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Shadowy Water
예이츠가 이 작품을 1880년대 후반부터 쓰기 시작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림자 드리운 바다」는 이 작품집의 첫 작품으로 실렸어야 마땅했을 것이지만, 예이츠는 1904년과 1906년에 애비 극장에서 공연된 각각의 대본을 바탕으로 대규모의 재손질을 가하였고, 1907 년에야 공연용 대본을 완성하였다. 1894년 플로렌스 파 연출의 「마음속의 욕망의 땅」이 예이츠의 작품으로서는 처음으로 애비뉴 극장에서 공연되었을 때, 예이츠는 플로렌스 파가 「그림자 드리운 바다」 역시 손쉽게 무대에 올리리라 희망했었다. 그런데 이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고,1900년경 아일랜드 문예극장에 의한 공연 계획도 무산되었는데, 이러한 문제의 핵심은 작품에 퍼져 있는 과도한 상징주의였다. 애초에 극시로서 출발한 이 작품은 각 등장인물을 구별할 수가 없고, 대사 역시 지나치게 시적이어서 공연의 긴장감을 무산시키기 일쑤였다. 또한 사용된 상징물 역시 관객들의 상상력을 통합시키기에는 역부족인 너무나 사적인 것들이었다. 예이츠는 1906년 12월 8일 애비 극장에서의 재공연을 앞두고, 다시 한 번 「그림자 드리운 바다」를 재손질한다.

수정 본에서 선원들은 이제 힘찬 산문으로 말하고, 아브릭은 펄 게일에 대한 그의 깊은 충성심을 지키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데 보다 더 대담 해졌다. 또한 펄 게일의 시인으로서, 점성가로서의 권위는 보다 더 신빙성 있게 각색됨으로써, 이 작품의 몽환적 특징을 그대로 보존하면서도 관객들의 상상적 접근을 여전히 가능케 했다. 예이츠가 프랑크 페이에게 이 작품을 '인간의 이야기 라기보다는 제의' 라고 말한 것은 아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상징주의극으로 보았을 때 이 작품은 공연에 있어서 부정할 수 없는 힘과 감정적 집중도, 비속하고 상스러운 언어와 환상적이고 초자연적인 언어의 과감한 대비,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한 무대 조명과 음악의 사용 등으로 이 작품에 힘을 더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을 단순히 '상징주의 극'으로 한정하는 것은 예이츠의 연극성과 그 감성을 과소평가하는 위험을 지닌 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에 예이츠가 일본의 극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요 등장인물들이 대본이 요구하는 특정한 몸짓을 할 때만 제외하고는 완전한 정적을 유지하도록 함으로써, 공연에 있어서 마치 일본의 '노극'의 의식화된 몸짓과 상당히 흡사한 특징을 보이게 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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