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8년 고려 무신정권기이다.
땅의 노래, 땅을 빼앗기고 노비로 전락하는 농부들의 한맺힌 소리가 울려퍼진다.
당시 고려의 노비규약은 땅을 빌려 소작한 농부가 소작료를 못갚으면 그 집 노비로
들어가 평생 일해야 한다. 그런 데다가 몇년째 가뭄이 들어 흉년이 되자 기아행진을
염불로 달래는, 현실을 무시한 佛法. 그리고 수탈당한 채 공역을 떠나는 꽃불도민들.
그런 가뭄을 달래고 비를 오게 하는 연등회에 노승이 출현하여 민초를 불쌍히 여기고
권력쥔 자들을 불평하는 소리를 한다. 우린 더이상 밑받이일 순 없다, 노비로 팔린
꽃불도 처녀들의 절규같은 합창이 이어지고 모두 질곡의 섬안 꽃불도를 떠난다.
먹고 살 곡식이 없으니 급격히 노비가 늘어난 것이다. 민초의 주인공인 천돌도 떠난다.
사회개혁의 뜻을 품고. 예성강의 찔레꽃을 부르며 노승을 찾은 천돌, 의탁하게 된다.
땅 파먹는 불법을 설파하는 노승에게서 무언가를 깨닫게 되는 천돌.
일하는 천돌은 소와 일심동체가 되어 쇠춤을 추며 일하며 세상을 깨우친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입적하는 노 스님과 노비로 팔려가는 천돌,
결국 최충헌댁 노비로 팔려 노비적(奴婢積)등록된다.
최중헌댁 노비규약 역시 바슷하다. 고려 왕에 필적할 땅과 대궐 같은 집
그리고 수천의 사병을 거느리고 역시 수천의 노비를 부리는 당대 권력 1인자다.
북산의 나뭇꾼들의 개경 뒷산에서 번져나가는 요원의 불길
땅뺏기 놀이: 양민의 땅을 수탈하러나간 최충헌댁 노비들과 양민의 대결
땅뺏기에서의 회군. 민초들의 역동적 힘... 그런 비밀스런 배후에 만적으로 개명한
천돌이 있었다. 드디어 人間해방을 선포하는 만적. 거사계획 하달하나 밀고자가 있어
거사는 실패로 돌아가고 주동자들 모두 체포된다. 만적은 어머니, 누이. 스님을 회상한다.
최충헌이 실패한 거사에 관해 만적과 문답을 주고 받는다. 만적은 당당히 말한다.
"노비는 비록 천하나 또한 하늘이 내신 백성이외다. 허나 예사로이 제물로 논하여
우마와 같이 사구팔구 채찍을 해대니...." 인간해방이다.
예성강의 찔레꽃: 흰 찔레꽃이 된 채, 만적은 수장된다.
에필로그: 만적과 노승이 만난다. 둘은 해탈한듯 춤추며 노래한다.

우리극장에서 주강현 작 조항용 연출의 창작극 <민초>를 1981년 창고극장에서 공연했다.
고려명종 때의 실력자 최충헌의 노비였던 만적과 그의 노비 해방을 소재로 한 역사극이다.
이 작품은 대작이다. 스케일이 크고 토지, 신분, 종교, 당시의 무인 정치의 현실,
진보적 사관 등 당시 공연하기 어려운 여러 난관을 거쳐 대본을 삭제하고 바꾸는 등
우여곡적이 많은 작품이기도 하다. 그래도 작가의 문제 의식은 살아있는 작품이다.

역사에 나오는 만적의 난
만적의 난은 1198년(신종 1) 개경에서 사노비 만적(萬積) 등이 신분 해방을 위해 일으킨 노비 저항이다. '노비'는 남자 종 '노(奴)'와 여자 종 '비(婢)'를 합하여 부른 말이다. 개경은 정치와 경제·문화 등의 중심지였다. 그곳의 노비들은 다른 지방의 노비들보다 사회의식이 상대적으로 높았을 것이다. 무신 정변 이후 정치적 격변 속에서 만적은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국가 권력을 잡겠다는 이상을 가졌다. 하지만 같은 노비 출신인 순정(順貞)의 배신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노비 순정은 거사가 실패할 것을 겁내 자신의 주인인 한충유에게 반란 계획을 고발해 버리고 만다. 결국 순정의 밀고로 거사가 발각되고, 이를 한충유로부터 전해 들은 최충헌에 의해 만적을 포함한 100여 명의 가담자들이 붙잡혀 모두 강물에 산 채로 던져지는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이후 한충유는 종8품 율학박사(律學博士)에서 정7품 합문지후(閤門祗候)로 승진했으며, 순정은 공로를 인정받아 은 80냥을 받고 양인으로 면천되었다.

인간해방의 대장정 - 작가 주강현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하기위한 大장정의 작은 일몫으로써 民草를 상재했다.
백성 民, 풀 草, 이름하여 백성의 풀- 풀 같이 연하고 천하나, 그러함에 더불어 얽혀서 힘을모아 살아야한다. 항시 약한 것만은 아니어서, 깊게 척박한 땅에 내린 억세풀다운 끈질김도 민초를 가능케 한다. 아득한 고려땅, 홍년의 붉은해가 中天에 솟아 황톳길 더욱 붉을제, 굶어죽어가는 민초들은 황토무덤 억세풀 쥐어뜯으며, 지치면 소금먹고 목이탈제 송기 씹으면서, 풀밭돌밭 끝없는 벌, 낫과 쟁이로 일구어서 못먹는 배 채워보자고 외쳐댔지만, 애써 가꾼 논밭마저 빼앗기고, 노비로 팔려 영감님 밑받이나, 마나님 요강시중에 안성마춤으로 팔려가고 있었다. 하나의 사극을 가능케하는 결정적 요인으로써 그 사극을 쓰게끔 된 결단을 중시하고 싶다. 역사적 소재는 그 소재가 채택되야되는 시공간적 당위성이 주어져야하며, 끊임없이 현실에로 환원되야만 할 것이다. 까만고무신을 신고 미나리밭을 지나 쑥대밭에 들어서는 시골 선머슴 모습이 떠오른다. 쑥대밭엔 서러운 눈물이 맺혔지만, 역사는 그렇고 그렇게 흘러왔다. 잘 길들여진 패배주의적 역사관에 젖어든 신민(臣民)의 소리, 지배자의 논리에 맞게 잘 교육되어온 왜곡된 歴史親, 가난한 主人보다 부유한 노비를 꿈꾸는 모습들, 二元的 종교의 反인문주의적 굴레와 잘 결부된 약육강식의 비인간화된 악마적 世界질서, 그리고 먼나라의 추상의 밥만을 약속받고 살아야하는 중생들의 기아행진- 그렇듯 歷史는 인간 패배의 기록이었다. 송곳하나 꽂을 땅도없이 處刑의 땅에서 살아야하는 눌린 자들에게 따스한 눈길을 주고 싶었다. 허나 그러한 민초들이 너무 스스로의 연민에 빠져있음에, 너무 스스로를 소모시키고 있음에 놀랐다. 歷史는 항시 그 언젠가 民草들의 뜻을 부르고, 그 언젠가는 그들의 뜻에 보답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법칙조차도 망 각한채 길들여져 있었다. 위대한 歷史가 탄생 될때는 항시 民草들의 오랜 시간 습득되어진 준비시간이 성숙했을 때였음에도 歷史의 아이러니는 패배만을 가능케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노승'이나 '천돌(만적)'같은 선각자들이 부르짖은 엄숙한 人間해방의 참뜻이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채, 비인간화의 치욕이 뒤덮고 있음을 또다시 느끼게된다. 민초들은 '하늘백성'임에도 이를 부인하는 사태가 속출되고 있으며, '밥이 하늘'임에도 世界 도처에는 편중되어진 기아가 팽배되 있다. 허나, 作家 입장에서, 혹은 연출자 입장에서 끝내 해결지을 수 없는 몇가지 문제들이 있다. 흔히 文化的 형태의 改革主義 입장이 결과적으로는 도리어 歷史的 순응주의의 입장을 취하게 된다는 것, 小市民的 접근이 결국은 民草 전체의 운명을 염두에 두는 보다 넓고, 보다 큰 기획 가운데서 나오는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비판일 것이냐는 것이다. 더구나. 입장료를 받아야만 운영이 되고, 소수의 약속되어진 관객만이 보게되는 서구 소비文化 형태의 공연양식이 갖고 있는 한계를 극복은 커녕, 질질 끌려 다니면서 자행된 이 공연이 '예술행위'란 명목으로 치부된다는 사실따위다. 결국 良心의 問題는 歴史의 생존의 問題와 일치될 수 없다하더라도, 대담한 역사적 상상력으로써 자기반성의 소중한 기회로 삼을 수밖에...... 그러함에 극심한 자금난 속에 굶어가면서 서로 손에 손을 마주잡고 비장한 착오로 임해온 모든이의 땀과, 보아주신 모든 분들의 상상력 역시 가능케 될 것 같다.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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