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록테트는 전쟁에서 상처를 입어 렘노스섬에 활과 함께 버려진다.
그 후 10년이 지났지만 전쟁은 계속되고, 필록테트의 부하들은
오딧세우스의 말을 듣지 않는다.
필록테트를 버린 장본인인 오딧세우스는 트로이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필록테트를 데려오려 하고, 그를 데려오는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네오프톨레모스를 끌어 들인다. 오딧세우스는 네오프톨레모스에게 자신이
사용했던 방법, 거짓말을 이용하려 하지만 네오프톨레모스는 진실을 말하고
빼앗은 활까지 필록테트에게 돌려주지만 필록테트가 오딧세우스를 죽이려하자
전쟁의 승리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필록테트를 살해하고 만다.

전쟁사를 바탕으로 폭력과 희생에 의한 인간과 인간의관계를 이야기한 작품이다.
뮐러는 필록테트를 그의 시도계열의 첫번째 작품으로 1958-64에 걸처 완성했다.
이 작품은 1965년에 의미와 형식 Sinn und Form지 제5호에 발표되었고,
1968년에 서독 뮌헨 München에서 초연되었으며, 동독에서는 70년대 중반 이후에
비로서 상연되었으나 별다른 관심을 얻지 못했다. 1950년에 「필록테트 1950」이라는
시가 발표된 바 있어 이 작품은 뮐러가 상당기간 구상했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필록테트」시와 극작품은 당시 스탈린주의와 연관된 동독 사회주의 정치의 현실적
문제들과 연관해서 해석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뮐러가 다음해(1966년)에 의미와
형식지 제1호에 실린 담화에서, 필록테트를 “현재에 실제하는 휴머니즘의 빛속에서
[…] 야만적 상태들의 격리화”를 위한 시도이며, 따라서 “반전극 Antikriegsstück”
이라는 베르너 밋텐츠바이 Werner Mittenzwei의 해석에 동의한 바 있다.
G. 빅하우스와 G. 슐츠 역시 '필록테트'를 스탈린주의와 연관된 동독의
“공산주의 정치의 내적 문제들의 전개”라고 해석하고 있다.
뮐러 자신도 이 작품을 쓴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작품이 쓰여졌을 때, 그러니까 대략 58년과 68년 사이에, 이 작품은 또한 예를 들어
스탈린주의라는 인물과 관계되는 문제들과 잘못된 발전에 대한 대결이었다

필록테트에 대한 해설들은 대체적으로 공산주의의 역사뿐만 아니라 스탈린주의 경향속에 있는 동독의 사회주의의 총체적 모순들에 대한 순수한 비유라는 것 이외에도 마르크스적 용어인 사회주의 혁명 이전의 전체 역사과정을 나타내는 전사적 상황들에 대한 묘사이며, 철저히 전도된 세계의 묘사라는 데에 집약되어있다. 뮐러는 자신의 역사발전에 대한 생각과 사회주의 사회의 실현을 위한 의지를 문학적으로 형성하기 위해 필록테트를 한 모델로 사용했다 이 결과 뮐러는 1965년 12월에 열린 당중앙위원회에서 혹독한 비난을 받은 바 있으며, 필록테트가 서독과 동독에서 상연된 것을 계기로 더욱 악화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 이유는 뮐러가 ꡔ필록테트ꡕ라는 신화적 사건과 인물들을 동독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과 연결시켜 연극이라는 추상적 지평위에 올려 놓고 시대비판적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필록테트신화는 소포클레스 Sophokles에 의해 비로서 비극으로 완성되었고. 뮐러의 필록테트는 그의 비극에 근거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클라우스 Manfred Kraus는 이 작품을 신화적 소재의 독자적 개작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소포클레스의 원작이 뮐러에 의해 철저히 개작되어 뮐러 특유의 신화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줄거리의 중심은 필록테트에서 오디세우스로 옮겨진다. 오디세우스와 네옵톨레모스의 간계에 완강히 맞서 상처의 고통과 섬생활의 고독을 초연히 극복하며 트로이의 출정을 거부하는 피록테트의 고전적 영웅상은 렘노스의 외딴 섬에서 일어나는 세 주인공들의 갈등관계속에서 증오와 복수심으로 정체성을 상실해가는 인물로 전락한다. 소포클레스의 경우, 필록테트가 신탁에 의해 렘노스 섬을 떠나 트로이로 가는 것은 예정된 것이었으며, 이로써 세 사람사이의 갈등관계가 해소되는 것으로 나타나나, 뮐러에게 이것은 “거짓 해결 Scheinlösung”일 뿐이다. 이 연극에서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 한다.” 신들의 의지의 자리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인간의 지혜와 의지가 대입된다. 람노스섬에서의 세 주인공들의 갈등관계는 철저히 인간에 의해 해결되어야 한다는 필연성에서 전개된다. 이 같은 뮐러의 창작 의도는 그의 필록테트의 서곡 Prolog과 마지막 장면에서 현저히 나타나 있다. 서곡은 세 주인공들의 대립관계를 “인간이 불구대천의 원수로서 학살이 익숙하고 삶이 위험했던 과거의 한 모델로서 현재와 대조시키고, 이것을 통해서 현실의 문제를 관조케 한다. 끝 장면은 죽은 필록테트의 시체마져 트로이 전쟁의 승리를 위한 수단으로, 그리고 살인행위를 정당화시키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합목적 유용성의 원칙에서 이루어진다. 이 작품에서 인물들은 이 원칙에 의해 재구성된다.

신화에서 필록테트의 운명을 결정하는 요인들, 즉 뱀에 물리고, 상처 때문에 렘노스섬에 버려지며, 오디세우스의 계략에 완강히 거부하는 그의 행위는 신탁에 의해 예정된 행위이며, 비극적 영웅의 위대성을 뒷받침한다. 즉 인간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신에 있으며, 인간은 인간의 계략이나 유혹에 초연할 수 있는 위대성에 의해 구원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에 의해 구원될 수 있는 이 위대성은 개인의 희생을 필연적으로 전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뮐러는 이 희생의 필연성을 신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사이, 개인과 사회사이의 이해관계에서 객관화시킨다. 필록테트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 Poseidon에게 제물을 바쳐 그리스인들에게 트로이 정복을 위한 용기를 주기 위해 스스로 제단을 지키는 뱀에게 물린다. 그러나 그의 행위는 동시에 뱀에 물린 상처에서 나는 악취와 고통으로 인한 울부짖음으로 제물예식의 절대적 조건인 정숙을 깨뜨려서 항해에 필요한 바람을 주는 신의 은총을 받지 못하게 방해함으로써 그를 렘노스섬에 버리게 하는 요인이 된다. 필록테트는 전사로서의 능력을 상실한 유용성의 원칙에서 렘노스섬에 버려진다. 필록테트를 트로이로 데려가려는 오디세우스의 계략에 참여하게 되는 네옵톨레모스의 동기는 헬레노스의 예언에 있지 않고, 그리스의 승리와 몰락사이의 택일이라는 극한적 상황에서의 사회적 압력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다. 내가 그자(즉 필록테트)없이 본토에 발을 들여 놓는다면 / 그의 군대는 우리의 싸움에 등을 돌릴 것이다. / 트로이인은 우리의 피로 희게 씻고 / 자기들의 독수리들을 우리의 살로 살찌울 것이다.
뮐러의 필록테트에서 거짓말 과 증오 는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동인으로써 작용하며 인물들의 특성을 결정하는 요소가 된다. 렘노스섬에 있는 세 인물들은 서로 증오하는 관계에 있다. 필록테트는 자신을 버린 오디세우스를 증오하고, 네옵톨레모스는 오디세우스가 그의 아버지인 아킬 Achill의 갑옷을 빼았고 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증오한다. 뮐러는 거짓말을 목적달성만을 위한 수단으로서, 그리고 증오는 인간의 이성을 파괴시키는 요소로서 부정적으로 나타낸다. 필록테트의 증오는 섬에서 매일같이 격어야 하는 상처의 고통에서 심화되어 오디세우스에 대한 증오에서 그리스인과 인류 전체에 대한 증오로 확대된다. 그리고 그리스어는 그에겐 거짓말일 뿐이다. 필록테트가 네옵톨레모스를 처음 만났을 때 한 말은 이같은 사실을 말해준다.
어떤 언어로, 개작식아, 넌 거짓말하는 걸 배웠느냐. / […] / 넌 그리스의 옷을 입고 있구나, 나도 그걸 입었었다. / […] / 아니면 넌 어느 그리스인을 때려죽이기라도 했단 말이냐, 친구? / 네 손에 어느 그리스인이 죽었다면 / 난 널 친구로 부르리라, 그리고 이유는 묻지 않겠다. / 그는 (scil. 오디세우스) 그리스인이었다. 더 이상의 이유는 필요없다.
후에 필록테트가 빼았겼던 활을 다시 찾았을 때 그는 오디세우스에게 활을 겨누고 말한다:
너의 죽음은 나의 일이다 / 진정 난 그 일을 원한다 […] 나의 삶 자체는 / 너의 죽음이외에 아무런 진실도 없다.

여기에서 필록테트는 “증오와 한계없는 분노의 화신 ein Ausbund an Haß und grenzloser Wut”으로 변해서 이성을 잃은 비인간적 모습을 나타낸다. 증오, 분노, 복수심은 그의 정체성을 상실케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증오의 감정은 그의 존재에 대한 체념과 경멸로 발전하며, 네옵톨레모스를 만났을 때 그 섬을 벗어나 귀향하고 싶은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게 한다. 필록테트는 소포클레스의 비극에서처럼 더 이상 인간의 간계와 음모에 맞서 트로이로 가길 거부하는 주인공의 위대성과 무관하며, 10년간이나 렘노스섬에 격리되었던 희생적 존재일 뿐이다. 이 체념적 자아는 그에겐 발 상처의 고통보다 더 무서운 “얼굴없는 적”으로 그를 습격한다.
내게 말하라, 나는 나의 싸움에서 / 얼마나 오랫동안 내 자신의 적이었던가. / 그 놈은 트로이의 강철같은 군대가 너희들을 습격한 것보다 / 더 무서운 무기를 가지고 날 습격했다. / 내게 가장 무서웠던 것은 병난 발이 날 먼지속으로 끌고가는데 이용했던 / 그 고독이 아니었다. / 나의 공포는 내 적이 얼굴이 없다는 것이었다.
필록테트는 오디프스에 대항할 힘을 상실한 무력한 존재임을 고백한다. 그는 이미 죽은 인간이며, 마지막 장면에서 “네옵톨레모스가 그의 등을 칼로 찔렀을 때 그는 죽은 자를 죽인 것이다.” 네옵톨레모스는 자신의 살인 행위에 대해 “죽은 자를 죽이는 비극적 명예 Trauriger Ruhm, zu töten einen Toten라고 말한다. 필록테트의 썩어가는 상처는 정신적인 병으로 비유되고, 자기자신을 파멸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필록테트는 렘노스섬에 버려진 존재, 다시 말해서 시간과 역사의 관계를 상실한 자이며 증오와 분노로 인한 내면의 병으로 정체성이 파괴된 자이고, 오디세우스로 대표되는 인간사회의 정치적 희생자이다.
오디세우스는 필록테트의 반대적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실용주의자이며, 인간의 가치를 오직 유용성에 의해서 평가한다. 그는 신궁을 가진 필록테트를 승리를 위해 트로이 전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거짓말을 무기로 삼고 네옵톨레모스를 그 도구로 사용한다. 그는 네옵톨레모스에게 자신에 대한 그의 분노까지도 필록테트의 신임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도록 강요한다.
지금은 네게 부여된 임무를 위해 네 분노는 접어두어라. /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내 이름을 더럽혀라. / […] / 그 점에 있어선 넌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으므로 / 난 내 계획을 위한 협조자로 널 선택했다. / 넌 진실을 가지고 믿을 수 있도록 거짓말을 할테니까. / 그래서 적이 적과 함께 내 그물에 걸어 들어오게 될테니까.
오디세우스는 빼았겼던 활을 다시 찾은 필록테트가 자신을 죽이려는 위기에 직면해서도 거짓말쟁이로서의 조야한 모습이 아닌 의무에 충실한 위대함을 보여준다. 오디세우스는 그리스의 승리를 위한 국가적 필연성에서 네옵톨레모스에게 또 다시 거짓말할 것을 강요한다.
내 시체를 넘어 그를 (즉 필록테트) 따라 트로이로 가라 / […] / 거기에서 내 군대를 전쟁에 계속 임하게 하고 / 무덤을 찾지 못할 나의 죽음에 대해 거짓말하라.
이 같은 거짓말쟁이의 위대성은 네옵톨레모스를 “빨리 배우는 제자 ein schneller Schüler로 만들고 그로 하여금 필록테트를 죽이게 한다. 오디세우스가 죽은 필록테트를 그리스 군대에 대한 거짓된 선전을 위해 이용하려 할 때 네옵톨레모스는 그에게 화살을 겨냥한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네옵톨레모스에게, 죽은 필록테트가 그 살인을 은폐하기 위한 증인으로써 필요함을 인식시키고, 그에게 트로이에서 할 거짓말을 가르쳐준다.

하이너 뮐러(Heiner Müller)의 연극 '필록테트(Philoktet)'(1958/1964)는 소포클레스의
그리스 비극을 원작으로 하여 뮐러 특유의 정치적이고 철학적인 관점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뮐러의 '시도극(Versuchsstück)' 또는 '교훈극' 시리즈 중 하나로,
신화적 내용을 통해 역사와 이데올로기, 개인과 집단의 갈등을 다룬다.
뮐러는 필록테트 이야기를 단순히 신화적으로 재현하지 않고, 역사적 맥락에서
재구성하여 신화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교훈을 전달하고자 했다.
작품은 필록테트, 오디세우스, 네오프톨레모스 사이의 3자 구도를 통해,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는 정치적 냉혹함과 인간의 존엄성 문제를 심도 있게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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