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형문화제 제 81호인 이 작품은 전라남도 진도의 장례풍습으로,
지금부터 약 50여년 전까지 전래하던 풍습이다.
출상하기 전 날, 밤을 새우며 다시라기 꾼들의 의해 벌어지는 이 놀이는
다른 어느 장례풍습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다시라기는 전남 진도지방에 아직도 남아있는 죽음에 관한 풍속이다.
진도 다시라기는 부락에 초상이 나면 상주를 위한하기 위하여 동리의
상두꾼들이 신청으로부터 다시라기 기능 보유자를 초청하여 상두꾼들과 함께
상가에서 밤을 세우며 노는 민속 가무극으로 연극성이 가장 짙은 놀이이다.
다시라기는 슬퍼하되 상하도록 슬퍼하지 말고 즐기되 음란하게 놀지 말라는
진도 사대부의 교훈에 근거하여 행하였다. 한문으로 다시락이 변천되어 다시래기로
된 것이며 여러 사람이 같이 즐긴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연극 다시라기에서는 죽음의 문제가 결코 숨막힐 정도의 무게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이 연극의 주인공은 무거운 분위기를 깨는 다시라기 꾼들의 파격이다.
다시라기꾼들은 체면이고 뭐고 다 접어놓고 중구난방으로 놀아제낀다.
그들의 죽음과 맞서는 유일한 수단은 흥과 웃음이다.
죽음의 무게를 흥으로 바꾸어 보여주려는 것이 그들의 참 뜻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목숨이 태어나는 마지막 장면이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

막이 오르면 관객은 모두 조객이 되고 죽어간 영혼들에 대한 애도의 場으로
판이 벌어지다가 가상주가 등장하여 “애비 송장을 팔아” 돈 좀 벌어보겠다고
넉살을 피우고, 그런 가상주에게 사령이 찾아와 “저승사자가 당신을 잡으러 왔다”는
소식을 전하며 겁을 준다. 가상주와 사령이 티격태격 하는 사이 저승사자가 나타나
가상주를 저승으로 데려가려 한다. 저승사자는 “요즘 저승에도 불경기라 돈 있는
사람은 흥청망청 쓰지만 없는 사람은 생활이 말이 아니야” 라며 세태를 비꼰다.

<다시라기>의 뜻이 '다시 낳는 아이, 다시 태어나는 아이' 등으로 풀이되듯이,
망자에 대한 애도의 場인 상가에서 모의적인 놀이를 통해 웃음과 희망을 선사하며,
상주 위로와 死者를 떠나 보내는 이들의 서글픔과 허무감을 극복하도록 도와준다.
모든 일에는 그렇게 새로운 희망이 있음을 알리고, 소중한 우리의 삶에도 끝이 있고
시작도 있다는 것을 반추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다시라기>는 출상 전날 밤 다시라기꾼들에 의해 행해지는 즉흥 연희가 주된 줄거리다.

이런 저승사자를 가상주는 필시 가짜 저승사자일 수 있다며 마을사람들과 합세하여
사자를 잡아 광 속에 가둔다. 한편 넙쭉네는 애를 밴 상태임에도 남편인 봉사 몰래
저승사자와 눈이 맞아 저승사자를 광 속에서 구해준 뒤 저승사자를 따라가게 되고
넙쭉네를 찾아 나선 봉사와 가상주, 마을사람들 일행은 저승사자와의 마지막 일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만삭인 넙쭉네는 아이를 낳게 된다. 그 기쁨도 잠시 봉사는 죽음을
맞이하고 다시리기 놀이는 끝이 난다. 이렇듯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삶과 또 다른
시작, 희망으로 승화되며 맺어진다. <다시라기>는 이처럼 상갓집 모습에 사물놀이와
남도지방 민요, 노동요, 씻김굿과 함께 노래와 춤, 해학 섞인 한바탕 놀이 풍경을 담았다.

작, 연출의 글 - 허규
<다시라기>의 말뜻은 다시 낳는 아기, 다시 태어나는 아기, 등으로 풀이 되기도 하지만 진도지방 사람들은 놀이의 내용보다는 연희형태로 파악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진도에 <다시라기> 라는 놀이가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상가에서 희극적인 놀이가 연희되었다는데 놀랐다. 침울하고, 비감어린 상가에서 특히 죽엄 앞에서 어떻게 희극이 연출 될 수 있겠는가? 라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으나, 내 어린 시절, 상가에서 들리던 웃음소리, 죄수들의 히히닥거리는 소리, 전장에서 잠깐 동안의 휴식시간을 농담, 음담패설은 물론 심지어 처참하기만한 죽음까지 희화화하는 그 익살스런 소리들이 머리에 떠오르면서 이 놀이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행위야 말로 자신의 삶을 확인하는 길이며, 동료들에게, 유가족들에게 삶의 의욕을 불러 이르켜주는 훌륭한 묘약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하면 <다시라기>놀이는 슬픔과 절망이라는 홍수에 대한 적극적인 저지수단이며, 그렇게 하므로서 정서의 균형을 되찾고, 삶의 의지를 되살리는 활력소적 역활을 하는 것이라 믿는 것이다. 오늘 이 시대의 인간들이 느끼고 있는 절망과 불안, 불신과 허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특히 이런 상항에서 연극이 담당해야할 순 수한 역활은 무엇일까? <다시라기>공연을 통해서 그러한 문제 해결의 싹이 보였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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