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 열셋까지 세다>에서 주인공 블루는 찻집에서 공연하는 신비로운 여인
그린을 만나 결혼하나, 결혼 직후 “절대로 보지 말았어야 할 어떤 것”을 보고
백화점 옥상에 올라 자신의 잃어버린 날개에 대해 이야기한다.
희곡은 무대지시문을 통해 “블루는 ‘한국의 초현실주의 작가’,
레드는 ‘그의 친구’, 그린은 ‘둘 모두가 사랑에 빠진 여성’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등장인물들을 소개한다. 그러나 블루는 극중에서 자신을 ‘이상’이라고 분명히 언급하며,
레드의 경우는 그가 블루를 경제적으로 돕는 친구다.
마지막으로 그린은 희곡과 <날개>의 기생출신으로 이상을 만난 뒤 이상과 동거하며
이상이 경영했던 카페에서 여급으로 일했던 금홍을 극화한 캐릭터로 보인다.
블루는 세 번의 자살기도를 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자살기도는 그가 ‘진짜 물’을 얻지
못할 때 ‘가짜 물’을 마시며 일어난다. 연극에선 엄청난 양의 다이어트 콜라를 마신다.
그린과 블루는 함께 바다 속으로 걸어 들어가지만, 그린은 도중에 아무 말 없이 홀로
뭍으로 돌아가고, 블루 혼자 바다 속에 남는다. 그렇게 블루는 ‘진짜 물’을 누릴 기회를
잃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가짜 물’인 해수를 들이키며 두 번째 자살기도를 한다.
세 번째는 백화점 옥상에 오른다. 그러나 그곳에서 블루는 다시 자살을 생각한다.
마지막 독백에서 그는 “절대 보아서는 안 될 어떤 것”을 보았다고 말하는데, 이 장면의
배경으로 그린과 레드의 웃음소리가 깔리며 블루는 그린이 레드와 바람피는 것을
목격하고 자살을 생각하며 옥상에 오른 것이다.

연극 <이상, 열셋까지 세다>는 재미교포 극작가 성노(Sung Rno)가 1999년에 발표한
희곡을 바탕으로 미국의 실험연극 거장 리 브루어(Lee Breuer) 연출한 현대연극이다.
일반적인 서사 중심의 전기극이 아닌, 이상의 시와 문학, 삶의 궤적을 이미지와 시각적
은유로 풀어낸 실험적 성격이 짙은 작품이다. 이상의 예술 세계와 내면을 형상화한
'이미지 연극'으로 풀어낸다. 시인 '이상'을 20세기 모더니스트로 설정하고, 그의 대표
시 세계와 예술적 고뇌를 다층적으로 풀어낸 것이다.
여기에는 시인 이상의 오감도, 날개, 꽃나무 등을 차용하여 만들어진 작품으로
논리적 통제가 아닌 이상의 무의식의 세계의 대사들이 주류를 이룬다.
난해한 한국 작품을 미국 아방가르드 연출가인 리 브루어의 시각으로 풀어낸 것이다.
네 배우들의 뛰어난 집중력. 창조적이고 기이한, 무대와 소품 활용, 음향 등을 사용했다.

모든 예술 장르를 아우르는 공연 예술의 연금술사, 실험연극의 거장이라고 칭송 받는
리 브루어가 한국에서 가장 유서 깊은 시민 소극장의 원조 3.1로창고극장에서, 천재 시인
이상의 초현실주의적 세계를 무대화했다. 리 브루어와 차세대 작가로 주목받고 있는
성노가 갤러리 제작팀이 제공하는 현대 미술의 도발적 자유로움이 어우러져 코믹하고
비극적인 ‘오감도”와 “날개”의 세계를 환상적인 무대예술로 보여주는데...
초현실주의자 이상에 대한 아주 잘 짜여진 실험극이라 하겠다.

작가의 글 - 성노
이 작품은 이상이란 작가의 강렬한 미적세계를 연극적 방법으로 재창조하려고 쓰여진 작품입니다. 작품 속에 세 개의 주제적 맥락이 있는데, 첫째는 빨강, 파랑, 그리고 초록이라는 등장인물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실적인 단계이고, 둘째는 다리, 팔꿈치, 그리고 장갑이 등장하는 미스테리 '느와르 영화' 속에 존재하는 추리적 연속성이며 마지막으로는 이상만이 갖고 있는 시적 영감에서 얻을 수 있는 초현실적인 장면들입니다. 이 세 가지의 주제적 맥락은 연극적으로 DNA구조처럼 서로 엉켜있고, 주제와 리듬적인 면에서 끊임없이 영감을 주 고 있습니다. 이 연극을 본 관객들은, 연극이 끝나갈 때쯤이면 이상의 안에서 시간을 보낸 듯 하거나, 최소한 그 해석된 작품세계를 경험한 느낌이 들게 될 것입니다. 이상의 작품들이 전통적인 문장, 의미, 시의 형식을 거부하듯이 '이상, 열셋까지 세다'도 심각함과 유머의 공존, 대중성과 추상성의 공존 등 비전통적 연극적 방법론을 창조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하나의 이유는, 이상의 시가 독자들에게 충격적이였듯이 '이상, 열 셋까지 세다'도 관객에게 놀라움'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이러한 접근이 보다 더 나은 극을 만들 수 있지 않나 해서 말입니다. 이 작품은 진실성과 이질성, 그리고 소비문화 등 여러 가지 테마적 요소를 함유하고 있지만, 기본적인 면에서는 결국 담배 한가치를 얻어 피우려는 폐병3기의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니면 제 생각으로는 마지막으로 상쾌한 공기를 느끼려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며 날고자 했던, 그러나 불행히도 날지 못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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