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예이츠 '매의 우물가에서'

clint 2015. 11. 16. 10:44

 

 

 

 

 

1916년 4월 1일과 4일에 런던에서 이 작품의 초연을 보고 난 후, 예이츠는 그레고리 백작부인에게 '형식은 하나의 발견이고, 춤과 마스크는 훌륭하다'며 흥분에 찬 편지를 보내었다. 이 당시 예이츠는 '발견'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곤 했는데, 이 말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다. 관객들은 춤, 노래, 마스크, 제의, 그리고 무대와 디자인에 있어서 철저히 형식화된 혁명적인 무용극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은 동시에 관객들로 하여금 그들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발견의 과정을 거치게 하고, 드라마를 통하여 경험을 하며 개인의 깊이에 대하여 생각하게끔 만든다.
에즈라 파운드가 예이츠에게 일본의 노극을 소개한 이래, 예이츠는 노의 형식이 가지는 창조적 가능성에 큰 영감을 받았다. 파운드가 어네스트 페놀로사의 공연 대본 수집에 문학적 관심을 보였다면, 예이츠는 이들의 뛰어난 연극적 가능성에 관심을 가졌다.

 


비록 예이츠가 직접 노극의 공연을 볼 기회는 없었지만, 예이츠의 영감성은 노극의 핵심을 놀랍게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런 점은 그의 에세이 '일본의 어떤 고상한 극들 에서도 잘 드러난 다. 하지만 일본극의 원형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예이츠가 의도하는 바가 아니었다. 노는 거의 개인적 경험과 발견을 한 단계로 또 다른 수준으로 올릴 수 있는 일종의 디딤돌 역할을 하였다. 「매의 우물가에서」의 초고는 예이츠가 노극을 잘 이해하고 있고 그래서 제의와 노래, 춤의 성격을 잘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드라마의 정확한 원천을 알기란 쉽지 않다. 아일랜드 전설에는 신비한 우물에 대한 전설이 많으며, 예이츠는 월리엄 모리스의 여러 소설에 등장하는 '우물'과 '나무'가 재생의 에너지와 다산의 상징으로 사용된 것에 감명 받은 바 있다고 전해진다. 이 작품의 공연을 준비하면서 가장 큰 문제는 적절한 협력자들을 찾는 것이었고, 이러한 공동 작업이 완전한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예이츠는 배우들에 대해 냉정하기 이를 데 없었고,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배우들의 불편에 대해 인내와 세밀한 보살핌이 필요했으나, 예이츠는 이러한 종류의 도움을 주는 데에 익숙하지 않았다. 이 작품은 두 번에 걸쳐 일본어로 번역되었으며, '무용가를 위한 네 희곡' 중 가장 활발히 공연되고 있다. T. S. 엘리엇은 파운드의 초대로 첫 공연을 관람하였는데, 이후 현재 삶의 드라마'를 쓰고자 하는 욕구를 느껴 후에 '스위니 애고니스트‘로 결실을 맺었고, 사무엘 베케트 역시 이 작품을 예이츠의 작품 중 자신의 애호 작으로 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