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이오네스코 재창작 '막베뜨'

clint 2026. 5. 3. 07:48

 

 

 

막베뜨는 자신의 영주인 덩깡을 위해 반역자들과 전쟁을 한다. 
그러나 마녀들이 나타나 영주가 될 것이라고 막베뜨의 운명을 알려준다. 
막베뜨는 이제 욕심에 눈 멀어버린다. 그는 마녀가 변신한 덩깡 부인과 자신의 절친 
방꼬와 함께 덩깡 영주를 죽인다. 그는 영주가 되나 모든 일은 원하는 대로 되는 건 
아니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란 우리가 일어났으면 하고 바라는 것의 정반대이기가 
일쑤인 것. 마녀들이 방꼬에게 앞으로 왕들의 선조가 되리라고 예언했다는 것을 알고 
방꼬를 죽인다. 방꼬는 후손이 없으니까. 그리고는 마녀가 변신한 덩깡 부인과 
결혼하여 막베뜨 부인으로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마녀들은 그를 버렸고, 
진짜 덩깡 부인이 나타난다. 하지만 예언은 살아있다. 여자에게서 나온 이는 막베뜨를 
죽일 수 없고, 숲이 공격해 오기 전까지는 그는 안전하다. 그러나 막베뜨는 결국 
몰려오는 숲을 이겨낼수 없었으며 방꼬의 후손이며 여자에게서 나오지 않은 마꼴에게 
죽임을 당한다. 마꼴은 덩깡이나 막베뜨보다 더 큰 욕심에 휩싸이게되고, 마녀들은 
임무를 내린 그분에게 자랑스러워한다.

 

1976년 극단 현대극장 국내초연(오지명씨가 막베뜨 역)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의 하나인 <맥베스>는 인간의 권력욕에 대한 연극, 권력에 대한 욕망이 욕망의 주체를 파멸과 죽음으로 이끄는 연극, 권력욕이부질없고 허망하며 스스로가 자신이 가졌던 욕망의 희생자임을 그 주인공이 쓰라리게 인식하게 되는 연극으로, 권력무상과 인생의 부조리함을 이보다 더 통렬하게 보여주는 연극도 없을 것이다.

<맥베스>의 각색이 낯선 일은 아니다. 그 중, 이 작품을 패러디한 알프레드 자리의 <위뷔왕>은 위뷔왕의 권력욕을 극도로 희화화함으로써 초현실주의, 부조리연극을 예고하는 전위연극의 시조가 된 것으로, 연극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또 이오네스코의 <막베뜨>는 세상의 섭리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는 <맥베스>의 결말과는 달리, 그런 믿음은 하나의 환상일뿐이며 되찾은 질서는 다음 무질서의 출발일 뿐임을 시사함으로써 악의 회귀성과 반복성, 권력욕이 본능의 일부임을 강조하고 그 결말을 열어 놓았다. 이오네스코는 정통성을 잃은 권력 찬탈 행위가 인간사에서 계속 반복되어 왔고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며, 인간의 권력욕이 오늘날 우리 모두의 모습임을 암시하면서 권력욕의 보편성을 냉소적으로 무대화함으로써 <맥베스>의 현대성을 강조한 바 있다.

 

 

 

원작인 세익스피어의 맥베드는 최고의 비극답게 절제된 언어와 구성으로 인간의 권력욕을 표현하였다면 이오네스코의 막베뜨는 원 주제를 살리면서도 그 구성이 역시 이오네스코 답게 흥미롭게 표현한다. 극중 간간히 나오는 단역배우들은 잡상인에서 나비채집가까지 다소 난해하며서도 재미있는 역할을 부여하고 마녀들도 중간에 덩깐부인으로의 변신을통해 쇼킹한 신을 보여주며 극중의 많은 살해 장면및 단죄장면도 가능한한 재미있게 표현하려고 지문에 주석을 달아놓았다. 프로젝터나 스크린을 통한 접목을 시도하라고 조정한다. 결국 권력에 눈먼 막베뜨는 마꼴(방꼬의 아들)에게 살해되며 그 죄값을 치루게되나 못내 마녀에 속은 것이 더욱 분한 것 처럼 느껴지며 사랑과 권력에 눈먼 인간의 부조리함을 이오네스코의 시각으로 재창조된다. 1976년 현대극장 창단공연으로 국내 초연된 이 작품은 당시 작품 사전 검열시 많은 부분이 삭제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관객들이 연극을 보면서 그 상황을 비현실적이고 황당하다고 생각할수록, 그래서 그 상황이나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비웃을수록, 그것이 인간 공통의 현실이며 나아가 스스로의 모습임을 인식하게 되었을 때 느끼는 충격과 고통도 더 커지게 마련이다. 이외에도 <살인놀이>에 등장하는 인물들 사이의 대화나 논리의 비약은 부조리극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인간언어의 원초적 부조리함과 그로 인한 소통의 불가능을 함축하며, 병에 대해 보이는 여러 가지 본능적인 반응과 극복을 위한 노력의 무망함은 인간조건의 원초적인 부조리를 형상화한 것이라 하겠다. 1950년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가 파리의 녹탕뷜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현대연극의 주요 경향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부조리극이 탄생한 것이다. 애초 싸르트르와 까뮈의 철학 용어였던 부조리가 정식으로 연극용어가 되는 순간이었으며, 그때까지 10년 남짓한 기간 맹렬히 활동해온 서양 현대 극작가들이 하나로 묶이는 순간이었다.

 

 

 

<막베뜨>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부조리극 작가로, 전통극의 타파를 부르짖던 이오네스코가 셰익스피어의 비극 <멕베스>를 ‘재창작한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주인공이 삶의 파란과 곡절을 보여줄 때, 그것은 인물 개인에게만 부여된 운명이 아니라, 나, 우리 그 밖의 모든 사람들의 운명과 삶의 조건으로 확대되는 보편성과, 현대인들에게 여전히 통용되는 초시간성을 갖추고 있다. 특히 폴란드 비평가 얀 코트는, <멕베스>에서 20세기 초 동구권을 휩쓴 스탈린 독재의 자취를 읽어 내냈는데, 그는 <멕베스>가 절대권력이 필연적으로 부패해 갈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해석했다. 이런 관점에 영감을 얻은 이오네스코는 권력의 속성에 초점을 맞춰 풍자와 조롱을 통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다시 쓴 것이다. 한편으로는 대작가에 대한 숭배로부터, 다른 한편으로는 동시대 정치적 현실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출발한 이오네스코의 셰익스피어 다시 쓰기는 작품에 대한 패러디인 동시에 셰익스피어에 대한 오마주라고 할 수 있다. 이오네스코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멕베스>를 희극성 강한 부조리극으로 민들었다. 권력의 본질을 드러내 보여주면서 배경을 특정 시기와 장소로 한정하지 않고, 압제와 폭정의 정치체제를 풍자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