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인공 사이먼 헨치는 지식인으로 영국의 명문 옥스포드 출신으로서 성공한 출판업자다.
따라서 생활도 윤택하다. 어느 날 그는 아내가 관광여행을 떠나서 홀가분하게 바그너의
'파르지팔'을 감상하고 있을 때, 방문객이 잇달아 찾아온다. 첫 번째 방문객은 같은 건물
윗층에 세들어사는 사회주의적인 젊은 학도였다. 그 다음엔 교감을 꿈꾸는 형이 찾아오고,
또 이어서 술주정뱅이에 통속적인 서평을 쓰는 친구 샘이 들어선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간 후에는 샘의 애인 다비나와 동창생인 우드, 관광갔던 아내가 돌아온다.
이와같이 연달은 방문객 때문으로 해서 주인공 랜치는 모처럼 마음 먹었던 음악감상을
여지없이 방해 당하고 만다.
그렇다고 작품주제가 침입자들에 의한 자기 세계의 붕괴상황에 두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방문객들을 대하는 주인공의 의식상태에다가 그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헨치는 방문객들 하나 하나에 매우 친절하게 대한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간청, 부탁, 고백
등에 대해서만은 강건너 불 보는 격으로 느끼고 생각할 뿐이다. 그들이 부딪히고 있는
문제의 핵심속에 스스로 깊숙히 뛰어들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이 작품에서 극적 긴장을 이루고 있는 장면, 즉 그의 아내가 불미스런 고백을 털어 놓는
대목에서도 그는 놀라움이라든가 분노 또는 증오를 폭발시키지 않고 태연자약하다.
끝까지 냉담할 뿐이다.

흔히 말하기를 지식인은 얼음장처럼 차다고 한다. 잔인할 정도로 냉혹하다는 것이 오늘날
지식인에 대한 통념이다. 교양과 지성이 있고 예절이 바르고 친절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차갑고 냉철함이 칼날처럼 번득이는 것이 지식인의 표상이며 기질인 것 같다. 그러므로
사물을 대할 때나 대인관계에 있어서나, 감성보다도 이성이 으례히 앞서기 일수다.
항상 자기를 기준하여 사고하며, 자기에게 직접적으로 실리를 주지 않는 일에는 조금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외면해 버린다. 그들의 내적현실에는 은연중에 자기 중심주의와
에고이즘이 견고히 뿌리 내리고 있다. 이것이 바로 지식인의 자조성에서 오는 취약점이다.
작가 사이먼 그레이는 주인공 렌치를 통해 지식인의 내적질환인 자기중심주의와 인간적인
단절을 인간성의 황폐로 포착하여 매우 시니칼한 입장에서 날카롭게 표출시키고 있다.

'지금은 부재 중' 의 작가인 사이먼 그레이는 1936년 햄프쉐어 헤일링 태생으로서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이다. 그는 오늘날 영국의 현장 작가로서 매우 지성적이며, 학문적인 기반이 튼튼한 작가다. 그는 누구보다도 지적 세계에 투철할 뿐 아나라, 지식인의 위식구조를 투시하는 작가적 안목이 놀랄 만큼 그 차원이 높다. 그가 1971년에 발표하여 런던 이브닝 스탠더드의 최우수 희곡상을 수상한 <버틀리>도 그러하거니와 1977년 뉴욕 비평가 그룹상을 수상한 '지금은 부재 중' 역시 현대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식인의 전형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분명히 지적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작품들이 자기의 경험영역이나 그와 밀접히 관언된 사실에서 유출되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사이먼 그레이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5년간의 수학을 마친 후, 즉시 교수생활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현재도 퀸메어리 대학의 영문학 교수다. 이처럼 그는 지성인으보서 폭넓은 체험에 따라 지식인들의 내적탐층에 대한 새롭고 광대한 시야를 지닐 수가 있었다.
그는 '지금은 부재 중' 에서도 지식인의 베일을 벗겨, 이를 백일하에 드러내 보임과 동시에, 신랄하고 예리한 社會的 풍자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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