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대는 텅 빈 공간이고 벽면과 바닥에 무수한 낙서와 그림, 그리고 선과 칸이
그어져 있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부터 무대에는 한 머리가 시원하게 벗겨진
한 중년남성이 등장해 무대바닥에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그리고 있는 장면이다.
한 젊은 여인이 등장한다. 미모에몸매도 아름답다. 둘은 오랜만에 만난 것 같은데
상대를 알아차리는 시각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고 반가워하는 표정이다.
여인은 곧 결혼하게 된 듯 하고, 남자는 곧바로 축하해 준다. 그런데 여인의 이야기가
결혼 상대로 바로 중년남성을 지적한다. 남성은 황당한 표정으로 자신은 41살이라 하고
여성은 21살이라는 나이 설명으로 보아, 누가봐도 나이 차이가 현격하게 느껴진다.
남성은 그 행동으로 보아 작가임이 분명하고, 여인은 이제 막 성년이 된 철부지이라,
남성의 거부가 당연하게 느껴진다. 여인은 자리를 떠난다.

잠시 후 여인이 다시 등장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전한다. 여러 해가 지난 것으로.
남성의 여성에 대한 생각이 변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처음 완강하던 모습과는 차이와
변화가 있다. 여성의 등퇴장이 계속되고 세월이 경과되면서, 둘은 어느새 나이라는
간격이 없어진 듯 보이기 시작한다. 그냥 한 사람의 남성과 여성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두 사람의 상대에 대한 정감도 어느 정도 숙성된 듯 보이기까지 한다. 그와 비례해서
남성의 고뇌가 표출되기 시작한다. 남성은 정직하고 올바른 의식을 갖은 인물이기에
자신의 모든 걸 여성에게 밝힌다. 그는 자신을 발가벗겨 나신을 그녀에게 보이고, 있는
그대로의 고뇌를 여성에게 피력한다. 이런 행동이야말로 남성자신이 여성에게 향한
정감의 발로라고 객석에 전달된다. 이때부터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극복이 된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이제부터는 여성이 연장자처럼, 또는 모성애의 발현같은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자신의 의지와 다르다고 남성의 따귀를 여러 차례 힘껏 때리는가 하면, 등을
두들겨 패기도 한다. 남성은 주먹을 쥐고 여성에게 들어 올리지만 차마 때리지 못한다.
이러한 돌출 행동에서 두 사람이 열애상태에 이른 것을 짐작하게 된다.

그러나 관객이 의식하지 못했던 흐르는 세월동안, 두 사람에게는 각자의 처자가 있다는
사실이 극의 말미에 두 사람의 대화로 밝혀진다.
대단원에서 여인은 절뚝거리며, 쓰러지기도 하면서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가고,
남성은 다시 무대바닥에 처음 장면처럼 열심히 그적거리다가 죽은 모습처럼
정지하는데서 막이 내린다.

이 극은 두 명의 주인공들, 바냐와 엘레나의 관계를 주축으로 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20년간의 만남을 다루고 있다. 1년에 일주일간, 바냐의 오두막에서 이루어지는 이들의
만남은 증상으로서의 사랑의 양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또한, 이 극에서
바냐의 오두막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들과 그가 찍은 이들 나무에 관한 사진들은
두 주인공들의 사랑을 발생하게 하는 주된 요인이 된다. 이들의 20년간에 걸쳐 진행되는
만남은 바냐로 하여금 스스로의 향유를 통제하고 보존하려는 강박적인 노력을 강구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를 강박적인 남성 주체로 이해하게 한다.
한편, 이들의 관계에서, 엘레나는 스스로의 향유에 대해자기 충족적이라는 점에서
침묵하는 경고로 간주될 수 있다. 이러한 남녀 주체들의 서로 다른 존재 양상들은
이 극에 나타난 사랑의 특징을 불가능한 사랑의 연대기로 이해하게 한다.

파트리스 파비스(Patrice Pavis)
1976년부터 2007년까지 파리 3대학과 8대학에서 연극학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캔터버리 (Canterbury)에 있는 켄트(Kent) 대학 연극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1년 3월부터 2년간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초청교수로 강의를 맡고 있다. 대표 저서로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 출판된 <연극학 사전>, <퍼포먼스 분석: 연극, 무용, 영화>, <문화 교차로에서의 연극> 등이 있고, 그밖에 동시대 연극, 동시대 연출, 동시대 프랑스 작가들에 대한 책들을 출간했다. 이 작품 <Vania et elle>는 그의 유일한 희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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