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4년을 사는 주인공' 귀족은 사회주의 사상에 환멸을 느끼고 동시대를 등진 채
조부의 영지로 들어와 약 100년 전인 1808년 조부의 삶을 그대로 재현하며 살고 있다.
돌아가신 조부의 일기를 그대로 재현하는 계획으로 하루하루를 사는 귀족은 의상이나
식사 심지어 그 당시 신문잡지까지 완벽하게 예전 그대로의 재현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열렬항 사회주의자이며 여성 해방주의자 였던 여인들, 영지의 하녀와 시종들과 광대,
그리도 흑인 소년이 1808년 재연의 배우들이자 출연자들이다.
어느 날 주인공의 친구가 잠적 이유를 알고자, 그리고 잡지사에 복귀시키고 자
이곳 영지를 방문하면서 일이 복잡해져 간다. 그 친구는 이 모든것을 알고 경악한다.
100년전의 시간대에 삶을 그대로 살고 있는 이곳 사람들, 친구의 일상사에 자칫 자신이
미래에 살다가 온 꿈 꾸는 착각에 빠질 정도다. 결국 친구와의 격렬한 대화로 그 귀족은
농노제 신봉자로 되었고 더불어 100년전의 시간이 현재라 믿는 허구의 진실성에
빠져 있고 결국 그대로 방치한 체 현실로 돌아온다.

1906년 9월 14일 공연 허가를 받아 1906년 12월 16일 페테르부르크의 말르이 극장에서 초연 되었다. A.S. 수보린의 출판사에서 1907년 1월 첨삭 없이 최초로 출판되었다. 삭제, 수정된 형태로 잡지 “극장과 예술”의 1907년 2월 호에 실렸다. 이어 이 잡지사에서 출판 허가를 받은 희곡으로 단행본 출판하다. 지금 희곡은 최초의 형태 그대로 출판된다.
철학적이면서도 사상적인 이 작품은 과거와 현재, 허구와 진실, 봉건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그런 삶과 극증극.. 연극이 가질 수 있는 여러가지 장점을 가지고 흥미있고 재미있게 표현한 작품이다. 그리고 과거의 재현을 진실로 받아드리고 신봉하는 귀족과 등장인물로 관객과 비슷한 시각의 친구는 혼돈에 빠진다.. 그런 혼돈을 한번 느껴보길...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을 처음 접했을 때의 신선함을 느낄수 있다.. 실재 그 루이지 피란델로와 동시대의 작가로 친분이 있다고도 한다.

주제나 구성 면에서 이 희곡은 두 세계, 허구와 현실 세계 간의 갈등 위에 있고, 이 갈등은 흥미로운 극중극 형식을 통해 전해진다. 만일 주인공과 주인공의 영지에 사는 모든 인물의 삶을 1808년의 삶을 재현하는 하나의 연극으로 본다면, 주인공의 친구를 포함한 모든 등장인물들이 실제로 속해있는 1904년의 삶은 이들의 연극을 둘러싼 포괄 극이 된다. 그러나 이들이 자신들의 연극적 삶을 자신의 실존이라고 선언한다면, 극중극과 포괄극의 경계, 보다 본질적으로는 허구와 현실의 경계 자체가 모호해진다. 더욱이 눈앞에 펼쳐진 허구 세계의 진실성 앞에서 맥없이 무너져 내리는 ‘귀족의 친구’는 이 극에서 경쟁하는 허구와 현실 사이의 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사실상 <아름다운 폭군>에서 극중극과 포괄극, 혹은 연극과 현실의 경계를 가르는 것은 1904년의 현실 대 1808년의 연극이라는 형식적 구획이 아니라, 1904년의 현실을 거부하고 1808년의 삶을 자신의 실존으로 선언하면서도 여전히 자신들이 ‘연기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는 인물들의 이중적 의식이다.
반대로, 도망쳐 나올 수밖에 없을 만큼 강렬한 허구세계의 아름다움 앞에 맥없이 무너지는 친구의 불안한 내면은 1808년이라는 허구 세계의 진실성을 증거한다. ‘현실’의 이름으로 ‘환상’을 광기라 비웃던 1904년의 대변자는 결국 귀족의 연인이 연주하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이 허구세계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현실과 허구간의 격렬한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채 남게 된 것이다. 갈등 해결이 제시되지 않는 이 희곡에서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것은 오히려 후반부에 있는 귀족과 친구의 긴 논쟁이다. 이 논쟁은 이후 ‘삶의 연극화’라는 모토로 정식화될 예브레이노프의 연극론이 기대고 있는 철저히 비관적인 세계관, 예브레이노프의 냉소의 근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1808년을 사는 자신의 삶을 설명하면서 귀족은 부조리하고 추악한 현실의 변화 기능성을 조금도 믿지 않는다. 그리고 현실에 대한 그의 철저한 냉소는 귀족으로 하여금 ‘말’과 ‘포즈’를 삶의 유일한 방편으로 선택하게 만든다.

사실 ‘죽음’은 ‘삶의 연극화’론 만큼이나 예브레이노프의 모든 작품과 평론을 관류하는 중요한 주제다 그에게 연극적 변형은 궁극적으로는 ‘자아와 죽음으로부터의 출구 찾기’를 의미했고, 그렇기에 이 모든 화려한 연극적 변형은 생래적으로 죽음과 불가분의 관계로 엮여 있다는 것이 그의 연극론의 핵심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브레이노프가 <아름다운 폭군>의 장르를 ‘드라마의 마지막장’으로 정의한 것은 매우 흥미롭다. 예브레이노프는 현실 대신 허구를, 삶 대신 예술을 택한 귀족의 아름다운 자태를 정지 화면으로 고정하고자 한듯하다. 귀족이 만든 허구 세계에 감동해 눈물 흘리는 친구를 아름답고 매혹적인 ‘포즈’로 바라보는 귀족과 그의 연인은 아름다움의 절정에 달한 정지된 형식이자 생명 없는 밀랍 인형처럼 그려진다. 귀족의 친구가 그들에게 ‘곧 닥칠 죽음’을 예언한 것은 어쩌면 예브레이노프의 피할 수 없는 결론인지도 모른다. 늙고 병든 ‘아름다운 폭군’과 그의 ‘연인’은 이 비극적인 현실을 연극적 환상으로 봉합하고자 했던 예브레이노프에게는 상상 불가능한 정경이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 독특한 작품을 ‘드라마의 마지막 장’이라고 불렀던 것은 이렇듯 정지된 아름다움의 절정이 결국은 더 이상 연장될 수 없는 실존의 화려한 불꽃놀이의 끝점임을 분명히 예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니콜라이 예브레이노프
(1879 ~ 1953)러시아의 전위적인 극작가 ·연출가 ·연극이론가.
문학 ·회화 ·음악 ·철학 등 다방면의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특히 연극분야에서 천재성이 유감 없이 발휘되어, 많은 이색적인 희곡과 개성 있는 연출을 하였다. 연극은 인간의 내면(자아)을 구상화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였으며, 한 사람의 배우가 연기하는 종전의 모노드라마에 대하여, 복수의 등장 인물을 통해 주역(主役)의 내면을 돋보이게 함으로써, 관객의 무대에의 참가(일체화)를 주장하는 독자적인 이론인 《모노드라마 서설》(1909)을 발표하고, 스스로 이것을 실천에 옮겼다. 대표작으로는 《마음의 극장》(1912, 초연) 《가장 중요한 것》(1921, 초연)이 있으며, 러시아혁명 (11월혁명) 이후 1925년에 파리로 망명하여 러시아 연극에 관한 저술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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