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에르네스토 카바예로 '시녀들을 그린 작가'

clint 2026. 5. 21. 13:41

 

 

2030년대 프라도 미술관이 희곡의 배경이다.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유럽연합의 몰락으로 스페인 정부가 국보급 작품의 매각을

결정하고 국민의 상실감과 분노를 누그러뜨리고자 모사를 잘 하는 수녀 앙헬라에게

비밀리에 모사를 의뢰한다. 물론 이 작품의 모사는 공식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국가가

위기에 처한 상황이라 프라도 미술관에서 모사를 적극 후원한다.

그리고 모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앙헬라 수녀는 예술 작품의 기술적 복제시대에 대해

사유한 발터 베냐민을 언급하면서 아무리 완벽한 복제품이라도 원작이 갖는 유일무이한

현존성과 오라는 결여되어 있음에 동의한다. 한편 극에는 앙헬라의 모사 작업을 방해하는

야간 경비원 아드리안이라는 인물이 등장해 앙헬라의 숨겨진 창작 본능과 자기 과시를

자극하며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 아닌 앙헬라가 해석한 <시녀들>, 그녀의 <시녀들>을

그리도록 부추긴다. 그 과정에서 여러 현대미술의 거장들이 소개되며 예술의 가치와

창작자의 책임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지고 예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한다.

동시에 공공기관에서 예술작품을 보전하고 예술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겪게 되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해서도 토로한다.

앙헬라수녀는 복제화를 그릴까? 아니면 자신의 그림을 그릴까?

 

벨라스케스의 그림 <시녀들(Las meninas) 1656년 작. 프라도미술관 소장

 

연극의 한 장면 같은 벨라스케스의 그림 <시녀들(Las meninas)>은 스페인 바로크

회화의 진수다. 어여쁜 드레스를 입고 사랑스럽게 서있는 어린 공주와 그 옆에서

물을 권하면서 시중 드는 시녀들을 중심으로 17세기 궁정의 한 순간을 포착한 이 그림은

세밀한 인물 묘사는 물론이고 빛의 흐름과 깊이 있는 공간 묘사에서, 기법적으로

탁월한 화가의 역량 을 보여 준다. 내용 면에서도 당시 궁정화가의 예리한 통찰력과

관례를 뛰어넘으려는 혁신성을 보여준다. 근엄한 왕이나 왕가의 단순한 초상화가

아니라 궁정 안에서 왕과 친숙하게 지내는 사람들과 그 일상의 풍경을, 더 나아가

화가 자신의 자화상을 한 폭에 담아냈기 때문이다. 그림은 얼핏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꼼꼼하게 계획된 연출력이 느껴지면서 적지 않은 궁금증을

유발한다. 시녀들은 무슨 일로 공주를 달래고 있을까. 공주는 그림의 모델일까 아니면

그림 그리는 작업을 구경하러 온 것일까. 시녀들 뒤편의 궁녀와 관리는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걸까. 오른편 구석에 난쟁이들과 개는 왜 같이 있는 걸까.

맨 뒤에서 계단을 오르며 이 방을 향하고 있는 남자는 누구일까. 그 옆에 걸린 액자는

거울일까 아니면 그림일까. 그 안에 희미하게 비쳐 보이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붓을 든 화가는 무엇을 그리고 있는 걸까. 공주를 그리는 걸까 아니면 화폭에 등장하지

않은 모델, 혹은 그 액자인지 거울에 흐릿하게 비친 인물들을 그리는 걸까.

무엇보다도 화가 자신을 왜 이렇게 눈에 띄게 또 당당하게 표현했을까?
이처럼 수많은 물음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서인지 <펠리페 4세의 가족>이라고도

불리는 이 작품은 스페인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그림이며, 바로크뿐만 아니라

스페인 미술 전체를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유럽을 뒤흔드는 금융 위기가 스페인의 국보급 예술 작품을 

팔아서라도 국가의 빈곤을 막아야한다고 국민의 요청을 받아들여 매각을 결정하고 

화가 수녀가 원작인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복제품을 그리도록 의뢰받는다.

그 순간부터 수녀는 다양한 관심사의 갈림길에 서게 되고, 겸손한 붓 장인이 뜻밖에도

조형예술계의 인물이자 미디어 스타가 되면서 성격이 갑자기 변하는 일을 겪게 된다.
작가인 에르네스토 카바예로가 쓴 이 작품은 개인의 주체성에 대한 점점 더 높은 관심과

우리 시대 예술 표현이 차지하는 위치를 반영하는 디스토피아 풍자극이다.

 

 

 

이 작품은 모든 예술적· 인본주의적 필연성에서 완전히 해방된 가상의 사회를 제시한다.

비생산적인 활동이라는 터무니없는 말은 좌우 양쪽 정치 조직에 의해 공개적으로

받아들여지며, 이는 새로운 사회복지 개념에서 불필요하고 부담스러운 투자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과 일치한다. 이 허영에 관한 우화의 주인공 앙헬라수녀는 문화 작업의

모든 영역에서 무차별적인 민주화를 받아들이기를 꺼린다. 예술과 지식을 지칭하는

권위의 붕괴, 즉 원본을 그대로 복제하는 것과 모사 작가의 창의성을 인정하자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대결로 나타난다. 작가도 미래로 배경을 정한 이유가 이해가 간다. 

 

 

 

작가 에르네스토는 수수께끼 같은 그림 <시녀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는지에 대한 본인의 감상평을 곁들인다. 회화예술의 위엄을 찾아준

이 작품에서 벨라스케스는 당시 부패하고 타락했던 왕가를 찬양하는 것 같지만

진심으로 보여주려던 것은 거울이라고 작가는 생각했다.

중앙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주된 공간이 아닌 벽에, 다른 액자들과 함께 걸린

작은 거울 그리고 그 속에 어슴푸레하게 비친 왕과 왕비의 모습에서 벨라스케스가

헛되고 덧없음의 알레고리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바로 벨라스케스가 캔버스에 담고 있는

모델이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벨라스케스 화가 앞에 있는 캔버스를 잘 봐요. 누구를 그리고 있다고 생각해요? 

누구를 보는 거 같아요?"

 

에르네스토 카바예로(Ernesto Caball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