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크리스토퍼 말로 '몰타의 유대인’

clint 2026. 5. 23. 13:38

 

 

지중해의 작은 섬, 몰타에 사는 유대인 바바라스는 튀르키예에 조공금을 바치지 못한

몰타의 지배층에게 모든 재산을 어이없이 빼앗긴다. 하지만 딸을 이용해 숨겨놓은

재산을 되찾고 자신의 재산을 가져간 몰타를 상대로 복수극을 벌인다.

자신과 뜻이 맞는 튀르키예 출신 노예 이싸모어를 사들여 함께 악행을 저지르고 다니던

바라바스는 자신을 배반하고 기독교로 개종해 수녀가 된 딸 아비게일과 수녀원에 함께

머물던 다른 수녀들까지 모두 독살한다. 이후에도 자신의 비밀을 아는 수사를 죽이고,

이싸모어가 자신을 배신하자 그도 죽여 버린다. 하지만 그의 악행은 들통나버리고,

이제 바라바스는 마지막 계획을 위해 숨겨둔 독약을 꺼내든다. 

 

 

 

이 작품은 16세기 말과 17세기 초반의 당시 관객들에게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으며, 

특히 1594년 엘리자베스 여왕의 주치의였던 유대인 로페즈가 사형당한 사건 때문에

그 인기가 더욱 높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몰타의 유대인은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과 벤 존슨의 <볼포네>에 영향을 미쳤으며, 그밖에도 당시 수많은 다른 작품에서

그 영향이 직간접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유일한 초기 판본인 1633 4절본의 표지를

통해, 우리는 이 작품이 바로 그 시기에 투계극장이나 불사조극장에서 공연했던

헨리에타 여왕 극단의 수중에 넘어갔음을 알 수 있다.

 

 

 

<몰타의 유대인>은 제목에서도 나타나듯이 유대인 바라바스가 주인공이고, 작품에 대한

해석은 그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초기 비평가들은 그가 구경꾼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색칠한 커다란 코를 붙인 단순한 괴물 같은 존재냐 아니면 부당함과 박해

때문에 비뚤어진 인간이냐를 놓고 논쟁이 이루어졌다. 그 후 19세기에는 바라바스가 

<탬벌레인 대왕> <파우스트 박사>에서 말로가 그리려 했다고 보이는 야심에 찬

르네상스인의 한 유형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최근에 이르러 그는 말로 자신의 종교적, 

정치적 신념과 관련된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일부 비평가들은 작품에 나타난 종교적

암시가 바라바스의 악행을 분명하게 응징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비평가들은

말로가 기독교인들의 위선을 풍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몰타의 유대인>은 혐오와 돈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품 속 인물들은 바라바스를 돈밖에 
모르는 유대인이라고 혐오하면서도 모두 그의 돈을 경외시한다. 과거 유대인들은 고리

대금업에 종사하며 부를 쌓아왔다. 반면, 기독교인들은 검소한 생활을 강조하기에 돈을 

다루는 유대인들을 하찮게 여겨 그들을 핍박했다. 게다가 유대인들은 예수를 박해했다는 

종교적 역사를 지니기에, 나라 없이 떠도는 그들은 멸시와 혐오를 받게 된 것이다.
극의 주인공 바라바스는 그러한 유대인의 전형이다. 바라바스의 악행으로 전개되지만
그의 악행은 엄연히 복수의 일환으로 수행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복수의 대상은 자신의 

재산을 위협한 권력집단과 기독교인들을 향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바라바스가 자신의 

딸까지 죽음의 수렁으로 밀어 넣었을까. 본래 자신의 딸인 아비게일을 끔찍하게 아꼈다. 

그러나 바라바스가 복수를 위해 아비게일의 약혼자를 사망케 하자 아비게일은 그에게 

실망해 수도원으로 들어가 수녀가 된다. 여기에 분노해 적과 한 집단으로 보고 딸을 죽인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외형은 비극이지만 내용을 보면 그로테스크 코미디인 것이다.

 


당시 최고 히트작 <몰타의 유대인>은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과 비견되지만 사실 둘은 전혀 다른 작품이다. <베니스의 상인>은 샤일록이 사회로부터 받는 부당한 차별에 분개해 나름의 복수를 꾀해보지만 결국 실패하고 모든 것을 빼앗기는 이야기이다. 샤일록은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와 바사니오의 우정에 밀려 쓸쓸히 퇴장할 뿐이다. 그에 반해 <몰타의 유대인>의 주인공 바라바스는 그 당시 사람들이 유대인에 대해 가졌던 모든 혐오와 차별을 모아 사람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은 전형적인 악인이다. 그는 돈밖에 모르며, 자신의 돈을 뺏은 사람에게 가장 끔찍한 방법으로 복수하고, 딸까지도 자신을 배신하면 가차없이 죽여버린다. 모두가 그를 혐오하면서 조롱하는 만큼 그는 세상을 혐오하고 파괴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무대에서 바라바스는 가장 인기 있는 주인공이었고, 셰익스피어와는 비교 되지 않을 만큼 관객을 끌었다. 특히 바라바스는 그 당시 사람들이 마음껏 조롱하고 혐오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바라바스가 저지르는 모든 사악한 짓들로 인해 관객들은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그의 죽음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 즐거움 속에서 바라바스가 당대 영국과 유럽 사회에서 엄청난 차별을 견디고, 부당한 대접을 받으며 쫓겨다녔던 유대인이라는 사실은 지워지거나 또는 또렷하게 강조되었다. 그들에게 유대인 종족이 당하는 고통은 바라바스를 본다면 너무나 당연한 인과응보였다. 하지만 영문학사에서 바라바스는 개인의 욕망을 쫒는 근대적인 인물로, <몰타의 유대인>은 신랄한 아이러니와 독설로 동시대를 비판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