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차범석 '대리인'

clint 2026. 5. 11. 04:59

 

 

일제시대에 일본인이 경영하는 농장과 상점의 하인으로 일하다가

해방과 함께 그 일본인의 재산을 물려받은 할아버지와 그런 상황에

일본군에 강제로 징용되었다고 알려진 아버지(기호태)는 사업수완이 좋아서

미군상대의 토건사업을 벌여 돈을 번 사람이다..

그런 기호테에게 다까하시란 일본인이 일본 패망후 물러갈 때 농장에 묻어둔

금괴가 있다고 대리인 자격으로 금을 찾을것을 부탁하고 ..

가족들은 기대에 부푼다.

 

 

 

아버지 회사에 총무과장으로 근무하는 큰아들 자균은 비서수준으로 아버지를

수행하나 가족사, 약혼녀와의 갈등.. 그리고 금괴 발굴등에 회의적이고..

사사건건 아버지와 부딪힌다. 결국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친일파로 부를 챙겼고

항일 투사였다던 아버지도 결국은 일본에 득세하기 위해 자원 입대한 친일파로

밝혀진다. 금괴 발굴을 위해 허가를 받았으나 그 부지가 시장으로 되어

200명 입주자들의 생계가 걸려 입주민 대표들은 반 년만 개발 연기를 하게 요청하나

결국 투병중인 할아버지가 나서서 그들의 요구를 들어준다..

그런 기노인에 불만인 호태는 물욕으로 세대간 갈등이 고조될 때 임신 중이던

자균의 약혼녀가 낙태수술을 하다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자책하는 자균의 절규속에 막이 내린다.

 

 

 

이 작품은 '자아상실'이라는 시대적 풍조를 날카롭게 파헤친 일종의 사회 고발극이다.

<대리인>은 극단 산하 제13회 정기공연으로 초연(1969년)되었다. 류흥열 연출.
이 작품은 당시 극단 산하의 상업적 성공과 예술성을 동시에 높이는데 기여한 
주요 레퍼토리 중 하나였다. 극단 산하는 1963년 오화섭을 대표로 창단하여 한국 연극의 
대중화와 높은 예술성을 목표로 했던 단체로, 차범석의 작품들을 통해 한국 연극사에 
큰 획을 그었던 극단이었다.

 

 

 

차범석은 "한일 협정이 이루어졌지만, 여러 문제가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작품을 
창작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그는 당시 관람했던 ‘실험극’에서 ‘현대인은 
모두 대리인이 있기 마련이다’라는 대사를 듣고 착안하여 작품을 썼다고 한다. 
역사의 상흔은 시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그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사회의 거울로서 희곡을 창작했던 차범석은 이를 작품에 반영하였다. 
<대리인>은 일제강점기 이후 청산되지 않은 과거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현대의 만남 속에서 드러나는 문제들을 가족이라는 공간을 활용하여 보여준다.
<대리인>에서는 호태와 그의 장남 자균의 대립이 전면화되며, 자균에 의해 조부와 
아버지의 위선과 비리가 드러난다. 즉 일제강점기 일본인의 마름으로 부를 축적했던 
할아버지 뒤를 이어 과거 일본인이 소유했던 땅을 통해 대리인자격으로 이득을 

취하려는 부친의 위선이 자균에 의해서 폭로된다. 

특히, 자균은 이미 그곳에서 생계를 꾸려가는 영세상인들은 안중에도 없는 

아버지의 태도에 환멸을 느끼며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기호태는 과거 일제 잔재를 처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자 하며 

대리인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한다. 

 

 


작가 차범석은 많은 작품에서 이러한 인물들을 통해 전후 자본주의의 급속한 성장에 
따른 폐해를 드러낸다. 또한 작가는 산업화 시대에 물질적인 욕망을 쫓는 인물뿐 

아니라 소외된 사람들을 그리며 이들의 생존권에도 관심을 갖는다. 

여기에는 영세상인들을 등장시키고 있다. 자본에 따라 계층화된 사회에서 영세상인들은 

과거 지주와 소작인들과 비슷하게 기씨일가가 대리하는 땅에서 삶을 영위한다. 

이들은 적극적인 투쟁이나 대립하는 행위를 취하지 않지만 기본적인 생존권을 위해 

협상을 추진한다. 기호태는 이에 응하지 않으나 먼저 나서는 인물은 기노인이다. 

기노인은 아들 호태와 손자 자균의 대립을 바라보며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고 반성한다. 

그는 일제강점기라는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취했던 대리 행위가 전후 자본주의 

사회에 살아가는 호태에게 그대로 대물림되어 심화되는 현실에 회의감을 느낀 것이다. 

차범석은 <대리인>에서 일본인의 하수인으로 부를 축적했던 자균의 할아버지 기상구, 

대를 이어 그 역할을 자처하는 아버지 기호태, ‘나’라는 주체성을 지키며 살고 싶은 

자균까지 삼대의 부자 관계를 통해 대리 행위를 둘러싼 갈등을 그려냈다. 

즉, 차범석은 <대리인>에서 대리라는 행위와 그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일제 잔재 청산 

문제뿐 아니라 전후 시장경제의 급속한 발전에서 나타난 인간의 욕망과 인간 소외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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