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최우근 '거기 서 있는 남자'

clint 2026. 5. 12. 05:01

 

 

인적 드문 한적한 숲 길, 한 남자가 엉거주춤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왜 거기에 서 있는가? 무언가 위급한 상황인 듯, 핸드폰으로

구조 요청을 하려 하지만 전파 수신이 되지 않는다. 살려 달라고 소리도 

쳐보지만 남자의 외침을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게 남자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구세주처럼 한 여자가 남자 앞에 나타난다.

그녀는 남자가 지뢰 밟은 것을 알고 있다. 예전에 이근처에서 폭발이  있었기에.
하지만 그녀는 위독한 어머니를 모시고 살기에 그곳을 떠날 수가 없다. 
자기만의 삶의 방식을 지키며 사는 원칙을 고수하는 것 같지만 맑고 순수한 여자다.
남자는 여자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여자도 남자를 도우려 하지만 왠지 자꾸
어긋나기만 한다. 위급한 상황을 공감하지만 서로 소통이 되지 않아 답답하기만 한 
남자와 여자. 그들은 과연 어떤 결말을 맞을 것인가……
‘거기에 있는 남자’는 어떻게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최우근 작가의 상상력은 이 작품에도 평범한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무엇보다 절대절명의 상황을 코믹한 상황으로 이끌어가는 솜씨와 스스로 ‘지뢰’를 
밟고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작가의 깊고 예리한 성찰이 돋보인다.
이 작품 역시 유쾌한 웃음과 관객의 허를 찌르는 유머가 곳곳에 매설되어 있다. 
묘한 긴장감과 예측 불허의 재미를 주는 이 작품 우리들에게 따뜻한 선물이자
2인극의 참 매력을 느끼게 해준다. 이 작품은 사람들이 평생 안고 사는 각자의 '굴레'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며, 진정한 삶의 만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2017년 리우진 연출로 초연되어 시즌 4로 4년간 연중 행사 같이 공연된 작품이다.

 



극중에서 남자는 자신이 오랜 시간 지뢰를 밟고 있으니 강한 건지 아니면 
벗어나지 못하니 약한 건지 묻고, 이에 여자는 강하고 약한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당신이 거기 서있다는 게 중요한 것이란 대답을 한다. 
생각해보면 삶이란, 자신이 원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출생의 순간부터 시작해 
끊임없이 의도하지 않았던 것들과 맞닥뜨리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게 나의 잘못이든 아니든, 그 의도치 않음을 마주하고 있는 자신이 강하든 약하든, 
또는 비겁하든 간에,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연극 <거기 서 있는 남자>는 

그곳에 당신이 서있음을 잠시 위로하고 힘이 되는 작품이다.

 


최우근 작가
1966년 서울생. 연세대학교 철학과재학시 문과대 연극반 '문우극회' 활동을 하며 연극과 인연을 맺었다. 졸업한 후 MBC에서 <경찰청 사람들>로 방송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다큐멘터리 <성공시대>, <록 달리다>, <복서>, <파랑새는 있다>, <형사수첩> 드라마 <강력반> 등을 집필하며 20여 년 동안 방송작가 생활을 한 베테랑 작가다. 
최 작가가 만들어낸 희극의 세계는 개그가 아니라 불합리한 현실을 포착하고 성찰하는 상황의 코미디다. 배우들이 필사적으로 자신의 캐릭터에 몰입할수록 객석에서는 자연스럽게 폭소가 터져 나온다. 그리고 그 기발하고 코믹한 상황이 지닌 지독한 현실성이 관객들로 하여금 진한 비애를 느끼게 한다. 이것이 바로 최우근 작가의 작품이 담고 있는 탁월한 문학성이다. 몇 해 전, 최 작가는 친분 있는 배우들의 술자리에서 까맣게 잊고 지냈던 꿈을 떠올렸다. 바로 연극이다. 작가 자신에게 연극은 아무도 말리지 않았음에도 지레 겁을 먹고 포기했던 꿈이었다. 그날부터 최우근 작가는 다시 연극이라는 꿈을 꾸게 되었고 얼마 뒤 첫 희곡 <이웃집 발명가>를 탈고했다. <이웃집 발명가>는 2008년 5월, 문삼화 연출로 초연된 이후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열렬한 찬사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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