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멈춰버린 환풍기가 있는 학교 옥상 위. 두 아이가 만난다.
어른들의 문제 때문에 꼬이고 꼬여버린 십대 아이들.
이 아이들은 결국 누군가의 딸과 아들이 아닌 스스로가 되며 성장한다.
이들의 아픈 성장이야기가 옥상 위에서 펼쳐진다.
고등학교 옥상, 한 소녀가 자신에게 만나자고 쪽지를 건넨 소녀를 기다리고 있다.
약간의 설렘과 기대를 가지고. 몰래 숨겨둔 담배를 꺼내 피울까 하다가 관둔다.
잠시 후 등장한 소녀. 하지만 소녀의 목적은 기대처럼 사랑 고백 같은 것이 아니었다.
"야! 너, 그거 아냐? 너네 엄마랑 우리 아빠랑 바람난 거?"
이때부터 두 소녀의 한쪽이 죽고 한쪽이 사는 사생결단의 총격전이 시작된다.
(그래서 제목이 옥상 위 카우보이다.)

너네 엄마가 착실한 가장인 우리 아빠를 꼬신 거라는 둥,
우리 엄마가 성모 마리아도 아니고 애를 어떻게 혼자 만드냐는 둥
서로를 향해 거침없이 총알을 날린다.
사태 해결을 위해 자주 옥상에서 만나면서 조금씩 성숙하는 아이들과,
어른이지만 여전히 성숙해야 할 필요가 있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재미있고 유쾌하게,
그리고 가슴 찡하고 슬프게 흐른다. 대사 한 한마디, 지문 한 문장에 낭비가 전혀
없었던 간결하고 담백한 연극이었다.
무대 위 띄워진 작은 섬, 옥상 그리고 텐트, 부모의 부정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성장하는 아이들, 그리고 아직 다 크지 못한 어른들의 이야기이다.

긴장감 흐르는 옥상과, 어째서 아버지는 공통점이 없는 오리집 아줌마와
바람이 났는가에 대한 의문, 이 사건이 어떻게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어떻게 결말이
날 것인가에 대한 완벽한 구성이 재미있다. 무엇보다 바람난 여인의 뱃속에 든 아이가
자라 어떤 부모를 엄마와 아빠로 부르게 될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누나인 것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두 소녀의 어른보다 더 듬직한 생각과
마음이 나를 깨우치게 했다. 신은 인간에게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준다는 사실은
아마도 맞을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작가의 말 - 이보람
옛날 뱃사람들은 북극성을 통해서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시간과 계절에 따라 그 위치가 변화하는 다른 별들과 달리 북극성은 항상 북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전 그 이야길 듣고 망망대해에 띄운 자그마한 배 한척에 앉아 있는 저 자신을 생각했습니다. 밤이 되도 긴장하지 않고 북극성을 찾으며 여유 있게 노를 저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 북극성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옥상 위 카우보이의 원래 제목은 '내가 있어야 할 자리'였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통해서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린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나의 아빠가 엄마가 아닌 다른 아줌마의 애인이 되었고, 나의 엄마가 친구의 아버지와 결혼하고 싶다고 합니다. 아빠와 엄마가 사라진 빈자리를 보며 아이들은 북극성을 일어버린 뱃사람의 심정과 같을지 모릅니다.
때때로 우리는 내가 마주보고 있는 대상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우리가 조금은 어른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모두 언젠가 내가 나를 넘어 날 보고 있는 당신을 마주한 순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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