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전형재 '총량불변의 법칙'

clint 2026. 5. 10. 13:07

 

 

서울의 끄트머리에 있는 한 다세대 빌라 5층이 주요 배경이다. 
501호에 사는 '오구'는 오래 전 부인과 사별하고 20년째 이 빌라 501호에서 혼자 사는 
독거노인이다. 팔십 즈음 나이이지만, 하나 있는 딸 부부의 부양을 거절하며 꿋꿋하게 
홀로서기를 외치는 중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노인의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30년이나 출판사를 운영하며 나름 사회에 이바지하고 살았다고 자부했지만, 
현역에서 은퇴한 지금은 사회적 약자이자 주변의 천덕꾸러기인 노인일 뿐이다.
그의 하루는 이웃의 기분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관심 총량을 채우는 일이다. 
그러나 주변의 이웃들은 아무도 그의 '말받이'가 되어주기를 거절한다.
그러던 어느날 502호의 젊은 청년에게 자신과 일주일에 두 번 밥을 같이 먹어주는 
조건의 아르바이트를 제안한다. 마침 언어 총량을 채우기 위해 부쩍 말이 많아진 
엄마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청년은 제안을 수락하고, 두 사람은 밥 친구가 된다. 
인간이 느끼는 행복의 총량은 무엇으로 채워지는가. 노인과 청년은 밥을 먹으며 
밥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희로애락의 총량과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2025년 대한민국연극제 서울대회 참가작, 극단 신세계의 공연작이다.
전형재 작가의 섬세한 극본과 송미숙 연출가의 감각적인 연출로 
에너지 총량의 법칙처럼 얽히고설킨 인간관계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작품이다.
우리 인간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순환하는 에너지처럼, 인물들의 관계 또한 
예측 불가능하게 흘러가며 관객들에게 깊은 공감을 주는 작품이다. 
80세의 홀로 된 노인이 홀로 되는 것이 싫어 동네를 다니며 운동하고 아무나 인사하고 
옆집의 일에 간섭하고... 물론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어서이다. 결국 알바를 얻어
같이 일주일에 2번 점심을 먹고 대화하고는 삶의 활기를 찾는 것이다.
그 외에도 502호와 503호의 모습도 나오는데 여기도 절대 평범하지 않다.
502호는 작가인 남편과 열심히 교회 다니는 엄마, 그리고 아들이 사는데
엄마의 카리스마에 집에서는 아무 말도 없는 남편과 아들이다.
503호는 원래 주인인 어머니가 치매로 요양원에 있고 1남 2녀인 자식들이
살고 있는데... 40대 초인 미장원을 하는 큰 누나가 결혼도 못하고 동생들 뒤치닥거리 
한다며 큰소리친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이 안되는 남동생은 그 소리가 듣기 싫어
집을 나간다. 이렇듯 변두리 다세대 빌라는 바람 잘 날 없지만 그래도 희망을 보여준다. 



작가의 글 - 전형재
이 글은 몇 년 전, 대학로의 한 중고서점에서 일본 작가 도야마시케히코의 책 <자네 늙어봤나 나는 젊어 봤네> 라는 책에서 영감을 받아 쓰게 됐다. 저자는 이 책에서 40이후를 인생 2막에 해당한다고 정의하며, 인생 2막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조언들을 제시한다. 그가 주로 추진하는 조언은 '걷기', '잡담', '독서', '자산관리' 그리고 더 중요한 것 하나는 배우자나 자녀의 돌봄에 의존하지 말 것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노인 '오구'의 삶의 방식은 거의 이 책에서 나왔다. 그는 부인과 사별하고 돌봄을 받을 딸이 있음에도 혼자 지내기를 고집한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동네를 뛰고 걷는다 아니 배회한다. 이유는 자기와 잡담을 나눌 사람을 찾기 위함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노인의 모습은 어딜 가나 천덕꾸러기 신세다. 노인을 받아주는 곳이라야 종교시설 아니면 동네 경로당 정도. 우리 사회는 더는 노인의 경륜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래도 오종구는 지금도 열심히 누군가에게 말을 건다. 몇 년 전 그날, 이 책이 왜 내 눈에 띄었는지는 알수 없다. 내가 20살이었어도 30살이었어도 이 책이 내 눈에 띄었을까? 하하하, 50대여서 행복하다. 젊은 자네들이 이 맘을 알겠냐마는...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1) 2026.05.11
차범석 '대리인'  (1) 2026.05.11
정미진 '다함께 차차차'  (1) 2026.05.10
전형재 '언더스터디'  (1) 2026.05.09
전진오 '달로 가요'  (1) 2026.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