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막. 도화동이라고 일컫는 어떤 농촌이 무대이다.
정씨의 집에 쇠돌아범이 찾아오고, 이어 일본순사 등장하여 호구조사를 한다.
쇠돌아범이 개울에 왜놈이 처박힌 사건이 있었음을 말한다. 이선생 등장하여
쇠돌아범에게 간도행에 대해 물으며 사람을 하나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순사가 잡으려는 사람인 것을 눈치 챈 쇠돌아범이 난색을 표한다. 지주인 박주사
등장해 쇠돌아범에게 빚을 갚으라 말한다. 이선생이 그 빚을 대신 갚아줄 테니 간도에
그를 데리고 떠나줄 것을 부탁한다. 둥욱의 친구인 명이가 등장하여
동욱이 개울에 처넣은 일본인이 죽었다고 말하며 간도로 피하라고 말한다.
2막. 명이가 등장하여 이선생이 망설이는 동욱대신 결국 다른 이를 간도로 보낸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러면서 동욱이 떠나지 않으면 결국 일경에게 붙잡힐 거라 걱정한다.
동욱은 대추나무 갈등 때문에 괴로운 심정을 말하며 자신이 떠나겠다고 말한다.
함께 이선생을 만나러 퇴장한다. 결심을 굳힌 동욱과 이 선생이 등장하여 동욱이
간도로 가는 건 도화동을 대표해 가는 것이며 민족적 사명을 띠고 가는 것이라 한다.
동욱은 청년들이 만들어준 태극기를 선물로 받고 감격해 한다.
동욱이 유희를 달래며, 우리 살림살이의 근본문제인 나라 찾기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간도 결심을 전한다. 유희는 자신의 가족도 간도 간다는 말을 하며 기뻐한다.
3막. 돌밭집과 박주사가 함께 등장하여 정씨를 찾는다. 유희가 독립당 장수가 된 동욱과
그의 색시가 될 자신, 그리고 독립된 조국에 대하여 꾼 꿈 얘기로 동욱은 감격해한다.
돌밭집과 박주사가 함께 정씨를 만나 혼담을 꺼내나 정씨가 내키지 않아 하고, 박주사가
화 나서 돌밭집을 데리고 퇴장한다. 쇠돌아범이 정씨에게 야학 이선생이 동욱을 데려가려
했다는 비밀을 털어놓고, 정씨는 동욱이 가면 자신은 안 간다고 한다. 정씨에게
유희 자신은 동욱을 못 잊는다, 고백하고 정씨는 차라리 기손에게 줄 것이라며 돌밭집을
찾아 퇴장한다. 동욱은 유희에게 자신도 간도에 가지 않겠다고 하며, 이를 말하기 위해
명이를 만나러 퇴장한다. 유희는 그런 동욱을 말리기 위해 따라나가려 하나 어머니에게
들켜 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운다.
4막 유희는 기손과 혼인할 걱정에 계속 굶고 있다. 동욱은 유희에게 함께 도망가자고
하지만, 유희는 부모님 걱정에 망설인다. 돌밭집이 등장하여 혼수를 보여주며 너스레를
떤다. 정씨는 혼수도 기손도 못마땅해 한다. 유희와 동욱이 다시 등장하여 도망가기로
한다. 집으로 들어온 유희에게 기손이 떡을 권하고 유희는 마지못해 먹는다. 유희가 통
밥을 먹지 못했다는 것을 안 기손은 자신의 집에 찬이 많다면서 이를 가지러 나간다.
명이가 등장하여 여자 때문에 계속 망설이는 동욱에게 실망감을 표하며 동리 친구들이
만들어준 태극기를 찾아 나가려다 차마 친구인 동욱을 두고 갈 수 없어 가지 못한다.
명이는 유희에게 동욱은 간도로 싸우러 가는 것이라 말하며 그를 놔주라고 설득한다.
또 그대로 동리에 남으면 일본 순사에게 잡힐 것이라 한다. 유희는 동욱을 떠나보내기
위하여 보란 듯 일부러 기손이 가져온 반찬으로 그와 다정히 밥을 먹는다. 명이는 그런
유희를 동욱에게 보여주며, 기손의 아내가 되어 잘 살 것이라 말한다. 동욱이 다시
떠날 마음을 굳히고 명이는 반긴다. 유희가 울타리를 허물어 뜨린다.
박주사는 순경, 기손을 데리고 등장하고, 명이는 동욱을 탈출시킨다. 동욱은 조국이
광복될 날을 약속하며 떠난다. 울타리가 무너진 것을 보고 최씨와 정씨가 다시 멱살을
잡고 싸운다. 그 모습을 보던 일본 순사는 ‘동리의 평화를 위해 일본인이 가져간다’ 고
하면서 도끼를 찾아든다. 다 같이 대성통곡하며 막이 내린다.

유치진의 <대추나무>는 일제강점기 국책연극이었던 ‘국민연극’의 대표적 작품으로, 일제의 만주개척정책에 따른 분촌운동을 노골적으로 선전, 선동하는 친일문학이다. 이 작품은 1942년 제1회 연극경연대회 참가작이자 작품상 수상작이다. 유치진은 해방 이후 이 작품을 두 번에 걸쳐 전면 개작한다. 첫 번째 개작이 1952년 작품 <불꽃>이고 두 번째 개작이 1957년 작품 <왜 싸워?>이다.
<대추나무>는 1942년 10월~43년 1월호 <신시대>에 발표했고 때는 현대, 여름철로 되어있는 반면, <왜 싸워>는<자유문학> 1957년 12월호에 발표한 개작작품으로 작품의 시간은 1919년 독립 만세 사건이 터지기 몇 해 전. 어느 해 여름이다. 그리고 만주로 참전하러 가는 것을 간도로 가서 독립운동을 하는 것으로 바꾼 것이다. <왜 싸워>는 극작가 유치진의 희곡으로 작가의 친일 작품 <대추나무>를 해방 후에 개작한 것이다, 이전 작품과는 달리 반일 저항의 내용을 담고 있다.

[왜 싸워] 를 두고 왜 싸워?
이 말은 1957년 말 지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왜 싸워 사건'을 다룬 한 신문 기사의 제목이다. 이 '왜 싸워 논쟁'은 흔치 않은 연극계의 논쟁이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에게는 지금도 아슴푸레하게나마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 희곡 [왜 싸워]는 1957년 당시 한국연극학회 회장이던 유치진이 전국남녀 대학생 연극경연 대회에 상연하고자 제출했던 작품이다. 학생극 진흥을 위해 좋은 창작극을 선보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자유문학}지에 1차 발표를 하고, 동시에 대학생들에게 작품을 주어서 무대에 올리도록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엉뚱한 데서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 {자유문학}를 주관하고 있던 김광섭(金光燮)이 [왜 싸워]는 친일작품 [대추나무]의 개작이므로 경연대회에 상연되어서는 안 된다는 문제제기를 하고 나선 것이다. 그것도 유치진과는 1930년대 극예술연구회 시절 활동을 함께 했던 오랜 친구이자 동지이던 김광섭에 의해서 '친일작품'을 상연하려 한다고 갑작스럽게 매도를 당하니, 유치진으로서는 이만저만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당시 일간지에 두세 차례 설전이 있고 나서 사태는 흐지부지 진정이 되었지만, 유치진에게는 다시 한 번 '친일작가'라는 낙인이 찍히는 상처를 남기게 되었다. 그런데 많고 많은 작품 가운데 하필이면 [대추나무]였을까.

작가는 자서전에서 일제 말 3편의 친일 희곡을 쓴 것이 평생 나를 괴롭혔다고 말하며, 때문에 “이때 쓴 작품들의 원고 뭉치를 곧바로 소각”했다고 말한다. 또 이들 작품을 “나를 괴롭히는 망령”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더불어 1950년대 어느 날 누군가가 우연히 발견하여 보내준 <북진대> 원고 사본을 우편으로 받고 놀라서 즉각 찢어 태워버린 일을 회고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듯 완전히 없애버리고 지워버리고 싶었던 친일 행적이었음에도 <대추나무>만은 완전히 폐기하지 않았던 것을 볼 때, 또 수차례에 걸쳐 작품을 개작하고 매번 작품집에 수록한 것으로 볼 때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강했던 가를 알 수 있다. “<왜 싸워?>는 <대추나무>를 백지로 돌려서 고쳐쓴 것”으로 “아이디아와 테마가 완전히 판이한 작품”이며 “식민지정책에 아부한 반민족적인 희곡은 아니”라는 것이다.
문교부당국에서 희곡 <왜싸워>를 일반공연물로도 불허가처분한데 대해 극작가 柳致眞씨는 불허가조치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문교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고 한다. 유씨는 소송제기 이유로서 <왜싸워> 대본의 내용을 검토해보지도 않고 부당한 이유를 첨부하여 불허가처분한 것이 드러났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문교부당국은 親日작품 또는 친일작품 개작은 여하한 작품일지라도 공연할 수 없다는 결론을 얻어 불허가처분하였다는 이유를 밝혔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조원재 '7일' (1) | 2026.05.16 |
|---|---|
| 정경환 '오늘 부는 바람' (1) | 2026.05.16 |
| 정경환 '나무 목, 소리 탁!' (1) | 2026.05.15 |
| 김윤식 '고인돌 위에 서서' (1) | 2026.05.15 |
| 가무극 '소용돌이' (1) | 2026.05.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