁘니 이를 고쳐 달라는 부당한 요청을 한다. 그러나 정직한 토파즈는 이를 거절한다. 이것을 본 뮈슈 원장은 화가나 자기 딸에게 구혼을 했다는 표면상의 이유로 토파즈를 학원에서 쫓아 낸다. 해고된 토파즈는 쉬지 쿠루투와라는 미모의 여인 집에 간다. 왜냐하면 토파즈는 이 부인의 조카에게 그 전부터 쭉 과외수업을 시켜 왔으며 갑자기 학원에서 내쫓기자 생계를 위해 과외수업 시간올 좀 늘려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미모의 여인은 시 의원이며 악덕 정상(政商) 모리배인 카스텔-베낙과 함께 한 유령 회사를 차리고 있었다. 이 유령 회사는 시 의원 카스텔-베낙이 시의 용품(청소차, 자동 청소기 등)을 사들일 예산을 시 의회에 통과시키면 자기 대신 이름만을 빌려 주는 인물을 통하여 이 물건들올 스스로 납품하는 방식으로 돈을 벌어 온 것이다. 그런데 이날 마침 한 명의 대여자가 협력을 거절하여 새로운 명의의 대여자가 긴급히 필요하게 된다. 사회 물정에 어둡고 생소한 토파즈는 마침 쉬지 부인의 소개와 권고로 서명만 하면 된다는 말을 믿고, 이 사업에 뛰어들어 총지배인이 된다. 토파즈는 카스텔-베낙이 하라는 대로 아무 문서에나 서명을 하면 되었다. 그러나 전(前)명의 대리인에 게서 이 사업이 얼마나 부도덕하고 위험한 것을 안 토파즈는 여기서 벗어나려고 고민하고 별의별 생각을 거듭하나 번번이 쉬지 부인의 매력과 설득에 항복하고 만다. 얼마 동안 후회와 공포에 싸여 고민한다. 옛날 그가 교실에서 가르치던 훌륭한 도덕들이 그로 하여금 잠을 자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차츰 이 회사의 내막과 사회의 이면을 쓰라리게 경험한 토파즈는 자기를 농락한 카스텔 베낙과 잘못된 사회에 복수하기 위하여 변신하여, 스스로 부정직하고 부도덕한 인물이 된다. 그리고는 사회의 모든 부정과 결함을 이용하여 돈을 벌고 권력올 쥐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렇게 되자 세상만사는 그에게 행운과 행복을 가져다 준다. 그가 교사 시절 구애하였으나 거절했던 원장의 딸이 자기를 찾아와 구혼하고, 그가 양심적인 교직 생활 때 그렇게도 원하였으나 얻올 수 없었던 교육 훈장도 하나의 선물로 받게 되며, 쉬지 부인도 그의 정부가 되려 한다. 이 극은 아주 암담한 장면으로 끝난다. 그것은 토파즈의 학교 시절 동료였던 착한 타미즈, 이 절대로 타락하지 않을 것 같았던 타미즈도 결국 돈의 유혹 아래 쓰러지려고 하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이 연극이 대성공을 거둔 것은 극 자체가 가진 소재, 구성, 대화 등에 있음은 물론이나 또한 당시의 시대 상황에 힘입었음도 부인할 수 없다. 이 극이 상연된 시기는 프랑스에 자본주의가 전성을 이루고 있을 때이다. 따라서 사회에는 금전 만능의 사조가 상하를 휩쓸어 모든 사람이 돈올 찾아 광분하던 시대였다. 돈을 얻기 위해서는 도덕이니 법률이니 양심이니 사회적 정의 등은 여지없이 유린되고 부패와 부정, 사기와 배임 등이 거의 다반사로 일어나던 때였다. 이러한 잘못된 사회 풍조를 이용하여 잘된 자는 이 세상을 즐기고 실패한 자는 유린되던 사회였다. 마르셀 파놀은, 바로 이러한 사회를 〈토파즈〉를 통해서 풍자와 야유와 개그로 공격한 것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정직 한 토파즈는 이러한 잘못된 사회에서 여지없이 유린되고 농락 당하다가 끝내는 스스로 부정직한 인간이 되어 버린다. 그리하여 〈토파즈〉는 잘못된 사회를 이용하여 승자가 된다는 가장 통렬한 사회 비판인 것이다.

 

 

 

 

 

마르셀 빠뇰
프랑스의 극작가 겸 영화제작자 겸 영화감독.
극작가로서<토파즈>로 성공하였고, 이 후<마리우스>를 포함한 풍자희극 3부작을 내놓았다. 영화제작자로서 활동하며<빵집 마누라>,<우물 파는 인부의 딸>등의 작품을 만들었다. 1895년 남프랑스 오베르뉴 출생.
소년기를 마르세유 항구에서 보내고, 대학 문과를 졸업한 후 중학교 교사로 있다가 1925년 P.니브와와 합작한 희곡<영광을 파는 사람들>로 극단에 등장하였다. 1926년 파우스트처럼 청춘을 회고하는 노박사의 고뇌를 다룬<재즈>(1926)를 집필한 후, <토파즈>(1928)로 성공하였다. 마르세유 항구의 카페를 무대로 한 풍자희극 3부작<마리우스>(1929), <파니>(1931), <세자르>(1937)를 내놓아 남프랑스인으로서의 특성을 유감 없이 발휘하였다. 그러나 1930년경부터 차차 영화로 전향하기 시작하여 영화 <세자르>는 희곡보다 앞서 1936년에 제작하였고 주로 영화제작자로서 <빵집 마누라>(1939), <우물 파는 인부의 딸>(1940) 등을 제작하였다. 1946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되었다.


‘연극 같은 영화’를 만든 감독으로 종종 비난받고 있는 마르셀 파뇰은 영화계에서 감독보다는 극작가로 먼저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1933년 자신의 독립프로덕션 회사를 차림으로써 그는 영화제작의 모든 면을 컨트롤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프랑스 영화감독의 하나가 됐으며,사운드가 도래했던 프랑스영화계에 유성영화를 발전시키고 대중의 관심을 끄는 데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마르세유에서 영어교사로 시작하여, 마르셀 파뇰은 1920년대에 몇편의 인기있는 희곡과 소설을 발표한 후 영화잡지를 창간해 자신의 에너지를 영화에 바치기 시작한다. 특히 ‘파뇰 삼부작’이라고 불리는 <마리우스>(1931),<화니>(1932),<세자르>(1936)는 모두 마르세유에서의 삶을 향수어린 시선으로 그려낸 희곡들이었고, 영화로도 만들어져 매우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들은 세팅과 대화의 세부까지 정성을 기울인 프랑스 남부지방의 악센트가 그대로 살아 있는 영화였고, 여기에 단순한 도덕성과 소박한 센티멘털리즘이 가미돼 사람들에게 유성영화도 볼 만한 것이란 인식을 확고히 심어주는 시금석이 됐다. 이후 그는 극작가이며 저널리스트에 시인, 감독으로 만족지 않고 자신의 스튜디오와 극장을 소유하는 정력적인 활동가의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다시 한번<빵집 마누라>(1938),<우물파는 남자의 딸>(1940)로 공전의 히트를 하며, 미다스의 손을 과시하게 된다. 파뇰은 때로 독자적인 제작자의 역할도 수행했는데 장 르누아르의<토니>(1935)가 가장 유명하다. 그러나 이후 파뇰의 활동은 서서히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1952년 감독한<마농의 샘>(1953)을 기점으로<내 풍차에서 온 편지>(1954) 단 두편만을 감독했을 뿐이다. 파뇰은 1946년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으로 명망을 누렸고, 그의 비문에는 자신의 영화<고동>(1938)의 한 구절이 새겨져 있다. ‘너무나 울어야 할 이유가 많았던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 남자’ 마르셀 파뇰은 그 자신 스스로가 마르세유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순박한 시대에 지역적 특성을 체현한 영화작가로 인식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아직도 프랑스영화계에 독자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1986년에는<마농의 샘>이 클로드 베리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됐고 그의 자전적인 소설을 바탕으로<마르셀의 여름>(1990)과<나의 어머니의 성>(1990)이 영화화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