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만희 ‘가벼운 스님들’

clint 2026. 7. 4. 06:12

 

 

비구니들의 절, ‘봉국사’. 이 절에는 총무를 맞고 있는 콧대 높은 ‘총무스님’, 
항상 총무스님에게 구박 받지만 반항하지 못하는 ‘우남스님’과 ‘원주스님’, 
그리고 이 절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특이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지월스님’이 있다. 
이들은 스님의 길을 선택해 수행을 하고 있지만 인간적인 유혹에 수도 없이 흔들린다. 
그래서 자칫 가볍게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것이 이 스님들의 매력 포인트다. 어딘가 
모르게 도인 혹은 기인의 아우라를 뿜어내는 '지월’은 세상 모든 일에 초월한 듯 심상치 
않은 기운 풍긴다. 속세에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들어온 우남은 오랜 시간 봉국사에 
헌신하지만, 아기 때 절에 버려져 ‘순수하게’ 스님이 된 총무는 그를 못마땅해 한다. 
해마다 인도로 성지순례갈 수 있는 기회는 총무로 인해 번번이 우남을 빗겨가고, 

우남의 설움은 폭발한다. 

 


 
어느 날 사건이 터진다. 누군가 절 마당에 ‘평장(平葬, 시체를 땅 속에 평평하게 매장)’을 
하고 사라져버린 것. 신성한 공간에 시체가 나타나자 절은 한바탕 뒤집어지고, 총무는 
이 일을 무사히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던 중 과거 절에서 금이 나오는 산을 
둘러싸고 조직 폭력배와 싸움이 붙었고, 당시 지월이 조직의 보스인 ‘군산 꼬마’를 단숨에 
제압했다는 전설 같은 사실이 밝혀진다. 비가 오는 날, 지월은 우비를 입고 절 마당에 
묻힌 시체를 꺼내 금광으로 가져가 태워 장례를 해주는 자신만의 기지(?)를 발휘한다. 
거기에 우남의 전남편 ‘종팔’이 끊임없이 찾아와 다시 살자고 애걸복걸 할 때도, 모든 

일을 가뿐히 해결해버린다. 진지하고 어려운 세상사도 그 앞에서는 한없이 단순하고 

쉽고 가벼운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절을 3일 내에 싹 비우라며 

총을 든 괴한이 협박을 하는데... 문제는 더 복잡하게 꼬여간다..

 


어쩌면 누군가에겐 가까이하기에 어렵고 무거운 느낌일지 모르겠다. 온화하고 점잖은 
얼굴로 법당에 앉아 몇 시간이고 염불 을 외는 모습의 스님을 먼저 떠올린다면 말이다. 
그러나 <가벼운 스님들> 속의 스님들은 흔히 생각하는 이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는다. 
제목처럼 한없이 가벼운 이들의 대화를 듣자면, 배우들의 말처럼 '아줌마들의 수다'가 
아닐까 싶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머릿속에 이미지화된 스님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가 
만들어놓은 고정관념은 아니었을지.

 

 


<가벼운 스님들>은 극작가 이만희가 <그것은 목탁 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이하 목탁 구멍)> 이후 두 번째로 집필한 '불교 희곡'이다. 그러나 전작과는 여러 면에서 그 결을 달리하는데, 우선 심각하고 진지한 분위기의 <목탁구멍>에 비해 '상당히, 한없이 가볍고 유쾌한 작품이라는 것이고, <가벼운 스님들>은 불교 희곡이라 하기 어려울 만큼 불교의 교리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다. 인간 내면을 파고들고 통찰하기보다는 스님을 한 명의 사람으로서 대하는 태도를 취한다. 이런 이유에선지 배우들은 "말하는 사람들이 비구니일뿐이 지, 아줌마들의 수다나 다름없다"고 웃는다. 
2018년 1월 초연된 신작이지만, 사실 작품은 7여 년 전에 쓰였다. 이만희 작가의 열렬한 팬을 자처하는 연운경 배우는 당시 작가에게 '스님이 나오는 작품'을 한 편 더 써 주십사 부탁했다. 이만희 작가는 실제 겪은 일을 바탕으로 이전 <목탁 구멍>에 썼다가 흐름상 
삭제한 이 '평장(시체를 평평한 땅에 몰래 매장) 사건'을 중심으로 불러와 이 작품을 완성시켰다. 작가는 작가의 글’을 통해 <목탁 구멍> 후 “불교 작품을 하나 더 써보자, 이번엔 코미디로."라고 다짐했던 스스로의 약속을 말하며 “무거운 주제를 오래 붙들고 있다 보니 가벼운 작품을 써보고 싶었나 보다"고 농담 섞인 계기를 전했다. 

 



<가벼운 스님들>은 절과 스님(비구니)을 소재로 삼았지만 대중들에게 편하게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을 풍긴다. 사찰에서 사는 비구니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사실상 세상사는 이야기와 별 다를 바 없는, 그냥 연극이다. 

변덕스럽고 강압적인 총무 스님, 총무 눈치를 보며 제대로 반항하지 못하는 우남 스님과 

원주 스님, 세속으로 돌아오라고 설득하는 우남스님의 옛 남편,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 절에 침입하는 괴한 등의 배역은 일반 사람들에게서 엿볼 수 있는 여러 가지 결을 

각각 담당한다. 이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지월 스님마저도 전혀 무겁지 않은 태도로 

우여곡절을 태연히 넘기며 살아간다. 그 가운데 인생을 살아가면서 닮고 싶은 어떤 태도를 

관객들이 만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게 이 작품의 묘미라고 볼 수 있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뮤지컬 '다윈 영의 악의 기원  (1) 2026.07.04
허규 '다시라기'  (1) 2026.07.04
정가극 '영원한 사랑-이생규장전'  (1) 2026.07.03
최치언 '미친극'  (1) 2026.07.03
뮤지컬 '왕의 나라'  (1) 2026.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