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여섯 소년들. 제이, 니스, 버즈는 삼총사였다.
어느 날 밤, 제이가 하위지구에서 일어난 ‘12월 폭동’의 선동대 후디에게 살해되고,
모두의 운명은 뒤바뀐다.
30년 후, 상위 1지구 엘리트 학교 프라임스쿨.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우등생 다윈은 아버지 니스의 절친한 친구였던
제이의 추도식에서 루미와 만난다.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는 삼촌의 죽음을
파헤치기 시작한 제이의 조카 루미. 루미와 함께 진실을 쫓는 니스의 아들 다윈.
아버지를 닮아 자유를 갈망하는 버즈의 아들 레오.
제이의 죽음에 근접할수록 드러나는 어두운 비밀
그리고 또다시 뒤엉키는 그들의 역사.
어두운 터널을 지나와 진실의 끝자락에서 밝혀지는 ‘악의 기원’은 과연 무엇인가?

한 소년의 내면에 있는 선과 악의 갈등을 통해 정의와 계급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1지구부터 9지구까지 나눠진 철저한 계급사회와 정의에 관한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룬 박지리 작가의 화제의 소설이 서울예술단의 뮤지컬로 만들어져
2018년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되었다. 신과 인간, 죄와 벌, 부모와 자식, 삶과 죽음이라는
근원적 문제를 정면으로 부딪쳐 돌파하는 탄탄한 스토리를 흥미로운 판타지로 풀어낸
작품이지만, 원작자의 요절로 인해 널리 알려지지 못했던 이야기가 뮤지컬로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이 작품은 최상위 계층이 사는 1지구의 유서 깊은 명문학교 ‘프라임 스쿨’에 재학 중인
열여섯 소년을 주인공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소년‧소녀의
보편적인 성장 드라마에 집중하기 보다는 감당하기 어려운 무거운 진실을 마주한 그들의
선택과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치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진실의 민낯을 마주한
소년이 기존의 세계를 무너뜨리고 어른이 되는 이야기. 판타지와 결합한 ‘Young-Adult’
범죄추리소설이라는 원작의 흥미로운 장르적 특징과 함께, 선과 악에 대한 원초적 질문을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생각하게 한다.

이 뮤지컬은 원작가 박지리를 떼놓고 말할 수 없다. 요절한 작가 박지리의 대표작이다.
1구역부터 9구역까지 철저하게 구분된 가상의 계급사회에서 벌어지는 주인공 다윈 영
가문 3대에 걸친 생존을 위한 선택과 원죄, 구원을 다룬 문제작이다.
이 작품에 상을 준 한국출판문화상측은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도전적 걸작”이란
극찬을 했다. 박지리는 “한국문학에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이란 찬사에 어울릴만한
소설가이다. 따로 글쓰기를 배운 적도 없다. 대학 졸업 후 취업도 안 되고 할 일이 없어
이것저것 써보다 한 달 만에 난생처음 ‘합체’란 소설을 완성했다. 이 작품으로 사계절
문학상 대상을 받으며 25세에 등단했다. 이후 단 7편 작품으로 문단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기고 2016년 31세에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악의 씨앗이 뿌려진 60년 전 폭동의 날과 30년 전 주인공 아버지 세대 이야기는
현재 다윈 영과 그 친구들이 풀어나가는 이야기에 결정적 장면만 삽입된다.
시즌제 드라마로나 적합할 방대한 내용을 두 시간 반 남짓한 시간에 담으려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하지만 주인공 ‘다윈’이 악의 씨앗을 품게 된 결정적
사건을 만든 아버지 세대 ‘니스’, ‘제이’, ‘버즈’의 애증과 갈등, 다윈의 할아버지
‘러너’는 어떻게 혁명을 포기하게 됐는지 등이 대폭 생략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악의 기원’은 다윈의 선택을 통해 ‘가족’이라는 혈연공동체를 보호하려는 생존본능이
어떻게 순수한 영혼을 지배하게 되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60년 전 할아버지 때
뿌려진 악의 씨앗이 결국 아들에서 손자에게로 이어지는 결말에서 던지는 질문은
‘악의 기원은 무엇인가’다. 극 중 니스는 ‘종의 기원’에 집착한다.
서가 맨 앞에 항상 다윈의 ‘종의 기원’을 꽂아놓고 네트워크 아이디도 ‘종의 기원’이다.
인간과 자연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을 가져온 이 책은 ‘종을 이루는 개체는 생존 경쟁이
불가피하며 경쟁에서 이긴 형질은 후대로 이어진다’로 선언한다.

극중 영 가문 3대는 대단원에 이르러 “죄를 지은 아이는 어른이 된다”고 노래한다.
누구든 크고 작은 죄 없이는 어른이 될 수 없고 살아남을 수 없다.
악은 결국 생존 자체에 내포된 씨앗이라고 이 작품은 주장하는 것이다.
억압과 차별이 제도화된 사회구조도 또 다른 악의 기원으로 제시되기는 한다.
애초 영 가문 원죄의 굴레가 시작된 ‘12월 혁명’은 상위계급이 하위계급을 억압하는
폭력적 사회구조가 초래한 사건이다. 하지만 혁명에 앞장섰던 러너는 혁명 지도부 역시
권력만을 추구하는 또 다른 억압자임을 알아채고 이들을 붕괴시킨 후 혁명 전선에서
이탈한다. 인간과 사회를 추동하는 힘은 결국 이성이나 사회진보를 위한 인간의 노력이
아닌 인간의 원초적 욕망에서 나오며 그 자체가 악의 기원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극작/작사 이희준, 작곡 박천휘, 연출 오경택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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