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있다. 여자는 고등학교 국어 교사, 남자는 제자.
그들은 서로 사랑하게 되고, 관습과 금기를 넘어서서 결혼을 한다.
공식대로라면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나고, 우린 그들의 행복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연극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영원히 사랑할 거라던 믿음과는 달리,
그들의 사랑은 흔들린다. 남자가 큰 빚을 진 게 밝혀지는데 사기를 당한 것이다.
남자는 실패를 만회하려고 발버둥치지만 더욱 추락한다.
여자는 그런 남자를 이해하지 못한다.
여자는 삶에 지치고, 남자는 여자의 변한 모습에 질린다.
남자가 여자에게 준 선인장은 점차 말라가고...
여자는 현실을 견디기 힘들 때마다 추억 속으로 도피한다.
그 속에서 순수했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과거의 남자를 만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현실은 점점 무너져만 가고...
사업 실패로 사채업자의 독촉을 받은 남자는 결국 집까지 요구한다.
그런데 여자는 남자가 빚을 졌던 게 자신에 대한 사랑 때문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여자는 다시 사랑을 느끼고 싶어 한다.
남자가 했던 예전의 사랑 고백을 다시 듣고 싶어 한다.
허나 벼랑 끝에 몰린 남자의 눈엔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다.
남자는 고통과 자학에 사로잡혀 여자를 몰아세우는데,
그 와중에 여자의 몸에 부딪쳐서 선인장 화분이 깨어지고, 새로운 진실이 드러난다.
그들에겐 과연 아직 사랑이 남아있을까. 과연 그것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이 연극은 프롤로그를 제외한 일곱 장면 속에 4년 여의 세월을 담고 있다.
또한 그 안에서 과거 회상과 현재를 오감으로써,
인물이 변하기 전, 후의 달라진 모습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삭막한 사막 같은 이 세상에서 오아시스를 찾듯 사랑에 매달리지만,
어느새 메말라버린 사랑에 절망하고 미워하고 아파하는 사람들.
이 연극은 그런 모든 이들의 이야기이다.
외도 없이 부부 사이에 금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오직 사랑만으로 맺어진 연상연하 커플이 경제적 현실의 난관에 좌절하며,
미움과 아픔이 가슴에 쌓이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싱싱하던 선인장이 점점 시들어가는 모습을 통해 결별을 암시한다.
특히 "사랑은 우릴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고뇌와 슬픔 속에서
얼마나 강할 수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보이기 위해 있는 것이다"는 마지막 대사가
사랑의 이중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가의 글 - 안현정
사막에 피는 선인장 꽃처럼,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사랑을 잃지 않는 게 가능할까.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한 부부들이 현실의 난관 앞에서 좌절하며,
미움과 원한만 가슴에 쌓아가는 모습들을 많이 본다.
허나 그들도 한때는 열렬히 사랑하던 사이가 아니었던가.
세상의 어떤 반대도 견뎌내고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안간힘 썼던,
로미오와 줄리엣이 아니었던가. 무엇이 그들을 변하게 하였는가.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사랑을 잃고 사랑의 위선적인 습관만 남긴 채,
서로를 지독히 미워하게 만들었는가.
만약 아직 사랑이 남아있다면 그 사랑은 그들을 화해시킬 수 있을 것인가.

극작가 안현정은 1977년2월15일에 태어나, 1999년 '어둠아기 빛아기'로 옥랑 희곡상을 받으며 등단해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다. 공연예술아카데미와 영상작가 전문교육원을 수료한 그녀는 많은 희곡과 뮤지컬 극본, 시와 동화를 남겼다. 그녀는 성실했고, 그녀의 작품에서는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성실하고 따뜻했던 안현정 작가의 작품들은 옥랑 희곡상을 비롯, 차범석 희곡상, 대한민국콘텐츠공모전 장려상, 스토리뱅크 창작스토리 공모 당선, 영상작가교육원 시나리오 창작상 등 수많은 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러나 공연으로 완성되는 안현정 작가의 희곡과 뮤지컬 극본들은 대부분 실제 무대에서 빛을 보지 못했다. 진지한 작가정신으로 성실하게 작품에 임하고, 열심히 사랑했던 그녀는 2011년 8월 4일에 충수암을 이기지 못하고 3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녀는 떠났지만 그녀의 작품들은 우리 곁에 남았다. 유고집으로 <달콤한 안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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