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8년 어느 밤 허균은 역모 죄로 끌려가기 바로 전날
자신 앞에 닥칠 운명을 예측하고 서자 돌한을 불러 <홍길동전>을 건넨다.
그리고 점봉산으로 들어가 숨어사는 박치의를 찾아가 은신할 것을 이른다.
허균이 <홍길동전>의 마지막 대목을 읊조리는 순간 ‘칠서의 옥(七庶之獄)’으로
형장에서 스러진 일곱 명 용수 쓴 사내들이 등장한다.
때는 1608년 과거에 급제하고 관리로 임명되었지만 서자라는 이유로 자리에서 쫓겨난
일곱 서자들은 여주 남한강가에 집을 짓고 공동생활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어느 날 이들에게 허균이 찾아온다. 허균은 일찍이 서자들의 능력을 인정하고
막힌 처지와 운명을 안타까워하던 차, 허균은 서양갑을 비롯한 서자 무리에게
은밀히 제안을 하는데…….
서양갑과 허균은 조선을 개혁하려는 의지에는 합일하지만 방식을 두고 의견이
충돌하고, 칠서 무리들 일부에서는 허균을 의심하는 마음이 커져 간다.
그들의 혁명 계획은 어떻게 실패하는가?
칠서를 이용하려던 무리들은 누구인가?
허균은 그 무리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던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일곱 명의 사내들은 허균이 집을 떠나는 밤
환상 속에서 다시 등장한다.

가무극 <칠서>는 광해군 5년에 일어난 ‘계축옥사’(1613년, 서얼들이 조선왕조에
조직적으로 저항한 최초의 움직임으로 '칠서지옥'이라고도 한다)를 소재로 한다.
17세기 조선은 임진왜란의 후유증 속에서 신분질서가 흔들리고 새로운 사회를 향한
갈망이 고조되었던 시기다. 광해군 시절 '칠서지옥'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임진왜란의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차별이 사라지지 않은 시대의 부조리에 항거한 서자들이
일으킨 난이며, 이는 <홍길동전>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알려졌다.
<칠서>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허균이 쓴 것으로 알려진 최초 한글소설
<홍길동전>의 탄생비화를 더한 팩션 사극이다. ‘팩션’을 창안하고자 하는 동력은
역사가 기록하지 않는 역사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 실패한 개혁, 역사가 채 담지
않은 젊은이들의 꿈은 <홍길동전> 속에서나마 희미하게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홍길동전’은 고전 가운데서도 가장 대중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서얼이라는 신분적 한계를 극복하고 민중의 편에서 탐관오리들과 맞서 싸운 홍길동은 민중의 영웅으로서 당대는 물론 지금의 영웅상에도 부합하는 인물이다. 그런 홍길동의 실제 모델이 된 역사 속 인물의 이야기는 분명 좋은 이야기 소재가 된다. 서울예술단이 2017년 공연한 신작 ‘칠서’가 관심을 모았던 이유다. 충무아트센터에서 공연된 ‘칠서’는 역사가 ‘계축옥사’로 짧게 기록한 7명의 서자들의 꿈과 좌절을 허균의 ‘홍길동전’ 탄생 비화와 함께 엮어낸 팩션 사극이다. 특히 조선 광해군 시절, 서자였던 이들이 신분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는 내용이다.
하지만 140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에도 문제는 온갖 부연에도 스토리의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칠서 중 박응서가 동지들을 등지게 되는 이유부터, 광해가 내린 임무를 수행하며 활빈당 우두머리가 된 서양갑이 갑자기 조선이 명에 바치는 은 조공을 빼돌리려 하는 장면 등이 대표적이다.

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를 통해 팩션 사극 제작 능력이 검증된 장성희 작가와 민찬홍 작곡가 콤비의 두 번째 작업으로 신뢰와 기대가 높다. 대본을 맡은 장성희 작가는 임진왜란이라는 커다란 전화를 겪고도 신분차별의 적폐를 청산하지 못하고 개혁에 실패한 당대에 새로운 세상을 그렸던 일곱 서자들의 꿈과 좌절을 통해 오늘의 우리를 비추어보고자 한다. 음악을 맡은 민찬홍 작곡가는 힘 있고 강렬한 음악의 질주를 통하여 일곱 명의 서자의 호기로운 기상과 그들이 품은 염원을 느끼게 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클래식과 록 음악을 핵심적인 음악 스타일로 삼았다. 또한 이 작품에는 창작뮤지컬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매 작품 혼신을 다하며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고 있는 노우성 연출가가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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