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예이츠 '캐서린 너 훌러한'

clint 2015. 11. 16. 10:51

 

 

 

 

 

예이츠의 초기 단막극으로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와 리얼리티가 어울려진 작품이다.
큰아들의 결혼전날 부부는 며느리를 맞을 준비로 기쁘기만하다. 게다가 지참금까지 가지고 오기에..
돈과 혼수를 가지고 온 아들도 기쁘기는 마찬가지이고 그런 아들이 대견하다.
그런데 창밖에 누군가가 와서 기웃거리고 결혼을 알고 찾은 배고픈 노파인줄 알고 집으로 불러들인다.
다소 괴기스럽기만한 이 노파는 알듯 모를듯한 얘기를 하고 노래를 부르는데...
돈을 쥐어줘서 내 보내려하나 아들은 그런 노파에 현혹되어 내일 결혼할 신부도 몰라볼 지경이다.
결국 아들은 이 노인을 따라 동네 청년들과 빼를 타러 떠나는데... 신부의 눈에 비친 이 노파는 어린소녀였다.

 

 

 

아일랜드의 위대한 대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1막 희곡<캐슬린 니 훌리한>이다. 정확하게는 예이츠와 더불어 아일랜드 신화를 정리하고, 아일랜드 민족문예운동을 이끈 레이디 그레고리와의 합작이다.
캐슬린 니 훌리한(훌리한의 딸 캐슬린)은 아일랜드 민족주의 문학에서 등장하는 일종의 초자연적인 노파이다.
특히 예이츠의 이 희곡에서는 당시 억압된 아일랜드를 상징한다. 예이츠는 캐슬린 니 훌리한이 큰 집과 네 개의 초원을 잃었다고 설명하면서, 아일랜드의 억압을 상징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네 개의 초원: 아일랜드 4 지방, 얼스터, 렌스터, 코노트, 먼스터)
희곡의 시대 자체는 1798년 영국을 상대로 일어났다 실패한 아일랜드 봉기를 배경을 하고 있다.
줄거리 자체는 워낙 간단합니다. 희곡 자체가 1막 희곡이고, 기껏해야 10쪽 내외니까요.
결혼식을 앞둔 집안에 방랑하는 노파 캐슬린 니 훌리한이 찾아오고, 캐슬린은 잃어버린 땅을 찾기 위하여,
결혼식을 앞둔 젊은이를 데려가고자 하고, 결국 애국심에 불타는 젊은이는 그녀를 따라간다.
딱 읽어도, 굉장히 아일랜드 독립을 열망하는 예이츠를 느낄 수 있는 희곡이다.
실제 뒤에 해설에서도 예이츠의 희곡 중 가장 아일랜드 독립희망적인 희곡이라고 써져있다.
비록 실제 역사 속의 아일랜드인들의 독립을 위한 봉기는 실패로 끝났지만, 예이츠는 이들의 정신은 영원히 남아있으며, 그러므로 아일랜드의 자주독립을 소망한다, 정도의 주제를 이 희곡에서 드러내고 있다.
실제 마지막 캐슬린의 노래에서도 이와 같은 면이 나타나고 있고요. 애당초 예이츠의 예술 덕분에 이러한 봉기는 불멸로 남겠죠.<그들은 영원토록 기억되리라. 그들은 영원히 살아가리라 그들은 영원히 말하리라 사람들은 영원히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리라>캐슬린 니 훌리한이 처음에는 방랑하는 초라한 노파의 모습으로 등장했다가, 마지막에 열렬한 젊은이를 이끌고 여왕처럼 위퐁당당하게 걷는 소녀의 모습으로 퇴장하는 모습을 보면 의미심장하가. 시인인 예이츠지만, 그렇게 전체적으로 시적인 편은 아니다.

 

 

 

이 작품은 1902년 4월 2일 아일랜드 국립연극협회에 의해 초연되었다. 이 공연에서 모드 곤은 캐슬린으로 출연하였는데, 예이츠는 그녀의 연기를 두고 '그녀의 큰 키는 인간의 나약함으로 떨어진 신성한 존재' 의 모습을 보는 듯했고, 조셉 홀러웨이는 그녀가 '소름끼치는 사실주의'를 연기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작품의 영감은 꿈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예이츠는 '드라마적 운율의 고매한 창에서 내려올 수가 없다'는 것을 느끼고, 그레고리 백작부인에게 '농민적 언어'의 도움을 구했다. 아직까지도 이 작품에 얼마만큼
그레고리 백작부인이 참여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제임스 페티카가 편집한 초고에서 캐슬린이 길란의 오두막에 도착한 직후의 주석에는 '이 모든 것은 내가 썼음. 이라는 표시가 붙어 있고, 그 대본의 나머지는 연필로 '이 부분은' 이라고 쓰여 있다고 했다. 캐슬린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의 사투리는 그레고리 백작부인이 이후 그녀의 다른 농촌 희극에서 완성한 '킬타르탄' 스타일로, 이 작품은 예이츠와의 긴밀한 합작품일 뿐만 아니라 그레고리 백작부인의 독립적 창작의 열매로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